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야말로 모든 중독의 근원
중독은 물질이 아닌 환경 영향
우리는 우리(cage)에서 벗어나고 싶다.
고통 속에 있는 이에게 고통을 더 가중 시키지마라
우리 사회에는 중독이 정말 많다. 마약 중독, 니코틴 중독,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등 심지어 설탕중독까지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중독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법으로 규제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우리는 중독되는 것 훨씬 이상의 규제를 갖게 됐다. 두려움이라는 허상은
규제라는 실체가 됐다.
그런데 나는 중독에 관해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중독이 정말 물질로 인한 것이라면 모든 이들에게 왜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생겼다. 똑같이 담배를 펴도 누군가는 중독되고, 누군가는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게임에 중독되지만 누군가는 게임에 중독되지 않는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낸다면 틀림없이 규제라는 두려움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브루스 알렉산더(Bruce K. Alexander)라는 심리학자가 있다. 심리학은 중독을 두 가지 견해로
바라보는데 하나는 ‘화학적 반응’이 중독의 원인이란 것과 ‘환경에 반응’하는 것이 중독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심리학자는 환경 견해설을
지지하는 학자였는데, 어떤 약물도 ‘본질적으로’는 중독성이 없고, 유혹이 강한 약물에 반복 노출되어도 일반적으로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학자가 증거로 보인 사례가 몇 가지 있다. 먼저 베트남 전쟁에서 헤로인에 중독된 군인들이 전쟁터를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자
90%가 손쉽게 약을 끊었다는 점을 들었다. 만약 그 많은 군인들이 헤로인이라는 ‘물질’에 중독된 것이라면 그들은 마약에서 깨어날 수 없었을
것이고, 전쟁이 끝난 뒤 미국은 그 마약중독자들에 의해 큰 사회문제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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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사회에는 중독이 정말 많다. 마약
중독, 니코틴 중독, 알코올 중독, 게임 중독 등 심지어 설탕중독까지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중독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법으로
규제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고, 우리는 중독되는 것 훨씬 이상의 규제를 갖게
됐다./자료사진=연합뉴스 |
또 다른 증거로 ‘행복한 쥐 공원 실험’이란 것을 했다. 먼저 실험에 참가하는 쥐를 단것에 강하게 반응하는 쥐들로 두 그룹을 구성한
뒤, 이 쥐들에게 마약을 섞은 설탕물과 일반 물을 함께 놓아두었다. 한 그룹은 넓고 쾌적한 환경(쥐 공원)에 살도록 했고, 한 그룹은 좁고
격리된 우리(cage) 안에 살도록 했다.
좁고 격리된 환경에 있는 쥐들은 처음부터 모르핀이 든 마약 설탕물에 달려들었으나, 좋은 환경에 있는 쥐들은 마약이 든 설탕물을
거부했다. 이 설탕을 아무리 달게 만들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두 쥐를 비교했을 때 우리(cage) 안의 쥐가 ‘쥐 공원’의 쥐보다 16배나
많이 마약을 섞은 설탕물을 마셨다.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이미 중독된 상태라면 가정과 다른 결과를 보일 수도 있기에 또 다른 실험을 한다. 이 쥐들을 전처럼 쥐 공원과 우리(cage)
안의 두 그룹으로 분류한다. 57일간 모르핀이 든 물만을 주어서 모두 중독 상태로 만든 뒤 두 그룹의 쥐에게 일반 물과 모르핀이 든 물을
주었다.
