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평등"…대한민국에서 진짜 혁명이란?

자유경제원 / 2016-12-15 / 조회: 10,470       미디어펜
  
▲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혁명은 전통의 새로운 시작이다

시대의 위대한 질서는 처음에 나타났듯이 다시 탄생한다 ‘-베르길리우스-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에게 혁명은 반대든 찬성이든 부여하는 고정적 가치가 있지만 자유주의자에게 혁명은 복잡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령 보수주의자에게 혁명이란 역사의 주관자인 창조주가 하시는 일이지 죄 많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초월적인 세계관은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수주의자들이 실패를 예견했던 프랑스혁명은 실패했고, 역시 실패할 거라 확신했던 유물론적 공산주의 혁명들도 실패했다.

19세기초 독일의 탁월한 보수주의 법철학자 프리드리히 슈탈은 독일에서 공산주의 운동이 막 싹트던 때에 공산주의에 대해 ‘실패한 神’으로 일찌감치 규정해 버렸다. 이 부분에서는 스코틀랜드 자유주의 전통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인간의 불완전한 이성과 죄로 인한 욕망은 결코 세계를 마음먹은 대로 설계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아나코캐피털리스트인 라스바드에게서도 보여지는데, 그는 ‘진보는 마음먹은 대로 세상을 도화지에 그릴 수 있다는 고질적 병을 앓고 있다’고 ‘자유의 윤리학’에서 썼다.막스베버는 근대의 합리성이 혁명을 초래한다고 생각했다. 모순율은 제거되어야 하며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합리주의가 극도의 비합리성을 보여준 사례는 중국의 문화혁명기에 등장한 ‘잡초론’이라 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는 옳기에 ‘사회주의의 잡초를 심을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키워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었다. 프랑스인들에게도 비슷한 성정이 있는지 한때 좌파철학자인 사르트르에 대한 철학적 비판이 있자 ‘사르트르가 틀렸다면 우리 모두는 사르트르와 함께 틀리겠다’는 말이 유행을 탔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자에게 혁명이란 무엇인가. 

자유주의는 혁명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될 것이면 될 것이고, 아니라면 되지 않을 것이므로 결국 혁명의 내용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은 철학적 보수주의와 일맥 상통한다.  레오 스트라우스와 같은 고전주의 정치철학자는 ‘Good Society'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혁명이든 개혁이든 뭐든 하자는 이는 그것이 현재보다 ’더 좋음(Better)'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Better는 Good을 다시 전제로 해야한다. 그걸 공론(公論)의 장에서 따져보자는 것이 레오 스트라우스의 입장이다. 

  
▲ 우리에게 혁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언제나 위대한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는 것이 틀림없고, 그러한 질서를 통해 우리의 자유를 더 확장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사진=연합뉴스


참된 혁명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과 변화’

현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혁명론>에서 Revolution이란 ‘불가항력성을 띠는 복고적 회전 운동’을 의미한다고 고찰했다. 혁명이 불가항력적이라는 것은 이해가 되는 바이나, 혁명이 복고적 회전운동이라는 말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아렌트의 이러한 혁명에 대한 성찰은 탁월함을 갖추고 있다. 

혁명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전통과의 단절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가치나 질서를 되살리는 ‘새로운 공적 질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이유로, 혁명은 ‘없는 가치, 없는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야만과 파괴에 다름이 아니다.

혁명을 뜻하는 Revolution이라는 말은 Revolvō (“roll back, revolve”)에서 왔다. 그 의미는 회전시킨다는 뜻으로 탄창이 회전하는 리볼버 권총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리볼버 권총에서 탄환이 발사되고 나면 탄창은 리볼빙되면서 다른 탄환을 장착한다. 없는 탄환을 만들어 쏘는 것이 아니라, 있던 탄환이 새로이 장착되는 것이 Revolution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시작’은 전통의 미덕과 연계된다. 로마의 건국은 그 자체로 혁명이었으며 그리스의 재건이었고, 미국의 독립혁명은 다시 로마의 재건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에 대해 “베르길리우스에 따르면, 로마는 트로이의 부활이며, 로마 이전에 존재하였던 도시국가의 재건이다”라고 해설했다.

