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은 ‘프랑스 혁명과 광장 민주주의’라는 토론회(2016년 12월 14일, 자유경제원 리버티홀)를 열고, 구체제 붕괴를 상징하는 프랑스혁명(1789)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광장민주주의에 주는 교훈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고찰했다. 현진권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의 발제, 남정욱 대한민국문화예술인 대표, 임종화 경기대 무역학과 교수,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각각 토론으로 참여했다. 다음은 김광동 원장의 발제문을 요약한 것이다.<편집자주>
▲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미래한국 편집위원 |
광화문 광장 시위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지만, 헌재가 심리를 시작한 지금도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시위대는 대통령 탄핵소추로 대통령 대행을 맡은 권한대행까지 퇴진하라고 주장하고 헌재에 의해 탄핵이 기각되면 혁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관계와 법리적 과정을 기다리기 전에 겁박과 폭력으로 판을 이끌어가겠다는 기세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가운데서 법치를 무시하는 광장정치의 망령이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프랑스 혁명이 광장정치의 모델이라고?
프랑스 혁명(1789)을 광장정치의 성공적인 모델인 것처럼 여기며 대한민국 정치도 프랑스 혁명을 따라야 한다고 하는 주장들이 광장정치의 저변에 흐른다. 프랑스 혁명은 민중의 힘이 구체제 붕괴를 이끈 민중혁명을 상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프랑스 모델을 상정하는 정치세력과 사회단체들의 사고와 행동은 저항과 혁명(revolution)을 통한 붕괴와 처단 및 청산정치를 향하고 있다. 자코뱅정부(1793)와 파리코뮨(1871) 같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의 원형(prototype)이 준거로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각종 대중 집회에 레미제라블 영화와 뮤지컬이 활용되는 것은 선동적 노래와 함께 바리케이드와 군중간의 대치 구도로 끌고 가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던 집회에서도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오케스트라를 동반한 야외 공연을 있었고 레미제라블 OST,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는 대표곡이 되어 군중을 선동하는 수단으로 등장했다.
한국 좌파가 저항과 붕괴, 인민재판과 단두대로 상징되는 프랑스 혁명에 집착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착오이자 시대에 대한 착오다. 프랑스 혁명은 1581년의 네덜란드, 1688년의 영국, 1774년의 미국 등 성공적 모델과 달리 대표적 실패 모델일 뿐이다. 실패 체제를 반복하면서 새로운 가치와 제도를 확립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1789년 이후 100년간 계속된 저항과 붕괴, 인민재판과 단두대로 이어진 프랑스의 역사는 끌어내리기와 학살의 역사나 다름없었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의 놀이공원에 가보면 가장 인기 있는 놀이기구로 업-다운이 반복되며 심하게 흔들리는 롤러코스터가 하나 있다. 그 이름이 프렌치 레볼루션(French Revolution)이다. 30년 이상 가장 사랑받는 놀이기구이기도 하지만 오르락내리락과 정신없는 흔들림을 반복했던 프랑스 혁명을 비유한 작명(作名) 감각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근현대사, 특히 혁명 역사가 롤러코스터와 같다는 것은 한국 지식인을 제외하면 누구나가 아는 것이다.
제도로 통치되지 않는, 반복된 폭민동원적인 프랑스 혁명은 실패였고 잘못된 역사 전개였다는 분명한 사실에도 한국에서는 오히려 그것을 모델로 삼고 있다. 모택동을 존경하는 지도자라 공개 거론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미국에 사진 찍으러 가냐고 비아냥거리더니, 프랑스 정치를 모델로 삼는 청산을 제기하고 기회주의적 부역자(附逆者) 처리가 한국 사회의 과제라고 천명했던 바 있다.
흔히 자주 거론되는 ‘세느강은 좌우를 나누고...’와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같은 표현 등도 프랑스 정치에 대한 애정과 모델이 우리 사회에 투영된 단면들이다.
