[보도]이념적 합의 파괴 `중도병`에 빠진 `위험사회` 대한민국

자유경제원 / 2016-08-11 / 조회: 8,339       미디어펜
  
▲ 조우석 주필
중도비판: 이념적 합의가 깨진 위험사회 대한민국

2000년대 초반 지금 한국은 이념적 합의가 깨진 사회다. 헌법 제4조가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마저 희미해졌고, 체제 수호에 필요한 정치사회적 부력(浮力)이 남아있는가 자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체제붕괴(regime collapse) 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진단도 피할 수 없다. 입춘에 장독 깨진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지만, 북한 전체주의 체제의 몰락을 코앞에 두고 우리가 먼저 자멸할 수도 있는 위기국면이다.
 
유례 드문 국가건설의 성공 사례가 우리가 아니던가? 건국 70년이 채 못 된, 아직은 젊은 현대국가인 대한민국의 이례적인 노쇠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좌파정부 10년 동안 지속된 한국사회 해체 작업과 이에 따른 충격 누적이 실로 컸다. 이때 이후 문화권력까지 저들에게 모두 내줬으며, 지식인과 대중의 대다수가 좌파정서에 끝내 함몰됐다. 이후 들어선 우익 정부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무책임도 질책을 해야 한다.
 
두 정부는 일정한 성취가 없지 않았지만, 기대에 미친 것은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두 정부에게 주어진 역사적 소명이란 자명했다. 이런 비정상을 바로 잡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보수(補修)-유지하는 것이었다. 냉정한 진단을 하자면 두 우익정부의 체제복원 노력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바로 이런 애매한 국면에서 중도(中道) 따위의 감성적 용어가 각광 받는다. 
 
  
▲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우익세력에게 중도란 깃발은 제법 바람직한 사회갈등 봉합 노력의 하나로 비춰진다. 그 깃발 아래 모인다고 손해 보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사진=연합뉴스


상식이지만, 중도란 한국사회 같은 이념적 합의가 깨진 사회에서 항용 등장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대표적인 용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지금 같은 세력을 얻지는 못할 것이란 점도 자명하다. 중도란 말은 그럴싸하지만, 가짜라는 뜻에서 사이비 용어이고, 그럼에도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의미에서 대표적인 감성 용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와, 전체주의 체제 사이에 중간 지점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도 중도란 말이 유행하고, 우익과 좌익 모두에게 선호되는 현상은 이유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우익세력에게 중도란 깃발은 제법 바람직한 사회갈등 봉합 노력의 하나로 비춰진다. 그 깃발 아래 모인다고 손해 보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자신을 합리적 보수, 따듯한 보수라고 칭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국회의원 유승민을 포함한 위선적 정치인들이 주로 그 쪽에 주로 모여든다. 좌익진영도 중도란 깃발을 선호하는데, 그건 대중을 속이는 기만전술에 써먹기 좋다는 판단 때문이다.
 
중도를 표방한 채 덜 떨어진 우익세력과의 잠정적 합의를 위장할 수 있으니 좋고, 그 안에서 세력을 키우며 은인자중하기에도 딱 좋다. 때문에 좌익에게 중도란 '위장 용어’인데, 그러 저런 이유로 결정적 전기가 없이는  중도란 말이 한국사회에서 당분간 더 세력을 얻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귀뜸해주고 싶은 조언은 중도란 물과 기름을 섞어놓는 것처럼 구현 불가능할뿐더러 결과적으로 유익하지도 못하다는 점이다. 
 
한국사회 같은 곳에서 중도란 목소리가 높이 들린다면, 그건 곧 들이닥칠 재앙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곧 들이닥칠 재앙’의 징후를 나는 지난 4.13총선에서 이미 보았다. 밝히지만  그건 이념적 무뇌아에 다름 아닌 집권여당 새누리 소속의 의원의 면면이나, 20대 총선을 통해 국회로 진출한 상당수 야당 의원들의 수상쩍은 이념 성향 때문만은 아니다.
  
여전한 국보법 위반 전력자(19대 국회 23명,  20대 국회 20명), 또 역시 전과 비슷한 수준의 운동권 출신 의원들(더민주당 의원 123명의 경우 20대 국회에 57명) 못지않게 가슴 철렁했던 것은 따로 있는데, 이런 수상쩍은 의원들을 뽑아 여의도 국회에 보낸 이 나라 유권자들의  반(反)헌법적 정치의식이다. 미래한국의 적절한 지적대로 대책없이 좌경화된 한국사회는 선거를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덜컥 내놓는, 아찔한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위험사회다.

  
▲ 중도병(病)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정치의식은 언제 정상화가 될까? 애국가를 두고 버젓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사진=연합뉴스

 
유권자들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없고, 헌법적 가치에 대한 충성심도 엿보이지 않는다. 일반 유권자들의 상태가 그러하니 이 나라의 관리자인 100만 명 공무원 무리도 마찬가지다. 일테면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집단거주하는 세종시의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무소속 이해찬 후보가 당선됐는데, 이게 무얼 의미하는가? 개표 결과 그가 득표율 43.7%로 새누리당 후보(36.0%)보다 7.7%p나 높았다.
 
심상치 않은 건 따로 있는데, 공무원들이 모여 사는 지역(아름동과 도담동, 한솔동)에서는 거의 이해찬 몰표가 쏟아져 나왔다. 이 3개 동 유권자(8만11명)는 새누리당 후보를 26.2% 지지한 반면, 이해찬에게는 2배 이상 높은 52.8%를 몰아줬다. 이걸 두고 신문과 방송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성과연금제 도입, 공무원 연금 개혁 등에 대한 불만이라고 분석했지만, 너무 미시적인 접근이다. 
 
