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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로 결정된 것은 2016년이었다. 그러나 영국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브렉시트가 초래된 상황을 이해하려면 간략하게나마 유럽연합의 역사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1
1993년에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더불어 출범한 유럽연합(EU)의 뿌리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움텄다. 전쟁의 참화를 더는 되풀이하지 말자며 프랑스와 독일이 1946년 먼저 화해를 했고 1951년에는 6개 회원국이 참여하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은 중재자 역할을 했을 뿐 참여하지 않았다. 1957년에 협력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여 유럽경제공동체(EEC)가 출범할 때도 영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EEC에 영국이 참여한 것은 1973년인데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1960년대에 영국은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반면 EEC 회원국들의 경제는 잘 나가고 있었는데 회원국들 간의 자유무역이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영국은 무역의 확대를 위해서 EEC에 참여했다.
영국의 참여는 유럽 각국과의 정서적 동질감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이해 득실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회원국이 된 후 영국은 유럽공동체의 정책에 대해서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곤 했다. 게다가 영국은 EEC의 제도적 틀이 이미 완성된 후에 참여했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EEC의 틀을 만든 나라들은 Inner 6(내부자 6)로 불리는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서독의 6개국이었다. 여기에 낄 수 없는 영국으로서는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1979년 영국 수상이 된 마가렛 대처는 유럽연합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날을 세웠다. 분담금이 지나치게 많다며 유럽연합의 예산을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싫어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88년 유럽연합이 노동규제와 사회적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이다. 그 당시 대처 수상이 이끄는 영국은 자유시장주의에 입각한 파격적 개혁이 한창이었고 경제도 살아나는 중이었다. 그런데 다른 유럽의 나라들 때문에 영국이 원하지도 않는 규제를 도입해야 하게 생겼으니 짜증이 날만도 했다. 결국 대처 수상은 부르헤스(Bruges)에서 열린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자크 들로르 유럽 대표를 비판하기에 이른다. 영국 상원의원인 데이비드 윌레트에 따르면 영국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Brexit, 즉 유럽 탈퇴의 길로 들어섰다.2
유럽의 국가들은 노동규제, 사회적 규제들이 많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과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규제가 강한 나라들에는 문제가 나타난다. 규제가 강할수록 투자가 줄기 때문에 일자리가 줄고 실업률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국경이 닫혀 있으면 문제가 있어도 그럭저럭 지낼만 하지만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울수록 규제로 인한 폐해는 빨리 크게 나타난다. 그러나 모든 회원국들이 동일한 규제를 적용한다면 당장은 이런 문제가 줄어들 수 있다. EU의 규제가 점점 더 강해진 이유 중에 하나다. 유럽공동체를 관리하는 관료기구가 생기면서 자체의 관성으로 생겨나는 규제들도 많았다. 영국인들이 말도 안되는 규제라며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던 규제들 몇 개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3
대처의 보수당에 이어 1990년부터는 노동당이 집권했지만 유럽연합에 비판적 태도를 거두지 않았다. 1991년에는 유럽연합 탈퇴를 정강정책으로 내건 영국독립당(UKIP: UK Independence Party)이 결성되어 세를 키워갔다.
결국 브렉시트는 2016년 6월 국민투표에 부쳐졌다. 개표 결과 찬성 52%, 반대 48%로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의지가 확정되었고, 2020년 1월 31일 23시, 영국은 실제로 유럽 연합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하였다.
브렉시트에 찬성 투표를 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가 있는데 찬성 이유 중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다음과 같다.4
결국 영국인들의 다수가 유럽연합을 영국과는 이질적인 집단으로 느끼기 때문에 생겨나는 이유들이다. 영국인들은 처음부터 유럽연합에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고 결국 거기에서 탈퇴하고 말았다.
한편 그리스는 영국보다 1년 앞서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지만 탈퇴가 실현되지는 않았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리스는 국가부채를 갚지 못해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국가부도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 그리고 IMF(Troika 로 불린다)는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긴축을 요구했다. 돈을 아껴서 빨리 빚을 갚으라는 요구였다. 그 조건을 맞추자면 그리스 국민들은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그 동안 누려오던 복지 혜택을 포기하고 세금은 더 많이 내야 한다. 우리 한국인들도 1998년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그 조건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경험한 적이 있다.
