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소통의 길 페이스북…주커버그의 열린 기업가 정신

자유경제원 / 2017-01-31 / 조회: 11,396       미디어펜
 
▲ 이근미 소설가
질주하는 페이스북, 마크 주커버그의 영리한 선택
 
설립 4년차인 2008년에 가입자가 6400만 명이던 페이스북(facebook)은 2010년에 10억 명을 넘어선 데 이어 2016년에 17억 명을 돌파했다. 애플의 잡스처럼 제품을 만들지도, 언론재벌 머독처럼 여러 회사를 거느리지도 않은 마크 주커버그는 단지 페이스북이라는 소셜 네트워크로 전 세계인을 연결시켜 부와 명성을 얻었다.
 
매일 10억 개 이상의 새로운 콘텐츠가 생성되는 페이스북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위력적인 나라’가 되었다. 사람들은 마크 주커버그를 '현대판 칭기즈칸’이라고 부른다.
 
10세 때 게임 개발
 
1984년 미국 뉴욕 주 화이트플레인스에서 태어난 마크 주커버그(2016년 현재 32세)는 치과 의사 아버지(에드워드)와 정신과 의사 어머니 밑에서 세 명의 여자 형제와 함께 자랐다. 주커버그는 어릴 때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이였다. 유대인 전통방식인 하브루타(havruta, 대화와 토론을 통해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방식) 교육을 받은 부모는 아들의 질문에 논리적이자 합리적인 답변을 들려주었다. 주커버그는 어릴 때 유대교 교육을 받았으며, 13세 때는 유대교 성인식의 일종인 바르 미츠바를 거쳤다.
 
아버지 에드워드는 1985년에 '아타리 800’ 초기 모델 컴퓨터를 미국 내 개인 치과 중에서 최초로 구비했다. 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룬 주커버그는 10세가 되기 전에 윈도우 3.1 운영체제로 실행되는 퀀텍스 486 디엑스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주커버그는 추워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여자 형제들과 함께 놀기 위해 10세 때 방안에서 눈싸움을 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을 만들 정도로 출중했다.  
 
12세 때 2층에서 쉬고 있는 아버지에게 1층 진료실에 환자가 온 사실을 알려주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저크넷’을 개발했다. 아버지는 명석한 아들에게 아타리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르쳤고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데이비드 뉴먼에게 개인 지도를 받게 했다. 주커버그는 집 근처 머시 칼리지의 대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컴퓨터에 빠져 살면서도 학교 성적도 좋았던 주커버그는 과학올림피아드, 라틴어 영예 학생 클럽, 수학팀 등 다양한 분야에 참여했고 펜싱팀 주장을 지냈다. 아즐리고등학교를 다니다가 3학년 때 필립스 엑세터 아카데미로 옮긴 그는 과학(수학, 천문학, 물리학)과 서양고전 연구 과목을 잘해 상을 받았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필립스 엑세터에서 간식 주문 웹사이트를 만들어 밤마다 간식 사러 밖에 나가야 했던 학생들의 불편을 해소해주었다. 졸업과제물로 MP3 플레이어 소프트웨어인 시냅스(Synapse)를 개발해 기술 관련 뉴스 웹사이트 슬래시닷에서 5점 만점에 3점을 받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이 시냅스 플레이어를 사들이고 주커버그를 고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2002년 9월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입학원서에 영어 외에 읽고 쓸 줄 아는 언어로 프랑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를 적어 넣었다. 
 
주커버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컴퓨터과학과 심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172㎝, 갈색 곱슬머리, 주근깨 가득한 얼굴의 주커버그는 후드 점퍼와 청바지, 흰색 양말에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 차림으로 캠퍼스를 누빈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비호감에 내성적인 성격으로 2학년 때까지 친구가 별로 없었던 주커버그는 알파 엡실론 파이라는 유태인 학생 클럽에 가입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해 주로 기숙사에서 지냈다.
 
