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영국 경제발전의 기틀은 동인도회사·중상주의 척결

자유경제원 / 2016-09-03 / 조회: 8,605       미디어펜

대영제국의 기틀을 다진 기업의 힘


영국 동인도 회사는 1600년에 창설되어 1858년까지1) ‘희망봉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지역에서 무역독점권을 가지고 영국의 대아시아 교섭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출현은 절대왕정의 중상주의를 기본으로 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경제정책의 일환이었다.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통해 인도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강화하고 자국의 영구적인 이권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하였다. 동인도회사는 17세기 식민지를 확장하여 상업영토를 넓히려고 한 영국의 꿈과 맞물려있다. 동인도회사는 1750년경까지는 동인도 지역과의 무역을 통해 상업적 이익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프랑스가 개입하면서 상황은 변했다.2) 


영국은 1757년 플라시 전투에서 벵골토호국과 프랑스군 연합세력을 물리쳐 벵골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한 후에 인도 전체를 식민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1773년에는 인도통치규제법을 제정하여 동인도회사가 인도 통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신윤길3)은 그 변화를 다음 3가지로 요약하면서, 이러한 변화가 1760년 영국의 산업혁명의 시작과 시기적으로 겹친다고 하였다.

 

첫째, 동인도 회사는 인도에서 정복전쟁을 되풀이하면서 광대한 영토에 대한 정치적 주권을 획득함으로써 상업 활동뿐만 아니라 통치기관의 기능을 맡게 되었다. 1765년 벵갈 지방에 대한 징세권을 획득함으로써 정치적 주권자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둘째, 종래 동인도 무역에서 배제되었던 상인과 제조업자들이 무역개방을 요구하고, 동인도 회사는 이를 수용하였다. 1793년에는 동인도 회사의 선박 적재량 가운데 연간 최저 3,000톤을 회사 이외의 사람에게 개방하기 시작하여, 1813년에는 인도무역을, 1833년에는 중국무역을 개방함으로써 동인도회사는 자신의 상업 활동을 중단하였다. 


셋째, 동인도회사의 활동에 대한 본국 정부의 간섭과 통제가 진행되었다. 1773년 노스 규제법을 시작으로 1784년에 제정된 피트 인도법은 정부와 동인도회사 이사회라고 하는 두 세력이 병존하는 이중의 통치 시스템을 낳았다. 본국 정부는 피트법을 통해 동인도 회사의 민정ㆍ군사ㆍ세무 활동을 정부기관인 감독국의 통제 아래에 두었다. 이 법은 동인도회사의 통치활동과 상업 활동을 형식적으로 구별하면서 통치 활동을 본국 정부의 권한으로 확립하였다. 그리고 1858년 본국 정부는 인도를 직할시로 바꾸면서 실질적으로 동인도회사는 역사에서 종지부를 찍었다. 동인도회사를 통한 영국의 인도 지배 정책이 끝나고 영국 국왕에 의한 직접 통치로 진입한 것이다.


   
▲ 그림은 18세기 런던의 동인도회사 본사 전경./자료=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


이후 동인도회사는 배당이익수령단체로서 1874년까지 존속하지만, 실질적인 기능은 1858년에 끝났다. 동인도 회사가 소멸한 때는 소멸은 영국이 산업혁명을 완성하고 세계의 공장으로서 세계시장에 군림한 빅토리아기 중기였다.


그동안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과 관련하여 동인도회사의 역할은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 영국의 자본주의는 자생적이고 국내에서 발전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에 대한 지배적인 해석에 따르면 전기 상업 자본에 해당하는 동인도회사는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에 방해물이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근대 산업자본이 출현함으로써 동인도회사의 상업 자본은 쇠퇴하고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해석은 영국의 자본주의의 아시아 시장 제패는 오로지 생산력과 자유무역 정책에 의해 달성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또한 이런 해석은 동인도회사가 가혹한 정복전쟁, 폭력적이고 주구적인 활동을 수행한 기관이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영국 자본주의의 발전을 “아메리카에서 금은의 발견, 원주민의 섬멸과 노예화 및 광산에서의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의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서의 전환을 본원적 축적의 주요 계기”로 보았다. 