▲ 한국 사회는 프랑스 혁명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 역사를 만든 프랑스인 조차 프랑스 혁명을‘피의 악(惡)역사’로 평가한다. |
법치를 벗어난 광장은 폭력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각종 시위에는 여전히 부역자란 표현이 난무하고, 정치권과 언론, 심지어 기업에서까지도 부역자란 표현이 난무하고 있다. 부역자란 반혁명세력, 즉 기득권층 또는 부패한 권력에 가담한 인사와 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청산과 처단의 대상이며 인민재판에 올려 처단해야 할 살생부 낙인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반복적으로 부역자를 만들어내고, 그 부역자 처단을 일삼는 프랑스 혁명을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처형의 역사이자, 반복된 실패 역사를 모델로 삼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패한 러시아 혁명(1917)과 중국 문화혁명 당시의 홍위병에 의한 인민재판과 처단 행위, 혹은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대학살이 프랑스 혁명의 빗나간 계승의 역사적 사례다.
실제 프랑스인들조차도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200여 년이 지난 1989년,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대대적 재평가를 했고, 혁명은 끝없는 폭력, 시행착오와 과잉행위의 연속으로 이어진 ‘지속적 재난’이었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그 이상적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라는 가치만은 소중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봤다.
프랑스 혁명은 처단과 학살로 이어진 부정(否定)의 역사
그럼에도 폭력과 처단, 인민재판이라는 광장정치를 반복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잘못된 평가가 한국에서 살아남아 높게 평가되고 모델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정치 수준을 말하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자유민주적 정치 모델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 본질이 부정(否定)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계승적 건설과 만들기를 찾아볼 수 없고 ‘제도적 틀을 벗어난 끌어내리기’에 집착한 역사였다. 부정의 정치란 스스로 자신들의 업적(achievement)을 만들지 않는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단지 가진 자들을 비판하고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결과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자기 정당성을 쌓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는 건설의 과정은 없이 ‘끌어내리는 것’을 본질로 삼는다.
끌어내리기란 늘 상대는 ‘나쁜 놈’이라고 공격하는 것이고, 나와 우리는 ‘정의’이라는 것을 무한 반복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그 자리에 갈 때까지 계속하는 방법이다. 늘 대중을 동원하고 폭민으로 만들 계획만 꾸민다. 광장정치와 인민재판의 정치이기 때문에 대안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대안을 만들지도 않는다.
상대방을 욕하고 비난하면 되는 쉬운 방법을 포기하고, 혹시 ‘다른 대안’을 만든다면 그 대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자신들도 무너지고 비판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연표만 훑어보더라도 끊임없는 부정과 끌어내리기, 그리고 처단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민재판과 부역자, 단두대는 그 상징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는 봉건 왕정 -> 군중 폭정 -> 독재 제정 -> 봉건왕정의 반복 역사다. 체제가 바뀔 때마다 피가 흘러넘쳤다. 수십만 명이 체포되고 수만 명이 처형되는 수준이었다. 루이 16세, 로베스피에르와 테르미도르, 나폴레옹, 루이 18세, 나폴레옹 3세, 필립 페탱 등은 모두 다 롤러코스터를 탔다가 내려야 했다.
처형되거나 유형에 보내지거나 감옥에서 죽었다. 갑작스럽게 부상한 영웅은 곧 공포정의 중심이 되거나 또 다른 폭정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역자가 끊임없이 양산되었다.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비시(Vichy) 정부의 필립 페탱 등 누구든 한때의 영웅은 몇 년 가지 못해 곧 역적이 되고, 관련된 사람은 부역자가 되어 처단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영웅이라던 지도자들의 말로는 비참했고 권력자의 위치가 종료되면 그들은 손가락질과 침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3세, 독일 점령기간 중 임시정부 지도자 페탱 등은 롤러코스터의 최고점과 최저점을 통과하면서, 한때는 영웅이었지만 결국 구체제의 상징, 구악의 대표로 몰려 청산 및 처단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피의 숙청 과정에서 프랑스 역사의 발전은 나타날 수 없었다.
계승의 역사에만 성공이 있다
부정의 역사에는 성공이 없고, 계승의 역사에만 성공이 있다. 역사든, 건물이든 건설하기는 어렵지만 파괴하기는 쉽다. 한 시대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극히 예외적 국가와 국민만이 해내는 것이다. 과거를 잘못이라 규정하고 역사 청산(淸算)을 자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고 그것은 실패하는 나라에서 늘 반복되는 일이다.