페이스북의 탄생
 
주커버그는 2학년 가을학기가 시작될 무렵 일주일 밤을 새워 코스 매치(Course Match)라는 웹사이트 만들었다. 학생들의 수강신청 과목을 공개하는 사이트로 과목명을 클릭하면 누가 그 수업을 듣는지, 다른 과목은 뭘 선택했는지 알 수 있어 학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몇 주 후인 2003년 10월 28일, 주커버그는 데이트 상대와 싸우고 들어와 자신의 블로그에 비난 글을 올렸다. 그날 밤 내친 김에 하버드 여학생들의 얼굴을 비교하는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하버드대 보안시스템을 뚫고 다운로드 받은 여학생들의 사진으로 공개투표를 시작하자마자 450명이 가입했고, 금방 방문횟수가 2만2000건으로 치솟으며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남학생들의 환호와 여학생들의 저주가 들끓는 가운데 하버드당국은 기숙사 인터넷을 끊어버렸다. 이 일로 주커버그는 퇴학 위기까지 몰렸다가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은 점 등이 고려되어 간신히 학교에 남을 수 있었다.
 
주커버그는 2004년에 다시 재학생 인맥쌓기 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용자가 사진과 프로필을 자발적으로 등록하도록 유도하여 문제를 피해간 사이트는 단숨에 인기가 치솟았다. 그해 2월 4일에 페이스매시를 '더 페이스북'으로 바꾸었다가 2005년에 지금의 이름인 '페이스북’으로 변경했다. 페이스북이 채택한 파랑은 적록색맹인 주커버그가 가장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색이다.
 
2004년 20세였던 주커버그는 하버드대학교 학보사 '더 크림슨’과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을 일주일 만에 만들어냈다. 나는 어떤 것을 만들고, 그것이 작동을 하고 널리 이용 될 때 정말 기분이 좋다. 하버드 출신은 누구나 직업을 갖고 많은 돈을 번다. 그런데 누구나 인맥을 갖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맥을 쌓는 것이 돈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 자원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페이스북은 애초에 하버드대학교의 학생들만 이용하게 했지만 이후 전국 대학교로 서비스 영역이 확대됐다. 2005년 9월에 고등학생 가입이 허용됐고, 2006년 9월 13세만 넘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
 
페이스북은 출발 1년 반 만에 미국에서 10번째로 방문자가 많은 웹사이트에 등극했다. 페이스북의 빠른 성장에 오픈한지 얼마 안 되어 1000만 달러에 사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MTV에서 7500만 달러에 팔라는 요청도 해왔다. 2005년에는 액셀파트너스가 1270만 달러를 페이스북에 투자했다. 
 
2006년, 야후로부터 10억 달러의 인수 제안을 받았다. 그러나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은 내 아기이기 때문에 보살펴 성장시키고 싶다”며 그 제안을 거절하고 대신 벤처캐피털로부터 2억5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야후의 전 CEO 테리 세멀은 "10억 달러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혀를 찼다.
 
2007년에 마이크로소프트사로부터 페이스북을 인수하겠다는 제안이 왔다. 당시 페이스북 평가금액은 150억 달러(약 17조원)로 제안을 받아들이는 즉시 주커버그는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2007년 10월 마이크로 소프트는 지분 1.6%를 인수하는 대가로 페이스북에 2억4000만 달러(약2600억원)를 투자했다.
 
주커버그는 투자를 받을 때 투자금액보다 지분 확보에 더 신경을 썼다. 벤처기업 창업자들이 투자를 받은 후 경영권 방어에 실패해서 쫓겨나는 걸 봤기 때문이다. 주커버그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은 쪽, 투명한 쪽으로 바꾸자’는 그의 목표대로 페이스북을 지켜나갔다.
 
주커버그는 회사를 파는 대신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쌓기로 결심했다. 워싱턴 포스트 발행인이었던 도널드 그레이엄을 경영부문 멘토로, 넷스케이프 커뮤니케이션스의 공동설립자인 마크 앤드리센을 기술부문 멘토로 초빙했다. 애플의 스티브잡스와 자주 연락하며 경영자의 자세와 노하우를 배웠다.
 