내 눈에 그건 공무원 집단이 얼이 빠졌다는 것, 그 결과 헌법에 규정한 정치적 중립 의무를 결정적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에 다름 아니었다. 그들이 선택한 이해찬이 어떤 위인인가? 좌익 맹동세력을 말하는 친노 세력을 포함한 좌익-좌경세력의 숨은 사령탑, 빅 브라더로까지 지목되는 위험인물이다. 그런 그를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공무원 집단이란 대체 어떤 종류의 혼란스러운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상식이지만 정치적 중립이란 대한민국 헌법에 충성하는 정당들 사이에서의 중립을 말한다. 지금 공무원 집단은 그 명제를 잊고 있다. 거대한 착각이다. 친노세력을 포함한 좌익세력을 품고있는 더민주나 국민의당은 정상적인 야당이 못되며, 통진당과의 야권연대 흑역사가 보여주듯 이념적 정체성이 심히 의심스러운데, 세종시 공무원들의 눈엔 미운 집권여당 새누리보다 매력적이고 양심적이다.
 
백 번을 양보한다 해도 야당 더민주가 대한민국 헌법에 충성하는 정당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런 정당 구성원 중의 가장 왼쪽에 있는 세력을 대표하는 이해찬에게 몰표를 준 공무원 집단이란 그럼 무엇일까? 그들은 '이념적 백치’이거나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도가 심히 의심스러운 집단에 다름 아니다. 과민한 것일까? 아니다. 이 나라 공무원 집단의 '배신의 정치의식’은 의외로 뿌리가 깊다는 걸 나는 안다. 
 
1공화국의 몰락을 예고했던 것이 1956년 정부통령 선거인데, 당시 벌써 '배신의 정치의식’이 드러났다. 당시 선거에서 이승만은 55.7% 지지를 얻어 당선됐으나 진보당 조봉암이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23.8%를 얻었다. 선거기간 중 급서했던 신익희에 대한 추모표(무효표)가 20.5%나 쏟아져 나왔다.  자유당의 1차 위기가 그때 찾아왔다. 그때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훗날 4년 뒤인 1960년 3.15선거의 무리수를 두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 좌파정부 10년 동안 지속된 한국사회 해체 작업과 이에 따른 충격 누적이 실로 컸다. 이때 이후 문화권력까지 저들에게 모두 내줬으며, 지식인과 대중의 대다수가 좌파정서에 끝내 함몰됐다./사진=연합뉴스


거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얘기이지만, 요즘 우리들은 당시 내무장관 최인규를 포함한 자유당 강경파들을 너무도 쉽게 손가락질한다. 저들의 정치의식의 저변을 들여다볼 생각을 아예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뜻밖에도 3.15선거를 주관했다는 이유로 형장의 이슬이 된 당시 내무장관 최인규의 이런 증언은 외면할 수 없다. 
 
60년 전 선거에서 공무원들은 붕 떠 있는 채로 미래권력인 민주당에 줄을 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기회주의적 속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정적으로 그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데 따른 현상이고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임을 그는 논리정연하게 지적하고 있어 우릴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건 2000년대 초반 지금의 한국인 일반과, 얼빠진 공무원들의 민낯이기도 하다.
 
“경찰 아닌 일반 공무원들은 공공연하게 반정부 반여당적이었다. 신익희씨 생존시에는 경찰간부들도 대부분 민주당과 선을 대고 두 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서울을 위시하여 각 도청 소재지의 일반 공무원들은 대개 민주당으로 기울어지고 전주(全州)의 도청직원들은 신익희씨가 급서하셨다는 말을 듣고 통곡을 하고 근무까지 거부한 일이 있었다.… 공무원이 공공연하게 야당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적이고 애국적인 것 같이 인정되고 공무원이 현직 대통령으로 입후보하신 이승만 박사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중죄에 해당한다는 논리가 일반적이었는데, 그건  결코 성립될 수 없다.”(최인규 <옥중 자서전> 197쪽, 중앙일보사 1984년 펴냄)
 
이 발언은 최인규가 우리의 상식처럼, 공공의 적이거나 악마가 아님을 보여주는데, 다만 그는 본인의 표현대로 대한민국 정부를 강력한 반공 궤도 위에 세워놓고 운영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인용 대목만 그런 게 아니라 <옥중 자서전> 전체가 그러하다. 그랬기 때문에 최인규는 장관 취임 일성으로 “공무원은 국가원수에게 충성을 다하고 굳게 뭉치라”고 호소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가 그걸 과도하게 실천했다는 점이 아닐까?
 
그런 최인규를 쉽게 욕할 경우 우리들은 위선자로 전락한다. 좋다. 그에 대한 갑론을박을 떠나 오늘 짚어볼 대목은 예나 제나 이 나라 공무원들의 흔들리는 정치의식이란 의외로 뿌리가 깊다는 점이다. 반복하지만 저들의 취약한 국가관, 그리고 체제수호 의지 부족이 문제이고, 그게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떠받칠 정치사회적 부력(浮力) 부족으로 이어진다. 공무원 집단이 그 지경이니 대중이야 오죽하겠는가? 
 
중도란 말은 소통-통합-실용주의-화합 등과 함께 위선적 가짜 구호의 하나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사회통합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있었고, 지금 정부에서도 닮은꼴의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작동하는 것도 그 배경인데, 그건 좌파정부 10년 동안 좌편향된 사회풍토 속에서 최소한의 사회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며, 실질적인 효과는 없기 마련이다. 사회갈등을 유예(猶豫)하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중도병(病)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정치의식은 언제 정상화가 될까? /조우석 주필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일침'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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