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달러 패권, 영국 파운드의 105년 넘길까?

김정호 / 2020-08-18 / 조회: 11,385


김정호_2020-24.pdf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WBHrojB2RQ4


안녕하세요? 오늘은 달러 이야기입니다. 요즈음 달러 패권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국의 블룸버그,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 일본의 니케이아시아리뷰, 홍콩의 SCMP 등에 달러가 기축통화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제기하는 기사들이 등장합니다.


실제로도 달러가 상당히 약세입니다. 달러 인덱스를 보면 8월 3일에 93인데요. 고점이었던 3월 20일의 102.8에 비해서 거의 10%가 떨어졌으니 많이 떨어진 거죠. 하지만 긴 기간을 놓고 봤을 때는 걱정할 정도로 낮아진 것은 아닙니다. 이 그래프는 1971년 이후 달러 인덱스 추이를 보여주는데요. 1978년 80 수준까지 떨어졌고, 2008년에는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의 여파로 73까지도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100 수준으로 복귀했습니다. 미국 경제가 그렇듯이 달러도 상당히 복원력이 뛰어난 화폐입니다.



현재와 같은 미국 달러는 1914년에 등장했습니다. 미합중국이 세워진 것은 1776년이지만 한 동안 나라의 돈이 따로 없었습니다. 은행들마다 자기들의 돈을 발행했습니다. 화폐조차도 민간의 영역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가지 혼란들이 발생했고 결국 1913년에 지금 우리가 보는 연방준비위원회, 즉 미국의 중앙은행을 설립했습니다. 다음해인 1914년, 달러를 발행하고 다른 돈의 사용을 금지시킴으로써 지금의 달러가 생겨났습니다.


미국 달러가 탄생하던 당시 미국은 떠오르는 태양이었습니다. 불모지에 세워진 식민지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을 해서 모국이었던 영국을 뛰어 넘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미국은 그것을 대기업 체제, 대량생산 체제로 키워서 대중 소비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교역 규모 역시 미국이 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로 통용된 것은 영국의 파운드화였습니다. 미국 달러는 국제통화가 아니라 그저 국내 통화에 불과했습니다. 현재 세계 최대의 수출국은 중국이지만 위안화는 국제 통화가 되지 못한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그런 모든 상황들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영국은 전쟁 당사국이 되었고 미국은 그들에게 전쟁 물자를 공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영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서유럽 선진국들이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돈을 마구 찍어 전쟁 비용을 마련하느라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게는 금으로 물자 구입대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 금의 대부분이 미국의 수중에 들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미국 달러만이 믿을 수 있는 화폐로 남게 되었고 그래서 1921년 경부터 달러가 국제 기축통화가 된 것입니다. 올해가 2020년이니까 99년을 국제통화로 지내왔군요.


기축통화는 누가 정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국제 거래에서 쓰이는 돈인데 가급적이면 하나의 돈으로 거래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에 국제 공통화폐, 즉 기축통화가 등장하게 마련입니다.



역사를 보면 당대의 강대국이면서 무역을 많이 하는 나라의 돈이 기축통화로 사용되었습니다. 신대륙의 광대한 식민지에서 금, 은을 들여왔던 스페인의 페소는 110년, 프랑스의 프랑은 80년, 네덜란드의 길더는 95년, 영국의 파운드는 105년 동안 기축통화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가 된 후로 99년이 되었는데 영국처럼 105년 또는 그 이상 달러 패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많은 분석가 투자자들이 그 위상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죠.


달러의 건전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맞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대안이 될 수 있는 통화 각각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대안은 중국 위안인데요. 경제 규모가 미국에 버금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경제규모 만으로 국제통화가 되지는 않습니다. 위안화는 관리자인 중국 공산당을 믿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그 돈의 발행과 관리 유통이 투명하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환전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하지만 중국 돈은 어떻게 관리되는지 외부에서는 알 방도가 없고 환전도 제약이 많습니다. 5만 달러까지는 자유롭게 송금이 허용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조차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디지털 위안화가 나온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통화 관리 내역이 비밀에 쌓여 있는 한 디지털 위안이든 지폐 위안이든 믿지 못할 것입니다. 위안화는 아무리 디지털 화폐로 전환한다고 해도 공산당이 현재 같은 방식으로 관리를 하는 한 기축통화가 될 수 없는 것이죠.


달러를 대체할 또 다른 후보는 유로화입니다. 경제 규모로 봤을 때 유럽연합의 GDP 총합은 19조 달러로서 24조인 미국의 87%에 달합니다. 14조인 중국보다 30%나 더 큽니다. 게다가 최근 유로화의 가치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28개 회원국들이 유로본드 발행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유로본드는 유럽연합 공동명의로 유로본드 채권을 발행해서 이태리,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코로나 극복예산을 도와주는 제도인데요. 4월까지만 해도 이 문제를 두고 이들 수혜국과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등 부담국들 사이에 갈등이 심각했습니다. 이탈리아가 유럽연합을 탈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유럽연합이 발행하는 유로의 미래도 불투명해지는 것이죠. 그런데 최근 그 문제가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유로화에 대한 신뢰와 함께 가치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로 발행의 주체인 유럽연합의 미래는 아직도 그렇게 확실하지 않습니다. 네덜란드, 스웨덴 등 책임감 강한 나라들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 사이의 갈등은 앞으로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습니다. 또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과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 사이의 갈등 역시 언제 폭발할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즉 유럽연합이 지금처럼 하나의 연합으로 언제까지 존속할지 확실치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 발행하는 유로화 역시 달러를 대신해서 국제통화가 되기는 아직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일본 엔화는 어떨까요? 엔화의 최대 강점은 미국 달러만큼이나 안전자산이라는 사실입니다. 세계 경제의 위기가 고조될수록 엔화의 가치는 높아집니다. 국제통화가 되기 위한 강점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엔화는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인들 자신이 엔화가 국제통화로 승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합니다. 국제통화가 되면 통화가치가 높아져 수출을 하기도 어렵게 되고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지금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그런 상황을 원치 않는 것이죠. 1980년대 일본 경제가 미국에 위협이 될 정도일 때조차 일본인들은 엔화 강세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달러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또 다른 후보는 IMF의 특별인출권 Special Drawing Right입니다. 현재는 회원국 정부끼리 일종의 외환보유고 같은 역할을 합니다만 회원국들이 동의만 한다면 그것을 기반으로 국제통화를 발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 가치는 미국 달러, 유로, 영국 파운드,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의 가치를 가중평균해서 책정됩니다. 문제는 회원국들이 동의를 해야 하는데요. 최대 주주인 미국이 달러를 대체할 새로운 통화의 발행에 동의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당분간 미국 달러를 대체할 다른 기축통화가 등장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습니다. 가치가 떨어지기는 해도 미국 달러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기축통화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 파운드가 누렸던 105년은 넘기지 않을까요?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8.5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99년 달러 패권. 100년을 넘길까?>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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