2008년에는 구글 글로벌 온라인 운영 부회장을 지낸 셰릴 샌드버그를 COO로 영입했다. 샌드버그 영입 이후 페이스북은 경영이 안정되고 수익구조가 탄탄해졌다.
 
주커버그는 2008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올해의 억만장자(World’s Billionaires)’ 중 최연소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로는 가장 어린 나이(당시 24세)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15억 달러의 자산으로 785위에 올랐다. 
 
2010년에 '타임’은 '인간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공로를 인정해 주커버그를 '올해의 인물’에 선정했다. 2010년 12월 미국 내 방문자수에서 페이스북이 구글을 처음으로 제압했다(페이스북 8.9% 구글 7.2%).
 
주커버그는 '포춘’지와와 인터뷰에서 돈에 흔들리지 않은 이유를 “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지 거액에 팔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밝혔다.

  
▲ 1984년 미국 뉴욕 주 화이트플레인스에서 태어난 마크 주커버그(2016년 현재 32세)는 치과 의사 아버지(에드워드)와 정신과 의사 어머니 밑에서 세 명의 여자 형제와 함께 자랐다. 주커버그는 어릴 때 끊임없이 질문하는 아이였다./사진=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탄탄한 플랫폼을 구축하다
 
2001년 경 대부분의 닷컴기업들이 허술한 비즈니스 모델과 과대광고로 인해 무너지면서 몇몇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Social Network Sites)들이 떠올랐다. 페이스북 등장 이전에 클래스매이츠(Classmates, 1995), 프렌드스터(Friendster, 2002), 링크드인(Linkedin, 2003.5), 마이스페이스(MySpace, 2003.7)가 인기를 끌었다. 이 가운데 한국의 싸이월드와 흡사한 마이스페이스가 2008년 4월까지 가장 인기 있었고 이후 페이스북이 앞서갔다. 
 
선발업체가 즐비한 가운데 페이스북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2011년 5월 31일 캘리포니아의 랜초 팰로스 버디스에서 열린 D9 콘퍼런스에서 구글의 에릭 슈미트는 4개의 독보적인 기업으로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을 규정했다. 이 4인방의 성장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가치있는 브랜드를 구축했으며, 인기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했고, 광범위한 추종세력을 만들고, 주주들에게 막대한 이익과 가치를 안겨주었다. 그들은 단숨에 주요기업의 반열에 올랐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기업의 부러움을 샀다. 또한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고, 사업의 전 부문을 혁신했다. 
 
많은 대기업이 성장의 정점에서 균열의 조짐을 보이다가 쇠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4인방은 그런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수천 명의 새로운 인력을 고용하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고 있으며, 새로운 파트너십을 맺고, 새로운 사업부문을 만들고 있다. 위험을 회피하거나 이전의 성취를 유지하기보다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중이다. 
 
4인방 가운데서 플랫폼과 플랭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페이스북만큼 위대한 도전을 거듭한 기업은 드물다. 그 결과 페이스북은 4인방 가운데 가장 탁월한 실적을 내고 있다. 아마존, 애플, 구글과 달리 사업초기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은 페이스북은 훨씬 빠른 속도로 세계적인 기업 반열에 올랐다.
 
비결은 주커버그가 플랫폼의 중요성을 알았다는 데 있다. 2004년 5월 주커버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즈와 애플의 매킨토시가 외부에서 만든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플랫폼이 된 것처럼 더페이스북을 외부 제작 소프트웨어가 투입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하자 동업자인 존 카퍼는 “시기상조”라고 답했다.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회사의 수익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주커버그는 단순히 많은 기능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연구했다. 사용자들의 공통관심사, 배경, 지역을 바탕으로 쉽게 연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사이트 구축이 시급했다. 주커버그는 멋진 플랫폼을 만들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을 간파했다.
 
선발기업의 실패원인 파악
 
2002년에 설립된 프랜드스터는 가장 촉망받는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였다. 최전성기의 프랜드스터는 회원 1억1500만 명, 월 방문자수 최고 6100만 명이었다. 프랜드스터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서버 부족으로 페이지 하나를 로딩하는 데 몇분 씩 걸리자 회원들이 떠나버렸다. 
 
