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원로들이 "개헌(改憲) 논의의 핵심은 '자유화'가 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개헌 이슈 중 정치권의 시선이 쏠려있는 대통령 4년 중임제나 이원집정부제 등의 통치체제는 미시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원로들은 그러면서 현재 헌법의 '경제민주화' 항목에 대한 수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유경제원은 3일 '민주화 헌법에서 자유화 헌법으로'를 주제로 학계 원로들과 함께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김영봉 중앙대 명예교수, 소설가 복거일 씨,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 김학은 연세대 명예교수 등이 참여했으며, 사회는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이 맡았다.
양동안 교수는 "헌법 개정을 국가적 대변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적절한 시점에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며, 수정해야 할 조항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양 교수는 먼저 헌법 전문(前文)의 '임시정부 법통'을 '임시정부 통치이념'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 법통은 의미가 모호한 비현대적 용어인 만큼, 오해와 상이한 해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더불어 5가지 수정 항목을 추가로 거론했다. 양 교수가 수정을 제안한 조항은 아래와 같다.
▲정당해산조항인 8조 4항 '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고치고, '국가 안보를 위험하게 할 때'라는 문구를 포함할 것.
▲예산안 편성 조항인 54조에 '예산국회 회기 중에는 예산안 심의 의결에만 전념한다'는 별도의 항을 신설할 것.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를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성실하게 심판한다'로 수정할 것.
▲119조 2항의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를 '경제주체간의 갈등 조정을 위하여'로 고칠 것.
▲향후 헌법 개정의 용이성을 위해 수정할 수 있는 항목과 절차를 3단계로 나눌 것.
김영봉 교수는 "1987년 헌법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한다면서도, 119조 2항에서 소득 분배를 위한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123조는 농어촌개발과 지역사회의 발전, 중소기업 보호·육성을 규정하고 있다. 자유민주국가 중 이런 조항을 헌법에 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조항을 빌미로 정치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국민 집단의 상대적 결핍이나 소외감을 부풀리고 강자 대 약자 대립을 부추겼다. 그 결과 오늘날 국민은 사소한 이익에 결사반대하고, 극한투쟁에 나서는 이기주의자로 길들어졌다"고 분석했다.
김영봉 교수는 "말할 것도 없이 이번 개헌의 절대 과제는 119조 2항 등 경제민주화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라며, "‘경제민주화’는 오늘날 오직 한국에서만 일상 용어로 쓰이고 있다. 경제민주화 조항은 향후 1인1표 노동자 경영제도 도입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소설가 복거일 씨도 "'경제민주화'라는 용어의 근본 정신은 공산주의"라며 조항 자체를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 씨는 "중국과 러시아가 '마르크스주의'의 정치체제를 택했는데, 임시정부가 그 영향을 받아서 임시정부 헌법에 좌익 성향의 강령들이 포함했고, 결국 대한민국 헌법까지 이어졌다"며 경제민주화 조항을 비판했다.
복 씨는 아울러 "경제민주화는 과거 영국 공산주의자들의 타협 방식이다. 영국 공산주의자들이 사회혁명 이후를 상상하면서 그린 경제계의 모습이 바로 경제민주화"라며, "이후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계속 변경됐지만 공산주의적 뼈대는 남아있다"고 말했다.
복거일 씨는 "(헌법에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빼야 한다.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므로 이미 민주화를 기본으로 한다. 자유민주라는 말 속에도 이미 민주화라는 개념이 충분하게 녹아 있다"고 덧붙였다.
박동운 교수는 자유경제원이 지난달 26일 진행한 '개헌 긴급 좌담회'에 대해 촌평했다.
박 교수는 “헌법 개정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는 법치주의 실현, 시장경제질서 확립, 개인의 자유 실현, 자유화 달성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이 부분이 반영될 수 있도록 헌법 제119조 2항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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