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연속 칼럼]-'건국 68년 된 대한민국, 비탈에 서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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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주필 |
어떤 헛똑똑이 철학교수는 촛불을 두고 "국민이 주체이고 국가가 객체임을 선포한 경이로운 평화축제"라고 치켜세웠다. 가관이다. "찬란한 공화정의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는 3류 선동으로 마무리된 그 따위 글이 조선일보(12월12일 윤평중 칼럼)에 실려 우릴 더 당혹스럽게 하지만, 그와 전혀 다른 판단을 나는 갖고 있다.
이미 밝힌 대로 촛불은 대중광기의 표출이자, 폭민(暴民)정치의 출발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체제변혁 민중혁명으로 치닫는 중이다. 내일(12월17일)이 또 한 번 고비인데, 위선적 지식인-언론이 떠들어대는 시민혁명 타령과 달리 아차 하는 순간 그 촛불이 대한민국을 태울 수도 있음을 새삼 경고해둔다.
대한민국 태울 촛불의 정치학
그래서 불길한데, 단순 교통사고를 미군에 의한 기획살인으로 몰아간 2002년 효순-미선 사건 때 촛불이 정치 전면에 등장하지 않았던가? 2년 뒤 노무현 탄핵 때도 한 몫을 하더니 2008년 광우병 때 다시 타올랐다. 모두가 예고편이었다. 촛불의 절정이 바로 지금이다. 촛불 뒤에 가려진 반대한민국 세력은 지금 목표인 민중혁명까지 가려고 몸부림이다.
그래서 이번이야말로 촛불 대(對) 대한민국 사이의 대회전인데, 그런 판단 속에서도 의문은 모두 풀리지 않았다. 이런 것 때문이다. 대체 한국인 정신세계와 집단심성이 어떻게 잘못 되었기에 이 지경인가? 왜 우린 21세기를 살면서도 근대시민에서 한참이나 먼가?
때만 되면 괴담에 깨춤을 추는 한국인을 만든 건 누구인가도 영 궁금했는데, 지난주 의문의 대부분이 풀렸다. 우리시대 자유주의 이념의 진지(陣地)인 자유경제원 연말행사 '자유의 밤'행사(마포 가든호텔)였는데, 짜릿했다. 오랜 갑갑증이 너른 시야 속에서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날 행사 하이라이트가 2016년 자유인상(賞)을 받았던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10분 스피치였는데, 그것에서 결정적 암시를 받은 것이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 건국 이후 현재에 이르는 교육철학이 결국엔 가장 큰 문제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면, 한국인은 지금도 조선시대 서당에서 가르쳐졌던 성리학의 초급윤리인 '소학(小學)' 수준에 딱 멈춰있다. 그래서 근대의 복판을 살면서도 막상 근대의 핵심원리가 무엇인지를 모른 채 살고 있다.
"근대가 실종됐다는 오랜 문제의식을 안고 몇해 전 초등학교 도덕-사회윤리 1~6년 과정 교과서를 모두 구입했습니다. 그 안에 한국인이 이해한 근대의 원리와 가치가 어떤 형태로나마 녹아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는데, 교과서에는 이웃 예절-정직-성실에서 근면-효도-우정 등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근대를 결코 말할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 교육은 근대의 실종이 특징이며, 근대가 실종됐다는 것 자체도 잊고 산다. 일테면 초등학교는 물론 중고교와 대학에서 송두리째 빠진 것은 근대의 원리와 핵심가치 두 가지다. 첫째 개인의 발견이다. 둘째 그런 개인들이 모여 만든 협동적 질서로서의 국가와 사회(기업+시장)의 발견이다.
물론 교과서에 '국기에 대한 맹세'가 나오고, 애국가와 태극기가 등장하며, 이순신-신사임당 등 전통인물도 소개된다. 국가상징물이 나오고 옛 인물을 배운다 해도 한계가 있다."나는 자유로운 개인이다”는 발견, “그리고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는 정체성 확인이 없는 건 모두 헛것이며, 근대의 부재(不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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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훈 교수는 창의력-인성 같은 공허한 철학의 빈자리를 채웠던 게 민족지상주의라고 지적했다. 민족지상주의는 우리민족끼리의 맹목성과 친북 성향이 있다. 지금 광화문 거리를 메우는 촛불시위 군중의 멘탈리티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은 2016년 자유인상(賞)을 수상한 서울대 이영훈 교수. |
"초등교과서는 조선시대 소학(小學)"
현행 초등 교과서에 담긴 내용이란 조선시대 소학과도 닮은꼴이지만, 서양중세나 스탈린 시대 그리고 북한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초보적 도덕과도 다를 게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일까? 아니다. 대한민국에 근대의 원리를 제대로 등장시킨 위대한 산타는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었다.