주커버그는 선발기업들을 보면서 '페이스북 규모 확장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플랫폼을 성장시키되 그 성능이 저하돼서는 안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용자 수를 제한해야 한다. 대규모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기술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학교마다 페이스북 서비스에 대한 요청이 쇄도할 때도 Get Big Fast!를 외치며 초기부터 세를 불린 아마존과 달리 속도와 규모를 세심하게 조절했다. 엄청나게 성장한 지금도 페이스북은 최적화된 사용자 경험을 보장하기 위해 데이터 센터 추가와 기술적 보완 등의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주커버그는 밀려드는 사용자들의 활동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고 확신한 후에야 비로소 플랫폼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기능들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1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이용하는 대규모사이트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성장시키는데 많은 돈이 들어간다. 초기에 자금부담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사이트 가입비를 요구하지 않았다. 페이스북이 사용자들에게 돈을 받았다면 그렇게 빨리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을 만들 때 마이에스큐엘(MySQL) 데이터베이스나 아파치 웹서버 툴 같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사용했다. 초기에 비용을 지불한 것은 호스팅 서비스와 서버가 전부였다. 무료 소프트웨어의 힘을 빌려 큰 자본 없이도 페이스북을 성공가도에 올려놓은 주커버그는 “인터넷이 온 세상 사람들을 한 데 이어줄 것으로 믿고 온라인에서 사람들을 이어주는 모든 수단과 네트워크가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이스북은 회사운영과 인프라구축, 사업확장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광고를 판매해야 했다. 엄청난 사용자수와 그에 대한 통계치 덕분에 페이스북은 막대한 광고수입을 올리고 있다. 
 
페이스북의 차별화된 디스플레이 광고(배너광고) 방식은 점점 더 많은 광고주를 끌어들였다.  2011년 페이스북 온라인 디스플레이 광고시장 점유율은 27.9%였다(야후 11%,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각각 5% 이하). 2012년에 유튜브의 꾸준한 성장이 구글 디스플레이 광고 매출을 끌어올려 구글과 페이스북이 시장을 30%씩 나눠가졌다. 이후 구글과 페이스북 간의 매체력 경쟁이 가속화되었다.
 
페이스북은 초기부터 실명 사용을 원칙으로 삼았다. 사업초기 마이스페이스와 프렌드스터는 사용자수를 늘리는데 급급해 태도가 불량하거나 비윤리적인 사용자뿐만 아니라 스패머들을 걸러내지 않았다. 마이스페이스는 회원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아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계정에 가입하는 게 가능했다. 가명을 사용하여 자신을 포장하고 프로필을 원하는 대로 조작하여 닥치는 대로 친구 추가가 가능한 사이트들은 얼마 안가 사라지고 말았다.
 
주커버그는 이 사실을 유념해 초기부터 사용자들의 진정성을 확인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개인정보를 속이거나 도용하는 사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걸러내는 방법을 개발했다. 예를 들어 유명인의 이름을 도용하면 경고메시지나 오류메시지가 뜬다. 페이스북이 자사 플랫폼 내에서 모든 사람이 정직해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 사용자들과 광고주들의 신뢰를 얻었다.

  
▲ 컴퓨터에 빠져 살면서도 학교 성적도 좋았던 주커버그는 과학올림피아드, 라틴어 영예 학생 클럽, 수학팀 등 다양한 분야에 참여했고 펜싱팀 주장을 지냈다./사진=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매력적인 서비스
 
페이스북의 가장 큰 성장동력은 페이스북 커넥트(Connect)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로 큰 인기를 끌었다. 별도의 회원가입을 하지 않고도 cnn.com과 patch.com 같은 사이트의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다.
 
페이스북은 다양한 게임을 제공한다.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게 하기 위해서이다. 페이스북은 2011년 플랫폼 내에서 통용되는 가상화폐인 '크레딧(Credit)을 만들고 10크레딧을 1달러에 판매했다. 게임이나 애플리케이션 제조사마다 달랐던 결제수단을 크레딧으로 통일했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들이 크레딧을 이용해 상품을 판매할 때 페이스북은 30%의 수수료를 받는다.
 