만들어 놓은 것을 부정하기는 쉽지만, 다시 만들어 내거나 더 잘 만든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축구 경기를 보며 잘못을 지적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런 수준 이상의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는 직접 해본 사람들만이 아는 영역이다.
청산과 부정을 본질로 하면서 무의미한 비판을 계속하는 세력이란 만들기를 해본 적이 없다. 실제 만들기를 두려워한다. 그들의 본질은 분노와 질투를 내재한 상태에서 자신이 그 자리에 가겠다는 야만적 욕심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체제와 역사를 부정하며 폭민과 홍위병(紅衛兵)을 동원, 선동하여 집단적 폭력을 위협하거나 행사하는 것은 그것 외에는 그들 자신이 건설해본 적도, 만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근·현대 역사를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듯이 프랑스사는 혁명과 부정의 역사였기에 프랑스나 세계에 기여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유럽의 암흑적 중세시대가 종료되고 15세기 이후 문명사가 스페인 시대-네덜란드 시대-대영제국 시대-미국 시대로 이어졌지만 프랑스 시대가 없었던 것도 프랑스식 부정과 광장정치의 산물이다. 심지어 후발국가인 독일과 일본도 프랑스와는 차원이 다른 역사를 개척했고 후발국가들의 모델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프랑스가 현재 정도나마 살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지난 500년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주변국을 잘 만났기 때문이다. 유럽의 후발국이고 통일조차 되어 있지 않던 독일에게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연속해 굴욕적인 패전을 당하고 두 번의 전쟁에서 모두 영국과 미국에 의존해 살아난 것도 스스로 건설적 역사를 만들 능력의 결여에서 발생한 문제다.
프랑스식 부정과 복수의 정치는 그것을 모방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난다. 그런 나라에서는 항상 프랑스적 대공포(Grande Peur)가 수반된다.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홍위병이 그것이고, 대표적으로 프랑스 식민지였던 캄보디아의 폴 포트와 크메르루주의 대학살과 킬링필드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영국이나 미국처럼 역사에 이룬 것이 없는 자격지심과 자존심 때문에 프랑스인은 늘 반미(反美)주의와 같은 왜곡된 정서와 냉소주의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러나 성공한 나라를 보면 그 나라에는 프랑스와 차원을 달리하는 계승의 역사, 계승의 정치가 유지된다. 봉건시대 제국적 번영모델이라면 로마제국을 상정할 수 있지만 그 후 근대정치를 기준으로 본다면 자유민주적 정치체제의 기원인 1581년 네덜란드공화국 모델이 확고히 정립되어 있다. 프랑스 모델을 염두에 두는 세력들은 부정과 끌어내리기 혹은 처단 대신에 네덜란드를 주목해 봐야 한다.
네덜란드공화국은 무엇보다 자유의 나라였다. 자유거래, 자유무역, 종교적 관용, 도시화, 칼뱅주의(Calvinism), 은행제도 등 모든 근대제도의 싹은 북유럽저지대(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중에서도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화가 렘브란트가 그려낸 그림 ‘야경’은 1600년 당시 유럽의 자유주의 국가 인식을 담은 야경국가(夜警國家)의 단면을 표현한 것이다.
로크와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등은 모두 네덜란드로부터 배운 것이다. 영국은 전통과 계승적 역사의 대표적 상징이다. 반복되는 프랑스식 역사 청산과 인민재판과 단두대로 표현되는 광장정치를 영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를 인정하고 계승하며 더 훌륭한 업적과 성취를 만들어 내면 그것이 바로 과거와의 차별이고 청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부정하고 청산할 힘과 시간이 있다면 건설하는 데 집중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봤던 영국은 프랑스 혁명사와 대비되는 계승과 극복의 정치를 열었고, 16세기 네덜란드를 이어 커다란 세계사적 성취를 만들었다.
온 인류가 함께 향유하는 가치이자 제도인 자유주의, 민주주의, 산업혁명, 의회주의를 만들어 세우고 발전시켜냈다. 그 하나하나가 인류의 소중한 가치이자 유산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53개 영국 식민지 경험국가들을 보면 프랑스 식민지를 경험했던 나라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승하며 극복하지 않고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끌어내리는 광장정치로는 계승과 극복을 만들 수 없다. 부모 세대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자기 세대를 제대로 만들어 내는 것을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건물(A)도 부정하고 비난하며 무너뜨리는 방식으로는 그 건물을 초라한 것이라고 만들 수 없다. 오직 더 훌륭한 건물(B)을 완성함으로써 기존의 건물(A)을 초라한 비교의 대상으로 만들 때만이 기존 건물이 초라해지는 것이다. 과거를 극복하고 한 발 더 나아가는 방식만이 올바르고 정상적인 역사 전개인 것이다.