혁명은 언제나 자유의 정치적 문제이다

아렌트는 혁명을 건국의 정치적 행위와 결부시켜 이해했다. 진정한 혁명은 파괴와 해체가 아니라 언제나 더 나은 통치적 질서를 건설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며 그것은 전통적 가치나 질서와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을 통해 발현된다. 이때 혁명이란 언제나 ‘정치적’인 것만을 의미하며 ‘사회적’이나 ‘경제적’ 이슈가 본질이 아니게 된다. 그 정치적인 것의 본질은 ‘자유’다. 

아렌트에 의하면 프랑스혁명이 실패는 정치적 자유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열망에 가난한 이들의 분배요구가 가세하면서 시작되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혁명의 실패도 결국 자유의 공적 질서를 ‘프롤레타리아’라는 사회적 계급론으로 치환시킨 결과였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문화혁명의 실패가 여실히 보여준다. 혁명은 자유를 쟁취하고자 하는 것이며 꽁도세르는 이를 ‘혁명이란 언제나 자유에 관한 것’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흔히 우리는 자유주의 이념의 기초가 되는 프랑스인권선언이 프랑스 대혁명의 결과라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로비에스피에르를 중심으로 했던 급진적 자코뱅당의 폭압적 혁명이 프랑스인권선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프랑스인권선언의 미덕은 자코뱅당을 숙청한 부르주아 온건 반혁명파 지롱드당의 ‘테르미도르의 반동’이 가져온 결과였다. 

한나 아렌트는 이 테르미도르의 반동이야 말로 진정한 혁명이었다고 평가한다. 군중을 선동하는 폭압적 파퓰리즘적 압제로부터 자유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혁명이 언제나 자유를 지향하는 것이라는 점은 프랑스인권선언에서 평등에 대해 ‘자유를 위한 평등’(Equality for Freedom)라는 명확한 개념화로 잘 드러난다. 인간은 자유롭기 위해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지, 평등하기 위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때 평등은 공적 권리에 있어서의 평등이다. 그리고 공적 권리란 사회적이거나, 경제적이 아니라 언제나 정치적임을 의미한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통한 건국의 혁명기에 미국인들은 분배의 정의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영국의 명예혁명 역시, 자유와 소유에 관한 것이었지 분배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은 파리꼬뮨으로 하여금 가격통제와 같은 것으로 배분의 정의를 추구하려들었다. 그 결과는 고통이었을 뿐이다. 

  
▲ 혁명이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지만 그것은 전통과의 단절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가치나 질서를 되살리는 ‘새로운 공적 질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는 이유로, 혁명은 ‘없는 가치, 없는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야만과 파괴에 다름이 아니다./사진=연합뉴스

혁명을 원한다면 위대한 전통을 발굴하자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혁명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도 대답은 분명해진다. 우리에게 혁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언제나 위대한 전통을 현대에 되살리는 것이 틀림없고, 그러한 질서를 통해 우리의 자유를 더 확장시키는 것임에 틀림없다. 즉 우리든 서구든 혁명이란 자유의 잠재곡선을 공적 질서내에서 차원적으로 키워내는 것이 된다. 

그것은 파괴나 맹목적 전복과 해체가 아니라, Productive한 긍정의 질서여야 한다. 이에 대한 가치지향이 있다면 언제나 Good Society를 전제로 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공론의 장에서 토론되어야 한다. 즉 ‘혁명을 위한 혁명’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위대한 전통의 복원이 진정한 혁명이 된다는 이치라 할 수 있다. 그러한 혁명은 다시 전통이 된다. 

그러면 이제 묻게 된다. 대한민국의 혁명을 위해 우리가 돌아보는 위대한 전통은 무엇인가? 당장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던 ‘닥치고 평등’은 아닐까 싶다. ‘니 까짓 게..’하는 우리의 유별난 대결의식과 과대망상은 곧잘 ‘왜 나만 가지고 그래’라는 피해망상으로 전화된다. 위대한 전통의 부재가 낳고 있는 말종(末種)의 현실이다.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


(이 글은 14일 자유경제원이 마포 리버티홀에서 주최한 '세계사를 알면 한국의 갈 길이 보인다 4차 연속세미나: 프랑스혁명과 광장민주주의'에서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발표한 토론문입니다.)

[한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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