2005년 중반,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담벼락 기능을 추가했다. 글쓰기 외에도 동영상과 사진 업로드가 가능했다. 사진에 태그 알림기능을 넣어 더 많은 사용자가 태그된 사진을 보게 했다.  
 
태그 기능은 사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친구, 그룹, 유명인, 노트에 있는 '좋아요’ 상태 업데이트와 댓글까지 태그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했다. 태그 기능은 페이스북에서 가장 인기있는 기능 가운데 하나로 중독성이 강하다. 그밖에도 이벤트, 이메일 메시지, 인스턴트 메시지, 그룹, 노트 등 다양한 기능을 계속 확장해 나갔다. 
 
2005년에는 회사들이 광고공간을 구매할 수 있도록 회사마다 특정한 페이지 만들 수 있게 했다. 
 
2006년에는 모바일에서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개선에 집중했다. 다른 사이트와 달리 페이스북은 전용 앱을 따로 깔지 않고 페이스북 페이지만으로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의 위치와 상관없이 어디서든 친구 요청을 하고, 포스팅을 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편리하게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바일 기능이 추가되면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2006년 9월, 페이스북은 뉴스피드를 소개했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사용자들은 친구와 그룹, 다양한 관심분야의 최신 소식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용자들의 항의를 받고 정보 공개 방식과 대상을 제한하는 제어기능을 추가했다. 쇼핑 목록을 알 수 있는 서비스도 시작했다가 집단항의에 곧바로 폐쇄했다. 사용자들의 불만을 즉각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페이스북의 발전 요인이다.
 
2010년 4월 페이스북은 '좋아요’ 버튼을 도입했다. 좋아요 버튼을 설치하면서 컴퓨터와 모바일 사용자 분석이 가능해져 광고주들이 목표 소비자를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누구나 팬 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인기를 끌었다. 기업들도 팬페이지를 만들어 광고에 활용하고 고객과 소통했다. 페이스북 커머스(일종의 온라인 공동구매)가 많아지면서 페이스북의 인기도 자연히 높아졌다.  
 
페이스북은 가장 영향력 있는 브랜드 중 일부를 팬페이지에 유치하여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기업들은 팬 페이지의 호응이 좋을 경우 유료광고를 집행하게 된다. 페이스북은 좀더 발전적이고 실험적이며 창조적인 팬 페이지 제작을 장려하기 위해 FBML과 아이프레임 같은 툴을 무료로 제공한다. 
 
'좋아요’는 관심의 표시이자 지지한다는 뜻으로 누르는데 좋지 않은 일을 위로하고 싶을 때는 걸림돌이 되었다. 그래서 '나빠요’는 왜 없느냐는 질문이 늘 대두되었다. 하지만 '나빠요’를 개설할 경우 대결구도가 생기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줄 우려가 있어 만들지 않았다.  
 
대신 2015년에 '좋아요(Like)' 외에 '사랑해요(Love)', '웃겨요(Haha)', '기뻐요(Yay)', '놀라워요(Wow)', '슬퍼요(Sad)', '화나요(Angry)' 등 감정표현 버튼을 추가했다.
 
페이스북은 2011년 7월 세계 최대 인터넷 전화 서비스업체인 스카이프와 손잡고 통합 영상통화와 그룹 채팅 서비스를 시행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페이스북은 사용자들의 요청에 귀를 기울이면 계속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기업공개 후 승승장구
 
2012년 2월 1일 페이스북은 기업공개를 신청했으며 상장을 통해 50억 달러의 자금 조달 계획을 밝혔다. 그해 5월 18일 나스닥 주식시장에 상장했을 때 페이스북은 기업공개규모 184억 달러, 기업가치 1040억 달러를 인정받았다. 기업규모로 보면 미국 역사상 제너럴 모터스, 비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였고, 기업가치로 따지면 맥도날드나 시티그룹, 아마존닷컴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페이스북의 기업공개가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지만 기우였다. 2015년 주커버그는 미국 40세 미만 청년실업가 억만장자 1위(471억 달러, 약 54조 8천 224억 원) 자리에 올랐다. 청년실업가 톱 40인 가운데 페이스북 관련 억만장자가 무려 8명이나 포함되었다.  
 