그는 영국의 자본주의가 매뉴팩츄어 시대에 이루어진 잔인한 폭력을 본질로 한 식민제도를 통해 ‘대공업의 유년기에 거대한 성장을 이루었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견해에 따르면 영국 자본주의 발달에서 동인도회사의 역할이 중요했다고 할 수 있다.4) 동인도회사에 대한 역사 해석이 관점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일본의 하네다 마사시도 동인도회사를 기존의 입장과 다른 관점에서 조명했다. 그는 ‘세계전체를 하나로 인식하는 역사적’ 관점에서 16세기를 해석했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16세기는 ‘아프리카와 신대륙을 포함해 세계 전체가 상품 유통과 사람의 이동으로 인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인류사상 처음으로 지구가 일체화’한 시기이다. 이런 관점은 유럽중심주의도 아시아중심주의도 아니다.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만들어낸 ‘세계의 역사’가 존재한다.5)


“근대 유럽은 결코 지리적 의미에서의 유럽과 유럽인의 힘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동인도회사가 운반한 아시아의 산물과 아메리카대륙의 은이 유럽의 풍족함을 가져왔다. 또 뛰어난 아시아 상품을 목표로 기술혁신이 일어났다. (중략) 유럽은 그들이 진출한 여러 지역에서 많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정치기구, 사회제도를 쇄신했다. 그리스도교를 넘어 새로운 세계관과 자기인식을 계발해 과학기술과 학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이처럼 유럽 이외의 지역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근대 유럽은 결코 탄생하지 못했다. 근대유럽은 일체화한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이 하나가 되어 탄생시킨 세계 전체의 자식인 셈이다.”6)


마사시는 유럽이 근대의 ‘주인공’이 된 이유를 서양문명의 특성이나 신의 섭리가 아니라 지리적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빚어낸 역사적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동인도회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 그림은 과거 동인도 회사의 공식휘장(Official Seal of East India Company)./자료=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


동인도회사를 어떻게 해석하든 동인도회사의 시작과 팽창은 영국의 절대왕정 시대에서 자유무역시대에 걸쳐 있다. 절대왕정시대는 식민시대를 거쳐 제국주의로 연결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동인도회사를 긍정적인 측면에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인도회사가 영국의 자본주의 발전에서 마르크스나 마사시의 해석과 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면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과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인도회사의 출현은 절대군주의 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절대군주가 동인도회사에 독점권을 부여한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절대군주에게 좋은 것이 시민들에게도 좋은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며, 절대왕정의 이익과 일치한 초기 동인도회사 활동의 바탕이 된 중상주의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비판한 경제이론이다. 아담 스미스는 국부를 증대하기 위해서는 중상주의를 끝내야한다고 생각했으며, 중상주의의 소멸에서 시작되는 자유무역이 국부를 늘려 시민들의 삶을 개선할 것이라고 믿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대한 무역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보여주는 것처럼 17세기에 영국은 독점을 강화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17세기 말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에 사(私)무역 상인은 절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동인도회사에 소속된 선박만이 희망봉 루트를 넘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동인도회사에 소속된 모든 사람들이 사적인 경제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담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동인도회사의) 전 구성원은 (인도 현지에서) 많으나 적으나 자신의 대금지불로 무역거래를 행하여 왔는데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헛수고였다. 10,000마일 먼 곳에 떨어져 있어 거의 감시의 눈도 미치지 않은 곳에 있는 한 영업소 사무원이 주인에게 받고 있는 온당한 봉급으로 만족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 말은 동인도회사 사원들이 사(私)무역을 통해 자신의 수입을 늘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원들의 사(私)무역은 회사의 공무역과 달리 다양한 상품으로 확대되었다고 아담 스미스는 말하였다.7) 동인도회사는 자유기업이나 경제자유와 대척점에 서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당해 보인다. 영국에서 참된 자본주의 발전과 자유 시장을 통한 경제 발전은 중상주의와 동인도회사의 극복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은 관(官)의 선물이 아니라 민간의 획득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서양의 역사에서 확대되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는 투쟁의 산물이지 국가 시혜의 결과물이 아니다. 어느 사회에서나 경직된 관료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유는 그것을 깨려는 사회적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관료의 반성적 자각으로 깨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과거 역사를 오늘의 시각에서 재단하고 평가하는 ‘관념론적 역사관’에 대한 비판적 성찰도 필요하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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