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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배터리 이야기입니다. LG와 SK가 미국에서 큰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바이든 대통령이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바이든은 미국 연방정부의 관용차를 모두 전기차로 바꾸겠다고 공약했는데요. 그 숫자는 645,000대에 달한다고 합니다.1 그것으로 환경도 보호하고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것인데요. LG, SK의 분쟁으로 잘못하면 그의 전기차 공약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LG가 미국 ITC에 SKI를 제소한 것은 2019년 4월입니다. ITC는 정식 법원은 아니고 행정부 소속 기관이지만 법원에 준하는 판결을 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도 법원이 아닌 공정위가 법원에 준하는 판결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LG의 주장은 SK Innovation이 LG화학 직원을 고용한 후 그들로부터 LG의 기술을 빼냈으니, SK가 미국으로 배터리 및 배터리 부품을 수입하지 못하게 막아 달라는 겁니다. SK는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면서 포드 및 VW과 배터리 공급 체결했는데요, LG 출신 직원이 가져온 기술이 아니면 그런 계약은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 LG 측의 논지입니다.2 실제로 SK는 2017년 여름 LG 출신 직원 76명을 채용했습니다.3 ITC는 2021년 2월 10일 SK 측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하고 '향후 10년간 SKI의 미국내 배터리 수입·판매 및 유통 전면 금지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만 이미 공급 계약이 되어 있는 포드와 VW에 대해서는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습니다.
SK는 LG의 기술을 훔치지 않았다고 항변합니다. LG 출신 직원을 채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업비밀 침해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배터리 제조 방식이 LG와 다르다는 것도 중요한 근거로 제시합니다. LG는 NMCA 방식, SK는 NMC9.5.5. 방식을 사용하는데요. NMCA는 니켈, 망간, 코발트,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반면, NMC9.5.5. 방식은 니켈, 망간, 코발트를 9:5:5 비율로 혼합해서 쓴다고 합니다. 저야 그 차이가 뭔지 알 수 없습니다만, 블룸버그NEF의 배터리분석팀장인 James Frith에 따르면 이 둘은 상당히 다른 방식이라고 합니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ITC는 LG의 주장이 옳다고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판결로 LG는 승기를 잡았습니다. 이 결정이 확정된다면 미국 시장에서 잠재적 경쟁자인 SK를 배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국 배터리 업체의 영업비밀 침해를 억제하는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SKI는 난감해졌습니다. 직접적 타격은 진행 중인 미국 사업이 좌초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SKI는 2022년부터 본격 가동을 목표로 조지아 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데요. 한국에서 부품과 소재를 수입하지 못한다면 사업을 계속하기가 매우 어렵게 될 겁니다. 어쩌면 LG가 유럽 시장에서도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고요.
SKI로부터 배터리를 공급받아 전기차를 만들어 팔려던 포드와 VW도 난감하게 되었습니다.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받긴 했지만 SK를 다른 회사로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 거죠. LG는 자신들이 SK가 빠진 자리를 채울 수 있다고 하지만 당사자인 포드와 VW 관계자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가전제품용 배터리처럼 가게에서 사다가 끼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배터리에 맞게 자동차가 설계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최소한 3~4년 전에는 배터리 업체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포드와 VW이 SK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런 과정을 거쳐왔음을 말합니다. 지금 와서 배터리 공급자를 바꿔야 할 경우 두 회사 모두 전기차 계획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수 있습니다. 물론 ITC도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포드에게는 4년 VW에게는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난제가 한둘이 아닌 모양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아주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빠른 시간 내에 60만대가 넘는 연방정부의 관용차를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기업은 테슬라와 GM, 닛산자동차 정도입니다. 현재 건설 중인 포드와 VW의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어야 바이든의 약속이 실현될 수 있는데요. SK가 조지아에 공장을 짓지 못한다면 포드와 VW의 전기차 계획도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SK가 공장을 짓고 있는 조지아주와의 관계도 골치가 아플 겁니다. 원래 조지아는 공화당 텃밭이었는데요. 이번 대선에서는 바이든을 찍었습니다. 보답이 필요한 셈이죠. SK가 여기에 공장 짓는 것을 중단한다면 조지아 사람들로서는 상실감이 클 겁니다. ITC의 판결이 난 이후 조지아 주지사는 SK공장 건설에 차질이 없도록 거부권을 행사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요청했습니다.
바이든으로서는 거부권을 행사할지 말지 고민이 클 겁니다. ITC가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부 기관이기 때문에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겁니다. 우선 ITC의 결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가 극히 적습니다. 2013년 삼성 대 애플 사건에서 삼성이 승소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거부권이 행사된 사례가 없습니다.
또한 의도적으로 기술을 훔친 행위를 두둔하는 격이어서 판결을 뒤집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특히 중국 기업들이 훔친 기술로 물건을 만들어 미국 시장에 내다 파는 행위를 막아야 하는 입장인데요. 이 사건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앞으로 중국 기업들을 막을 때에 설득력이 떨어지게 될 겁니다.
바이든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은 판결로부터 60일입니다. 4월초가 데드라인이 됩니다. 과연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까요?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입니다. 한국 기업들 덕분에 전기차 보급이 가능할 줄 알았는데 한국 기업들 때문에 좌초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바이든이 어떤 결정을 할지 궁금합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은 둘 사이의 타협입니다만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조건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LG 측은 SK가 잘못을 인정하고 3조원 정도의 합의금을 지불하라고 요구합니다. 반면 SK는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입장이고 합의금으로는 1,000억원대의 자회사 지분 제공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로 입장과 금액 차이가 워낙 크다 보니 합의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합의가 안된다면 사건이 연방법원으로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거부권이 행사되든 안되든 그렇습니다. 바이든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LG가 정식 재판으로 가져갈 겁니다.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할테니 말입니다. 거기서도 승소한다면 수조원 규모의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LG측은 말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거부권 행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SK 측이 정식 재판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승소할 수도 있고, 또 정식 재판을 마치는 데에 4년은 걸릴 테니 그 사이에 어떤 해결책을 찾으려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될지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배터리는 반도체, 희토류, 바이오제약과 더불어 성장가능성이 엄청난 산업입니다. 그 배터리 산업에서 한국이 앞서 있고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든이 중국 배터리를 끊어 내겠다고 선언한4 시점이어서 미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이 매우 유리해졌습니다. 이런 마당에 한국 배터리의 주역들인 LG와 SK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으니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잘 해결돼서 한국 청년들의 미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길 기원합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1 https://www.huffpost.com/entry/biden-electric-vehicle-korean_n_6022dce9c5b689330e333bfd
2 소송의 진실 FAQ, https://www.batterylawsuit.co.kr/faq/
3 배터리 소송 FAQ, http://www.skinnovation.com/ir/faq.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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