미국의 격주간 경제 잡지 '포브스’가 영향력, 재력, 활동 분야 및 권력행사 의지를 기준으로 2016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74인을 선정해 발표했을 때 주커버그는 10위에 올랐다.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실리콘밸리의 IT CEO들 중에 주커버그가 48%의 지지율로 가장 인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젊은층까지 사로잡다
 
페이스북은 IT업계의 부진 속에 홀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IT기업 애플과 구글의 실적 부진과는 대조적이다. 비결은 2012년에 인수한 인스타그램(6억 명), 왓츠앱(10억 명)의 광고 수익과 페이스북(17억 명), 페이스북 메시지(8억 명)의 전 세계 이용자 기반을 통한 수익 증대에 있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젊은층까지 끌어들이면서 전문가들로부터 '효과적인 혼합 전략’이라는 호평을 받아냈다.
 
페이스북은 신성장 먹거리 창출 결과 전 세계 독보적인 SNS 기업이 됐다. 2016년 발표한 1분기 실적 결과는 주가 폭등으로 마크 주커버그를 S&P 500개 기업 중 시가총액 서열 6위로 올렸다.
 
페이스북은 2016년 9월에 전 세계 활동 광고주 수가 400만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6개월 만에 100만이 늘어나 업계를 놀라게 했다. 전 세계 모바일 시장 경쟁이 과열되어 새로운 동력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페이스북 만이 질주를 하고 있다. 
  
2016년 1분기 매출은 53억8000만달러(6조816억원)로 전년 대비 52% 증가했고, 순이익은 15억1000만달러(1조7349억원)로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했다. 광고 수익은 57% 증가한 52억 달러를 기록했다. 모바일 시대와 페이스북의 만남이 폭발적인 실적은 가져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광고수입의 82%가 페이스북 모바일 앱을 통해 발생했다. 모바일 분야에서 페이스북은 다른 기업들이 모범 사례로 삼고 따르고자 하는 기업이 되었다.
  
  
▲ 주커버그는 하버드대학에서 컴퓨터과학과 심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172㎝, 갈색 곱슬머리, 주근깨 가득한 얼굴의 주커버그는 후드 점퍼와 청바지, 흰색 양말에 아디다스 삼선 슬리퍼 차림으로 캠퍼스를 누빈 패션 테러리스트였다./사진=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페이스북에 대한 우려
 
페이스북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주커버그는 아이디어를 도용당했다는 등의 이유로 하버드 동기들로부터 고소당해 수년간 법정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페이스북이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보안’ 부분에서 불만이 높다. 페이스북은 미국 대선 기간 중 가짜 뉴스의 유통을 방치해 여론에 영향을 미쳤고, 때문에 예상과 벗어난 대선 결과를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런가하면 페이스북은 저개발국에 무료 접속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인터넷오알지(Internet.org)를 추진하고 있으며 자연재해와 테러를 신속히 알리는 '안전 확인’ 기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학교 때 친구 프리실라 챈과 결혼해 회색 티셔츠만 입는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지분의 99%(현시가 약 52조)를 기부하기로 약속해 사회공헌 부문에서 귀감이 되고 있다.
 
앞으로 페이스북은 전 세계 사용자들이 사람과 구분을 하기 힘든 인공지능(AI)과 소통하게 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2026년까지 가상현실(VR)을 통해 지인들과 실제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페이스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구축하는 것이다.
 
주커버그의 기업가 정신
 
주커버그는 페이스북 본사 벽면 여기저기에 '구태의연함을 깨고 빨리 움직이자 (Move fast and break things). 실행이 완벽보다 낫다(Done is better than perfect)’고 써붙였다. 실제로 그는 끊임없이 변화를 선도해 나갔다. 페이스북 핵심가치는 '임팩트에 집중하라, 신속하게 움직여라 과감해져라, 열린 자세를 취하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라’ 이다.
 