▲ 12월 21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앞에서 대통령과 대기업의 숙청을 요구하는 시위대. 삼성·현대에 성난 민중 은역사 계승이 아닌 부정을 택했다./ 연합 |
‘성공한 대한민국’에서 ‘조선시대’로 돌아가자고?
518년 조선시대의 정치 방식은 유럽국가 중에서 혁명 이후의 프랑스와 가장 유사한 형태였다. 당파와 편을 갈라 집권과 끌어내리기가 반복되었던 조선의 정치란 부정(否定)의 역사 그 자체였다. 가장 중요한 정치방식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보복(報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부관참시(剖棺斬屍)와 능지처참(陵遲處斬), 그리고 ‘삼족(三族)을 멸한다’로 명확히 상징된다. 반드시 갚아주겠다는 것이고 내가 그 자리에 가겠다는 것이다. 또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죽여 없애야 하는 것이다. 과거의 굴욕을 복수하겠다는 것이나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모의 원한을 푸는 복수를 하겠다는 의식에 맞춰져 있다.
최근에는 많이 없어졌긴 했지만 드라마나 영화도 어려움을 뚫고 권토중래(捲土重來)하여 복수를 다하는 것으로 이뤄져 있고 복수가 끝나면 끝이다. 거기에는 건설과 생산이 빠져 있다. 무엇을 새롭게 만들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복수 자체가 성공이기 때문이다. 건설보다는 복수를 자행하는 논리이다.
쌓인 한을 푸는 신원(伸寃)적 한(恨)의 정치와 적대(敵對, antagonism)의 정치는 프랑스 정치에서도 정확하게 똑같이 나타난다.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한(恨)의 개념이 지배하며(Henry W. Ehrmann), 몇 백 년간 계속된 조선의 사화(士禍)와 환국(換局)정치도 본질적으로는 부정과 끌어내리기의 정치 과정이다.
조선 500년 정치는 현재 한반도 북부의 조선(朝鮮)에서 온전히 이어지고 있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정치에는 건설과 만들기는 없고 숙청, 타도, 처단, 끌어내리기만이 반복된다.
현재에도 인민재판이 일상적인 것이고, 공개처형이 무수히 자행되는 나라다. 평양의 광장에서 펼쳐지는 정치는 법과 제도의 정치가 존립할 수 없다. 프랑스식 처단정치와 조선식 삭탈관직과 능지처참의 정치가 온전히 살아 재현되는 곳이 바로 현대 시대의 ‘조선(북한)’인 것이다.
6·25전쟁과 인천상륙작전 등을 그린 전쟁 영화들에서 인민군 장교들이 주고받는 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 공화국’이란 표현은 북한 체제가 프랑스 식 공화체제에 대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방식이다.
북한에서 거론하는 ‘우리 공화국’이란 바로 프랑스 대혁명 때의 파리코뮨과 같은 ‘공화국’모델을 의미한다. 광화문의 집회나 한국의 정치권과 소위 보수 정당의 인사들까지도 자주 반복하는 ‘공화국’의 모델이란 프랑스 혁명의 공화국을 말하는 것이고, 그런 공화국을 계승한 최대 전형이 바로 북한 ‘공화국’인 것이다. 물론 프랑스 공화국의 대혁명이나 북한 공화국의 전체주의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우리 역사에서 혁명이 있어야 했다면 조선시대에 일어났어야 했다. 현재 한반도에서 혁명이 필요한 곳은 현재 북한이다. 명확한 사실은 대한민국은 성공한 나라이기에 부정과 청산, 혹은 파괴와 끌어내리기의 정치가 불필요한 나라다.
1948년 건국 이래 민족사적 기준이나 세계 개발도상국 혹은 신생독립국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주변에 혁명적 필요한 곳이 있다면 가장 가까운 주변의 3개 국가들이다. 즉, 전체주의 북한이고, 공산당 독재가 계속되는 중국이고, 수천 년간 문명의 외곽만 떠도는 푸틴 독재의 러시아가 그것이다.
