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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휘발유 가격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원유 가격이 폭락하는 현상에 대해서 말씀 드렸죠. 오늘은 국내 휘발유를 중심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원유 가격은 마이너스가 될 정도로 떨어졌다는데 휘발유 가격은 왜 찔끔 내리는 거야? 그런데도 그 휘발유 파는 정유사는 왜 위기라는 거야?’ 이런 의문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답입니다.
먼저 가격의 움직임부터 알아보죠. 4월 20일 국내 휘발유의 주유소 판매가격 평균 값은 리터당 1330.8원. 연초인 1월 2일 가격 1558.7원 비해서 14.6% 내렸습니다. 원유 가격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중동 원유를 쓰는데요. 두바이유가 기준 가격입니다. 같은 기간 두바이유 값은 배럴당 65.69달러에서 20.61달러가 됐습니다. 68.6%가 내렸습니다. 원유 가격은 68.6% 내렸는데 주유소 휘발유 판매 가격은 14.6% 내리는 데 그쳤습니다. 그야말로 찔끔 내렸습니다.
<원유 가격과 국내 휘발유 가격 비교>
왜 원유 가격 하락이 휘발유 값에 제대로 반영이 안될까요? 정유사들과 주유소들의 폭리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이지요. 사실 정유사의 정제마진은 1% 수준입니다. 석유값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세금입니다.
실제 가격을 가지고 따져보죠. 4월 3주차, 4월 12일부터 18일까지의 기간에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1330.75원인데요. 이 가격이 어떻게 나왔는지 e컨슈머라는 시민단체에서 상세히 분석을 해놨습니다. 휘발유의 리터 당 세전(稅前) 공장도 가격은 310.3원입니다. 여기에 에너지 교통환경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세금 852원이 붙습니다. 그것을 합친 금액 1162.33원에 공장에서 주유소로 출하되는 거죠. 주유소는 거기에 134.30원을 붙여 1330.75원에 파는 겁니다. 그 속에 또 부가가치세 15.31원이 들어 있습니다. 휘발유 값에 포함된 세금을 다 합치면 888원이고요. 휘발유 값 1330.75원의 66.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자료: e컨슈머
그 세금이 정액세라는 것이 특히 문제입니다. 만약 그 세금이 가격의 일정 비율 부과된다면 휘발유 국제 가격과 국내 가격이 비슷한 비율로 움직일 겁니다. 하지만 휘발유에 매겨지는 세금은 대부분 정액세이기 때문에 국내 휘발유 가격은 국제 가격 변화와 따로 놉니다.
보통 휘발유에 대해서 공장 출하 전에 부과되는 세금은 4가지인데요. 교통에너지환경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입니다. 이 중에서 부가가치세만 정율세이고요, 앞의 세가지는 정액세입니다.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리터당 529원, 주행세가 그것의 26%인 137.54원, 교육세가 79.35원, 이 세가지를 합치면 745.89원입니다. 이 세가지를 합쳐 유류세라고 부릅니다. 유류세는 원유 가격이 0원이 되더라도 내야합니다. 부가가치세는 세전 원가와 유류세를 합친 금액, 즉 1056.19의 10%가 부과됩니다. 이것을 다 합치면 세후(稅後) 공장도 가격 1162원이 됩니다.
그런데 위의 가격표를 유심히 보신 분은 의아하게 느끼신 부분이 있을 겁니다. 왜 세전 공장도 가격에 원유 가격이 아니라 휘발유 국제 가격이 들어가는지의 여부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원유를 수입해서 가공하는 것이니 ‘원유 가격 + 관세 + 정제 비용 + 유통 마진’ 이런 식으로 가격이 구성되는 것이 맞죠. 그런데 원유가 아니라 ‘휘발유 국제 가격 + 관세 + 유통 비용’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휘발유 시장이 국제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정유사들의 자체 원가가 어떻든 판매가격은 국제 가격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내 가격이 국제가보다 높다면 누군가 휘발유를 수입해다가 팔겠죠. 반대로 국내 가격이 국제 가격보다 낮다면 국내에 팔지 않고 해외에 수출할 겁니다. 그러니까 정유공장들이 마치 휘발유 수입상이 된 것처럼 휘발유 국제 가격을 원가로 생각하고, 거기에 관세와 유통 비용 마진을 붙여서 공장도 가격을 책정하는 겁니다. 석유제품 시장의 수출입이 자유롭기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습니다. 자체 원가가 국제가격보다 낮으면 돈이 남는 거고, 높으면 손해를 감수해야 하죠.