우리(cage) 안의 쥐들은 모르핀이 든 물을 계속 마셨고, 쥐 공원에 있는 쥐들은 모르핀이 든 물을 장기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브루스 알렉산더는 이 두 가지 실험으로 중독이 본질적으로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다. 사실 이런 결과들은 정말 너무나 많다. 담배를
끊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어떤 도움 없이 혼자서 담배를 끊는다는 것도 이런 종류의 증거다.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됐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세계여행을 3달 동안 떠나볼지 혹은 3달 동안 게임이나 실컷해볼지’
물었을 때 게임이라고 대답할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 세상을 하나하나 체험하고 싶은 아이들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가상으로라도 체험해보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게임중독이라고 매도하는건 괜찮은걸까? 어떤 것에 중독 됐다고 말할 때는 그것 자체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중독을 필요로 하는
환경이 있는지 아닌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중독이라고 말하는 것들은 알고 보면 고단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결과다. 그러니까 무언가에 중독된 사람들은 사실 무언가로 인해
심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브루스 알렉산더는 “사람들이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약리적으로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고서는 힘든
상황에 효과적으로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말하며 약물 중독이 환경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중독이란 자신이 살아가길
원하는 세계와 현실세계의 괴리가 큰데 현실은 바꾸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독을 통해 자신의 세계관을 좁혀 현실과 이상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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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같이 담배를 펴도 누군가는 중독되고,
누군가는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게임에 중독되지만 누군가는 게임에 중독되지 않는다./자료사진=KBS1 화면
캡처 |
행복한 쥐 공원에서 쥐들은 중독되지 않았다. 똑같은 중독성분과 물을 줘도 쥐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짐으로써 쥐의 중독여부가 달라졌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자유가 만드는 풍요로움, 행복한 사람공원에서 도대체 누가 중독된다는 말인가. 중독은 물질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둘러싼 환경, 특히 제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인간은 쥐와는 달리 법과 규제라는 보이지 않는 ‘우리(cage)’도 인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법과 제도가 촘촘해지고 좁아질수록 우리는 공원에서 좁고 음침한 우리(cage)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인간의 자유를 짓밟는 이 모든 규제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어떻게든 적응하려 성냥 하나 켜고서 위로받으려는 이들에게 얼음물을 뿌리는
짓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고 있는 이들에게 ‘빵이 맛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하며 빵을 뺏는 것만큼 악랄한 짓이다. 예를 들어
환경이 중요하므로 오래된 경유차는 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이런 것의 예다.
자연환경을 보전하자는 것은 아름다운 이상이다. 그러나 낡고 오래된 경유차를 끌어야만 하는 이들에게 그마저도 빼앗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고된 노동을 하며 담배하나에 위로받는 이들에게 담배 값을 올리는 세금은, 퇴근 후 소주 한잔에 위로 받는 이들에게 소주 값 올리는
세금은 약한 자들에게 얼마나 악랄한 짓인가.
그들도 좋은 차타고 싶고, 담배 없이도 할 만한 좋은 직업을 갖고 싶고, 소주에 위로받지 않을 만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행복한
공원으로 가지 못하도록 자꾸 우리(cage)에 우리를 가두려는 이들이 정말 누구인가. 가난이야말로 가장 나쁜 종류의 폭력이다. 이 가난을
조장하는 자들이야말로 악마다.
정부가 자유를 줄 수 없다면, 우리를 가두고 있는 보이지 않는 창살을 제거할 수 없다면 가만히 있기나 해야 한다. 우리를 위하는 척
규제폭탄을 던지지 말고, 선심 쓰는 척 복지정책을 만들지 말고, 우리를 위해 세금을 올려야 한다는 뻔뻔한 거짓말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누구나
폭력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한다. 가난은 최악의 폭력이다. 정부가 스스로 가난에서 탈출하려는 자들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이미 이 폭력에 길들여져
버린 이들에게서 폭력을 제거할 수 없다면 겨우 위로받는 성냥이나마 빼앗지 마라.
거대한 정부야말로 모든 중독의 근원이며, 우리 고통의 직접적이고 궁극적인 원인이다. 쥐가 우리(cage) 안의 환경에 적응하듯, 인간은
보이지 않는 우리(cage)에 적응한다. 인간은 우리(cage) 속의 행복한 인간 공원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cage)를 걷어내라.
우리(cage)를 걷어내면 행복한 공원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 갈테니. 우리(cage)가 사라져야 우리는 진정 우리(we)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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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이 게임에 중독됐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세계여행을 3달 동안 떠나볼지 혹은 3달 동안 게임이나 실컷해볼지' 물었을 때 게임이라고 대답할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자료사진=포켓몬고 공식 트레일러 캡처 |
이 우리가 만들어진지 얼마나 오래 되었던지 요즘의 아이들은 중독될까봐 무엇이든 시작하기를 두려워한다. 인식의 감옥에 갇힌 것이다. 이
아이들을 우리에서 꺼내줘야 한다. 우리 바깥이 행복한 공원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우리는 이 정신의 쇠창살로부터 먼저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이 사회에 쇠창살이 하나하나 생길 때 마다 내 정신에도 쇠창살이 하나하나 생긴다. 나와 사회는 불가분의 것이기 때문이다.
자 이제 이 사회에도, 내 정신에도 겹겹이 박힌 쇠창살을 녹일 노래를 부르자. '그대여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아름다운 자유의 노래를...' /손경모 자유인문학회 회장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손경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