2015년 6월 그리스 집권당은 그리스 국민들에게 긴축 조건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였다. 결과는 반대 61, 찬성 39였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유럽연합과 IMF가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의사표현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Grexit, 즉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예상하게 되었다. 탈퇴라기 보다는 축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다. 그리스가 요구받는 조건은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의 규칙에 근거해 있었다. 그것을 부정한다는 것은 유럽연합의 규칙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런 나라는 회원국의 자격도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국민투표를 주도했던 그리스의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결과를 무시하고 구제금융의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본격적인 긴축과 증세가 뒤따랐다. 오랫동안 적자로 점철되어 오던 그리스의 재정은 2016년부터 작게나마 흑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2015년 6월 5일 17.6%까지 치솟았던 그리스 국채(10년 만기)의 이자로 급격히 떨어져서 현재는 0%에 거의 근접해 있다. 그리스의 국가 부도 가능성이 거의 사라졌다고 투자자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와 달리 그리스에서 그렉시트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리스 국민이 유럽연합 탈퇴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소리를 높인 것은 긴축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을 뿐 유럽연합 탈퇴가 아니었다.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유로존에서도 탈퇴하게 되면 원래 자국통화인 드라크마를 다시 사용하게 될 판이었다. 그럴 경우 그리스 경제가 참혹한 파국을 맞게 될 것임을 그리스 국민들이 잘 알고 있었고 두려워했다.5 그렇기 때문에 결국 긴축의 고통을 감당하면서도 유럽연합에 잔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그렉시트가 일어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유럽연합 탈퇴의 움직임은 이탈리아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 2020년 7월 23일 이탤렉시트(Italexit) 당이 설립되었다. 이탈리아의 유럽연합 탈퇴가 정강정책인 이 정당의 전체 이름은 No Europe for Italy – Italexit with Paragone, 즉 파라고네와 함께하는 이탤렉시트, 유럽 없는 이탈리아이다. 설립자는 당명에 쓰여 있는대로 이탈리아 상원의원인 파라고네이다. 이 신생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러나 3월달 Tecne의 여론조사6에서 응답자의 49%가 EU 탈퇴 지지라고 답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지지를 확보할 수도 있다. 브렉시트에 이어 이탤렉시트가 실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원래 이탈리아인들은 유럽연합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2018년의 조사에서는 29%만이 유럽연합 탈퇴를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2020년 들어서 유럽연합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악화된 것은 코로나 사태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병실과 관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왔다.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독일도, 프랑스도 모두 나라 문을 닫아걸기에 바빴을 뿐 회원국인 이탈리아를 돕지 않았다. 오히려 도움을 준 것은 중국과 러시아였다. 그 서운함과 원한이 유럽연합 탈퇴 여론으로 나타났다. 다행이 최근 유럽연합이 코로나 본드의 발행을 결정하고 이탈리아에 많은 지원을 해주기로 결정을 했다. 그로 인해서 이탈리아인들의 증오가 어느 정도는 완화된 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 돈이 실제 지급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한 데다가 상환조건이 가혹하다며 이탈리아 안에서 정부여당과 유럽연합을 공격하는 정치인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중에 이탤렉시트 당이 선봉에 서 있다고 봐야 한다. 브렉시트에 이어 이탤렉시트는 여전히 살아 있는 불씨이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1 이하의 내용은 영국 Economist 지의 2016년 3월 12일자 기사 'The Roots of Euroscepticism’에서 많이 참조했다. https://www.economist.com/britain/2016/03/12/the-roots-of-euroscepticism
2 How Thatcher’s Bruges speech put Britain on the road to Brexit, https://www.ft.com/content/0b0afe92-ac40-11e8-8253-48106866cd8a
4 https://lordashcroftpolls.com/2019/02/how-the-uk-voted-on-brexit-and-why-a-refresher/
5 https://www.aljazeera.com/opinions/2016/7/14/after-brexit-there-will-be-no-grexit
6 https://www.thelocal.it/20200420/italy-coronavirus-crisis-boost-far-right-euroscep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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