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시험 준비 공장’이 아니다. 획일화된 교육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학생들은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부품들처럼 보인다. 개인의 개성이 곧 경쟁력이 되는 사회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교육과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쉴 새 없이 발전하는 과학·정보기술에 반해 교육기술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기존의 '주입식’, '대입주의’ 교육은 열린 변화를 맞이할 필요가 있다. 그 대안으로 다학제적 접근 능력과 창의적 사고를 촉진하는 스팀(STEAM) 교육을 고려해보자.
스팀(STEA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인문·예술(Arts), 수학(Mathematics)의 약자이다. 학문 간 통합적 접근을 통해 과학기술 기반의 융합적 사고력과 실생활 문제 해결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을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기술 혁신에 적응하고 또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기술 교육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는 추세이다. 특히, 다보스포럼의 보고서 '일자리의 미래’에서 미래 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디지털 리터러시’와 '복합 문제 해결 능력’을 언급하면서 스팀형 인재는 새로운 인재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것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낡은 것은 도태된다. 단편적이고 원론적인 지식들은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기업들은 다양한 정보를 활용하여 문제에 적용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스팀 교육은 과학과 수학을 기반으로 인문·예술 요소를 더하여 과학 기술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높이고 다른 학문과의 협업에 집중한다. 스팀 교육의 학습 준거는 세 단계로 구성된다. 상황 제시를 통해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고, 창의적 설계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 해결 방법을 모색하며, 문제 해결에 성공하는 경험을 느끼고 새로운 문제에 도전하는 감성적 체험의 단계로 이어진다. 변혁적인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교육의 방향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지금의 교육으로는 기업과 사회의 새로운 요구에 응답하는 데 한계가 있다.
나날이 떨어지는 학생들의 학습에 대한 흥미와 열정도 문제이다. 결과주의적 풍조에 따른 주입식·암기식 교육이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 학생들은 단기간에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원리를 깊이 이해하기보다 빠르게 암기하는 방법을 택한다.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진정으로 그 과정에 흥미를 느낄지 의문스럽다. 국제교육성취도평가협회(IEA)의 2011년 42개국을 대상으로 실행된 학업 성취도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 학생의 수학과 과학 성취도는 각각 세계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반면 수학에 대한 흥미도는 8%, 과학에 대한 흥미도는 11%로 국제 평균(수학 26%, 과학 35%)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성취도에 비해 현저히 낮은 흥미도를 유발하는 일방적인 지식 전달 및 암기 위주의 수업을 개선하기 위해 스팀 교육의 도입이 필요하다.
교육 다양화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최소화하고 이론 제시에서 그치는 기존의 수업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울 무학중학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악감상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챗봇과 피지컬 컴퓨터를 이용한 마음의 소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청각장애인의 어려움을 고민하고 소리의 3요소를 이해하며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 이미지화하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코딩하여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한다. 하나의 수업에 가정, 과학, 음악, 미술, 정보의 다섯 가지 교과목이 모두 포함되는 것이다. 여러 과목의 커리큘럼을 연계하는 스팀 교육으로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솔루션을 모색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을 기른 사례이다. 스팀 교육은 학생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꿈과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교사들의 주도 하에 프로젝트를 자율적으로 계획하고 진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 경계할 점은, 스팀 학습의 도입이 또 다른 획일적 교육과정의 양산이 되어서는 안 된다. 높은 기획 자유도와 용이한 다학문간 연계성은 교육 다양화를 실현하는 탁월한 수단으로 기능하겠지만, 스팀 학습의 보편화를 강제하게 된다면 또 다시 기존의 획일교육을 불러올 뿐이다. 궁극적으로 목표해야 하는 것은 다양한 교육 경로를 제공하여 능동적인 개성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개별 학교가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교실도 진화해야 한다. 창의성을 갖춘 융합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업 모델을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기가급 무선망과 최신 PC를 제공하여 안정적인 인터넷 사용을 지원하고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SW) 교육을 도입하는, 이른바 '한국판 교육 뉴딜’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빛여울초등학교에서는 인공지능 카메라를 활용하여 다양한 구도로 미술 작품을 그리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른 학교들도 증강현실(AR), 클라이밍, 드론 축구 등 기술과 지식의 융합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다른 나라의 혁신 사례를 쫓는 패스트 팔로워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직접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육성할 수 있도록 학교에 다양성과 유연성을 허락해야 한다. 발전하는 첨단 기술을 교육 수단으로 활용하여 학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무구한 창의력을 기를 수 있도록 21세기형 교실의 조성이 필요하다.
교육의 변화는 노동의 변화를, 나아가 산업의 변화를 만든다. 교육은 미래의 노동자를 육성하는 과정이다. 유연하고 다채로운 방식의 교육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생활의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 국가는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직적 교육 시스템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스팀 학습과 같이 다양하고 질 좋은 교육 선택지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하진 자유기업원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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