"이 새로운 나라 대한민국은 개인의 근본적인 자유를 보호하는 민주정체입니다."라고 건국 당시 그는 선포했다. 그건 근대 한국인 탄생의 역사적 선언이었다. 기존까지 한국인은 성리학적 윤리에 통합된 소농(小農)사회 멤버였는데, 그것에서 벗어나는 극적인 순간이었다. 자립적 개인이자, 근대국민으로서 재탄생을 뒷받침한 게 1949년 교육법이었다. 이 교수의 이어지는 통찰도 썩 흥미진진했다.
"그런 교육철학은 박정희 시대까지 쭉 이어집니다. 68년 국민교육헌장의 경우 권위주의적 통치를 위한 국가주의 냄새가 난다고들 하지만, 공부해보니 그것만은 아니더군요. 그건 49년 교육법에 뿌리가 닿아있고, 그게 한국인의 형성과정이 분명했습니다. 문제는 문민정부 김영삼 시절부터 무서운 해체 과정이 시작됩니다."
즉 김영삼이 국민교육헌장을 폐기처분했고 교육기본법을 만들었는데, 이게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김영삼은 49년 교육법에 담긴 개인의 발견-근대국가의 탄생을 전혀 이해 못했고, 창의력개발-인성함양 따위로 대체를 했다. 그걸 민주교육의 목표로 설정하는 바보짓을 했던 것이다.
왜 그게 바보짓인가? 이승만의 네이션빌딩 원리인 반공자유주의, 박정희의 조국근대화란 근대의 원리인 개인 발견과 근대국가를 전제로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거대한 성공을 거뒀는데, 김영삼 이후 모든 대통령과 한국사회는 그걸 잊기로 작정했다. 근대가 집을 나가고, 창의력-인성 같은 공허한 철학이 주인행세를 해온 지난 20여 년, 진짜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창의력-인성 같은 공허한 철학의 빈자리를 채웠던 게 민족지상주의입니다. 민족지상주의는 우리민족끼리의 맹목성과 친북 성향이 있거든요. 이 나라의 좌익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그걸 심어준 겁니다. 지금 광화문 거리를 메우는 촛불시위 군중의 멘탈리티가 바로 그런 겁니다. 그들에게 자립적 개인과 국가라는 근대는 자취도 없는 것이구요."
그날 스피치에서 이 교수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수상연설은 교육철학에서 출발했다가 뜨거운 현실인식으로 돌아왔는데, 그래서 잊을 수 없었다. 합리성이나 이성은 물론 없으며, 근대 시민의 자유를 부정하는 걸 광장민주주의로 포장하는 촛불군중의 실체를 제대로 알게 해준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의 위대함, 다른 대통령들의 저열함
보너스 발언도 썩 훌륭했다. 눈먼 민족주의는 건강한 힘이 아니고, 전통시대의 부족주의 내지 가족주의의 변형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촛불 시위는 '자유의 확장으로서의 통일' 즉, 헌법 제4조가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큰 원칙을 외면한다. 그의 스피치는 여기까지다.
독자들에게 권유하지만, 이참에 그의 저술 <대한민국 역사>, <대한민국 이야기>,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이상 기파랑 펴냄)을 모두 읽는 게 좋다. 꼭 10년 전 그가 엮은 묵직한 단행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2권, 책세상)도 챙겨보시길 바란다.
고백하지만, 경제사학에서 출발해 현대사의 핵심을 너른 시야에서 짚고 있는 이영훈 교수의 성찰을 다양한 통로를 통해 접할 수 있다는 건 숫제 거대한 행운에 속한다. 거짓과 광기가 춤추는 이런 시대를 살면서 이만한 즐거움도 없다.
실은 일주일 전 그의 스피치에 받은 감흥을 요즘 나는 100배로 즐기고 있다. 그가 올 여름에 했던 강의 동영상 '환상의 나라' 13강(講)을 유튜브로 보는 재미 때문이다. 그날 스피치는 '근대의 실종' 강의편에서 자세하게 등장하는데, 그걸 메모해가면서 더 큰 공부가 됐음을 밝혀둔다.
아직도 촛불집회를 '즐거운 시민혁명'으로만 아는 정치적 헛똑똑이 그룹 혹은 위선적 리버럴리스트 그룹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이영훈 교수의 스피치를 통해 일단 대신했다. 본래 구상대로 다음 회에서 체제변혁 민중혁명의 구체적인 방식과 내용을 한 번 더 설명할 생각이다. 반복하지만 대한민국은 지금 비탈에 서있다. 사람과 사회 모두가 위험천만하다. /조우석 주필
[조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