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부동산 혼란 더욱 가중될 것...재건축 제한, 수요억제 정책 전면 재검토 필요"
'주택 보유자=투기수요' '무주택=실수요'로 보는 이분법적 다주택 규제 자체가 문제
8·24 대책을 시작으로 잇따라 쏟아져나온 주택 정책이 공급과 수요 부문 가릴 것 없이 전반적으로 실패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특정 지역 집값 떨어뜨리기를 목표로한 정책이 오히려 부동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18일 문재인 정부가 주택 보유자를 대상으로 청약시장 참여 제한과 무차별적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가운데, 부동산 시장에서는 거래 절벽과 지역간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
9·13 공급 대책 이후 국토교통부가 이날 발표한 '9월 주택 매매동향'을 보면 전국 주택 거래량은 7만6141건으로 지난해 동기 8만4350건 대비 9.7% 감소하면서 거래 잠식이 빠르게 진행되는 중이다.
또 수도권 거래량은 4만9219건으로 작년 동기보다 7.0% 증가한 반면 지방은 2만6922건으로 29.8% 감소해 국내 주택시장의 양극화는 이미 고질병으로 자리잡은 양상이다.
대한주택건설협회, 한국주택협회, 주택산업연구원이 이날 오후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주택시장 발전방안 모색'을 위해 마련한 세미나에 참가한 전문가들 역시 정부가 지금까지 펼쳐온 정책을 총체적인 실패로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 정책이 단기적인 수요억제 정책에 편중되면서, '지역간 양극화 확대', '대출 규제로 인한 내 집마련 어려움', '신규주택공급 억제 및 매물 잠김 현상' 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토부 장관을 지낸 추병직 주택산업연구원 이사장도 현 정부 정책이 제대로 가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추 이사장은 "일부 지역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급등하는 반면 나머지 지역의 침체가 확산되고 있다"며 "'투기억제' '실수요자 보호' 등의 정부 정책이 아직 미흡하다"고 말했다.
반면 심광일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은 '다주택 규제'와 '대출 규제' 등 날이 갈수록 강화되는 규제 정책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심 회장은 현재 상황을 '불확실성이 매우 짙은 혼란기'로 규정하며 "건설·부동산 동반성장을 통한 실물경기 활성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제 발표에 나선 김태섭 주산연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정부에 비해 아파트·단독주택 가릴 것 없이 양극화가 심화됐으며, 다주택 규제가 거래절벽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연구위원이 17개 시도와 인구 30만명 이상의 54개지역 도시를 조사한 결과 '지역간', '유형간', '재고주택 및 신규 주택시장간' 양극화 쏠림도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수요 억제로 인해 청약경쟁률의 지역간 격차도 크게 나타났다.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청약 경쟁률 하락으로 '미분양 몸살'을 알고 있는 가운데 서울·경기도·성남·하남·안양·용인·수원 등 수도권 지역에서의 경쟁률이 상승하며 격차가 확대되는 것도 데이터로 확인됐다.
종합적으로 전세 시장에서의 주거요건은 지방을 중심으로 다소 개선됐지만 주택 매매 시장은 더욱 불안해지고 분양시장 역시 양분화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전매제한 강화, 대출규제 강화, 분양가 제한 다주택 중과세 등 정부가 주력해온 대부분의 정책이 주택거래 감소, 청약과열, 특정지역 주택가격 상승과 그밖의 지방 부동산 침체를 부추긴 것으로 드러났다.
김 연구위원은 "지금까지는 강력한 수요 관리(억제)와 미온적 (공공부문 중심) 공급정책이 이뤄졌다"며 "서울 등 공급 부족지역에서의 거꾸로 강력한 공급정책이 지방등 과잉 지역에서는 대출규제 완화 등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사회로 진행된 종합토론에 참가한 패널들도 '재건축 제한', '수요 억제' 중심의 정부 정책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서울주택 시장의 희소성이 여전해 꾸준한 공급 대책이 필요하다"며 "현 시점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태균 현대건설 상무는 분양가 상한제로 인한 건설업계의 고충을 전했다. 올해 전체 주택가격 인상율은 5.7%인 가운데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에서는 26.7% 인상율을 보였다는 것이다. 아울러 "주택도시보증공사 조합간의 이견이 잦아 시공 지연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현행 110%로 지정된 상한을 120%까지는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규제로 서울지역내 공급 부족이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안전진단 기준을 강화한 이후 사업이 신규 공급이 몇달째 중지된 상황이라며 향후 3~4년 뒤 공급부족 현상이 더욱 심화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김홍진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해명에 나섰다. 김 정책관은 "공공부문에서는 예년에 비해 2배 이상의 20만호가 공급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급적이면 공공에 편향되기 보다는 민간이 상호 보완 관계가 이뤄지면 정책 목적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정부여당이 검토 중인 분양원가 공개 후분양제 전면 도입과 관련 "시행이 되면 주택 공급이 줄어들수 밖에 없다. 인센티브를 통해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할 예정"이라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우려에 선을 그었다.
이상영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수급 실패 문제는 누적된 결과"라며 "수요자가 원하는 우량 주거 중심의 공급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주택자를 제외한 일반적인 주택 수요를 투기로 보는 정부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함 랩장은 "다주택자에 대한 정책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올해 8월만 임대사업자 등록때와는 달리 9·13 대책 이후 다주택자를 투기 수요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토론에서는 패널들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국토부 초청 인사 간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김홍진 정책관이 분양원가 공대와 후분양제와 관련 정책 조율 의사를 비춘 반면 김영국 국토부 주택정책과장은 수급 실패와 양극화를 모두 부정했다.
김영국 과장은 "부동산 시장이 지역별로 오르고 내리는 것은 주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무주택자만을 실수요자로 보면 1주택자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교체수요(交替需要)로 본다"고 답했다. 기존의 집을 팔고 새 집을 구입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두 채 이상의 집을 소유하는 것을 투기수요로 보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은 이와 관련, "교체 수요란 렌탈업계 영업 파트에서나 쓰일 수 있는 말"이라며 "규제와 세금으로 주택 공급을 통제하고 있는 정부가 집 몇 채를 가졌냐를 두고 국민을 차별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굳이 차별 정책을 두고 싶다면 독거노인, 아동약자 등 사회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계층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상헌 기자 liberty@enew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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