주커버그는 “내가 진정을 추구하는 것은 세계를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모두와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실현 시키겠다”라는 자신의 의지를 실천해왔다. 수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돈이 아닌 기업의 목표를 생각하고 달려왔고 그 결과 '돈’도 획득하게 되었다.
 
주커버그는 본래 회사를 창업하려는 목적으로 페이스북을 만든 것이 아니다. 하버드대학에서 치기어린 마음에 만든 것이 전문화된 것이다. 주커버그는 “좀더 열린사회 좀더 연결된 세상을 만들려는 사회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사명을 부여했다. “돈을 벌기 위해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서비스를 구축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결국 '더 나은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만족감을 주면서 회사가 발전했다. 처음 목표가 변질되지 않고 계속되었으며 곁가지를 치지 않고 한길을 걸은 것이 성공을 가져왔다.
 
주커버그는 기존 단어에 새로운 의미를 입혔다. 프렌드(friend)라는 단어를 '동사’로 만들었다. 페이스북 사용자가 누군가를 프렌드(친구추가)하면 그 사람들은 당신의 친구목록에 추가되어 서로의 프로필을 볼 수 있게 된다. 
 
친구관계를 새롭게 하거나 로맨틱한 관계를 다시 불태우는 사람을 리트로섹슈얼(retrosexual)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이 페이스북을 통해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다시 연락하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다.
 
페이스북을 통해 오래 전에 알고 지내던 옛 친구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갑자기 보게 되었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는 페이스북 현기증(Facebook vertigo)이라는 말도 생겼다.
 
페이스북 신드롬을 몰고 온 마크 주커버그, 그의 존재가 도전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희망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할 일을 다했다. 
 
  
▲ 주커버그는 2004년 재학생 인맥쌓기 사이트를 만들었다. 사용자가 사진과 프로필을 자발적으로 등록하도록 유도한 사이트는 단숨에 인기가 치솟았다. 그해 2월 4일 페이스매시를 '더 페이스북'으로 바꾸었다가 2005년에 지금의 이름인 '페이스북'으로 변경했다./사진=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페이스북이 바꾼 당신
 
페이스북은 친구, 선후배, 동료 등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강화시키고 새로운 인맥을 쌓아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페이스북에서 개인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하고 의사소통을 도와주기 때문에 1인 미디어, 1인 커뮤니티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자신의 관심사와 개성을 공유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준 페이스북.
 
사람들에게 또 다른 나라, 또 다른 사회를 선사하며 17억 명의 삶에 일상적이고도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매우 유용한 서비스들을 대부분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윤창출보다 더 중요한 것을 책임지고 있다. 이용자들은 개인 일상생활을 지인을 비롯한 소셜 공간 속에서 연결된 사람들과 정보를 교류하고, 홍보와 마케팅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자리매김했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안부를 묻고, 질문을 하고, 회의를 하고, 동호회를 조직하고, 물건을 판매하고, 게임을 한다. 페이스북은 거대한 장터이자 광장이다. 사람들은 또 하나의 나라인 페이스북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정보를 입수하고 새로운 기쁨을 모색한다.  
 
모르는 사람과도 평균적으로 6명을 거치면 연결돼 있다는 '케빈 베이컨의 법칙’을 페이스북은 더욱 좁혀놓았다. 2016년 2월 페이스북 사용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페이스북 사용자는 평균 3.57명을 거치면 아는 사이라고 밝혀졌다. 
 
페이스북은 이제 그 누구도 거치지 않고 친구를 만들어준다. 새 친구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새 삶을 계획하는 이들이 오늘도 늘어나는 중이다. /이근미 소설가


<참고서적>

필 사이먼, 『플랫폼의 시대』, 제이펍, 2013.
주디 L. 해즈데이, 『저커버그 이야기』, 움직이는서재, 2016.
마샤 아미든 루스티드 저, 『마크 주커버그』 , 해피스토리, 2012


(이 글은 자유경제원 '세상을 바꾼 기업가'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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