그런데 요즈음 정유사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보도가 자주 나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휘발유를 만들수록 손해가 나기 때문이죠. 정유사들 사업부문은 정유와 화학이 있는데 휘발유 사업은 정유부문에 속합니다. 2019년 정유부문 영업이익률이 1.4%였습니다. 2019년 3분기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이 4.8%입니다. 그것도 위기라고 하는데 1%대이니 실질적으로 손해가 나는 거죠.
코로나 사태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2020년 정유사들의 손실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존폐 위기에 몰릴 수도 있습니다. 휘발유 값이 원료인 원유 가격보다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그래프는 1월 2일부터 4월 20일까지 원유인 두바이유 가격과 국제 휘발유 가격의 추이를 보여줍니다. 주황색은 휘발유 가격이고 파란색은 두바이유 가격입니다. 원유를 구입한 후 정제해서 휘발유를 만드는 것이니까 주황색이 파란색보다 위에 있는 것이 정상이죠. 3월 중순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3월 20일부터는 휘발유 값이 원유 값보다 오히려 더 낮아졌습니다. 정유공장을 돌릴수록 손해가 난다는 말이죠.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원유 시장과 휘발유 시장이 별개이기 때문이죠. 즉 원유에 대한 수요보다 휘발유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원유를 사다가 정제해서 발생하는 이익을 석유 정제 마진이라고 부릅니다. 블룸버그 통신이 유럽시장의 최근 휘발유 정제 마진 자료를 발표했는데요. 2020년 3월의 경우 정제 마진이 배럴당 11.5달러입니다. 즉 휘발유 가격이 석유 가격보다 배럴당 11.5달러나 더 낮다는 겁니다. 한국의 정유사들은 싱가포르 국제 가격을 따르는 데요. 정제 마진이 유럽시장과 정확히 같지는 않겠지만 휘발유를 만들수록 큰 손해가 발생하는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그 가격을 기준으로 휘발유를 만들어 팔아야 하는 한국의 정유사들도 손실을 감수하고 있겠죠.
손해가 나는데도 정유공장들은 왜 생산을 멈추지 않을까요? 조업 중단의 비용이 크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다시 공장을 재가동해야 할 텐데요. 공장을 멈췄다 재가동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합니다.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정유공장 가동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다른 공장이 먼저 망해서 공급이 줄거나 또는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수요가 살아나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것이죠.
종합해보겠습니다. 휘발유 가격의 2/3는 세금입니다. 그리고 세금의 대부분이 정액세이기 때문에 원유와 휘발유의 국제 가격이 떨어져도 국내 휘발유 가격은 아주 미미하게만 떨어집니다. 휘발유 값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비난하려면 국세청과 국회, 또는 정부를 질타하는 것이 맞습니다. 휘발유 세금은 정유사가 아니라 그들이 결정해서 부과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한편 휘발유 값이 여전히 높은 와중에도 정유사들은 올해 존폐위기를 겪을 것 같습니다. 국내 정유사들의 휘발유 공장 출고 가격이 휘발유 국제 가격에 연동되어 있는 상태에서 휘발유 국제 가격이 원유 가격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정유산업은 우리나라 주력 산업의 하나였는데, 어쩌면 올해 그 산업의 황혼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4.27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휘발유값 여전한데 정유사는 왜 위기? 휘발유값 안내리는 이유. 유류세의 실상. 정유사가 국제휘발유값을 따르는 이유.>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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