그런데도 성공 역사를 만든 한국에서 프랑스 혁명을 모델로 하는 인식이 확산된 것은 대한민국에서 진행되어온 건설과 성취의 역사를 완전히 거꾸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1948년 자유민주혁명을 추진했고, 1960년의 4.19와 1961년 5.16으로 이어진 민족주의적 산업혁명을 추진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성공 모델의 상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성공한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고 청산, 탄핵, 민족정기 바로세우기, 끌어내리기 등의 광장정치가 진행된다면 그것은 실패한 프랑스 모델이나 최악의 북한 모델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부정과 끌어내리기의 광장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의 인식과 논리의 중심에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있다. 1987년 제6공화국, 소위 ‘민주화체제’가 들어선 이후 30년간 역사를 더 진전시키지 못했던 것은 1948-1987년의 40년 역사가 예외적 성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체제를 거꾸로 구체제이자 실패 체제로 몰아갔기 때문이다. 그 결과 계승과 극복을 향한 건설과 창조는 없고 상대 정치세력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날이 새고 지는 실패한 조선적 정치로 되돌아가는 정치를 만들고 말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펼쳐지는 광장정치도 어렵게 우리 민족이 쌓아 올린 성공시대를 중단시키고, 이제 다시 길고 험한 구(舊)정치인 앙시앵 레짐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굳이 보수(conservative) 정치란 표현이 나온 기원도 잘못된 프랑스 혁명 역사에 대한 반면교사에서였다.
광장정치의 극복은 법치의 제도화를 회복하는 것
프랑스 혁명 정치가 모델이라면 당연히 ‘보수’ 정치는 설 자리도 없다. 모든 시대와 리더십은 청산 대상일 뿐이다. 보수 이데올로기를 정립했다고 평가받는 에드먼드 버크(Burke)는 프랑스 혁명을 지켜보며 쓴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1790)을 통해 프랑스혁명은 건설 없는 파괴(deconstruction) 과정이라고 평가하며 계승과 개혁의 보수 정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불행히도 프랑스 혁명 역사는 버크의 예언 그대로 전개되었다.
부정(否定)의 정치와 인민재판 및 광장정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도(institution)에 의한 통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입법, 행정, 사법의 상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되새겨야 한다. 스스로 ‘정의’를 대변한다고 보기 때문에 3권을 다 함께 가졌다고 자부하는 소비에트(soviet)가 바로 독재의 본산인 것이다.
인민독재와 광장정치는 동일한 것이고, 폭민독재가 곧 광장정치의 본질이다. 광장에 민주주의는 없다. 촛불은 진실을 담지 못한다. 인민재판과 끌어내리기를 위한 동원이자 겁박(劫迫)이기 때문이다. 제도와 생산적 정치를 파괴할 뿐이다.
분노와 분풀이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잘못은 끌어내리기와 보복으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사람을 바꿔 다른 인치(人治)로도 해결될 수 없다. 반복된 실패일 뿐이다. 광장정치에는 그 주체도 불명확하고 대안과 책임도 부재하기 때문이다. 사람 대신 제도를 믿고, 제도를 통해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점차 최소화시키는 방법을 찾는 계승과 보수개혁의 정치가 필요하다.
시행착오와 실수는 모든 일에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기에 잘못과 실수를 가지고 인물, 집단, 기관을 부정한다면 굳이 비판 대상이 될 일(achievements)을 해야 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접시 깨는 실수란 당연히 설거지하는 사람만이 저지를 수 있는 것이듯, 설거지라는 업적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접시 깰 이유도 없고 비난 받을 일도 없는 것이다. 만드는 사람이 없어지면 실수도 없어지겠지만, 함께 나눌 것도 없게 되는 사회로 간다.
그런 면에서 우리 정치 발전의 최대 과제란 프랑스 혁명을 모델을 삼아 롤러코스터를 타자는 세력과 함께, ‘청산, 부역자, 민족정기, 민중, 역사바로세우기, 인민재판, 부관참시, 두고 보자’와 같은 무책임하고도 선동만 남는 광장정치를 극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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