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부분지급준비제도가 경제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모든 오스트리아학파 학자가 동의한다. 만약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의견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는 결코 오스트리아학파의 일원으로는 간주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을 벗어난 민간은행의 부분지급준비제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셀진(Geroge Selgin)과 화이트(Lawrence White)는 정부가 교환수단의 양을 통제하지 않고, 중앙은행으로 민간은행을 뒷받침하지 않으며, 기타 화폐금융제도에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민간은행이 부분지급준비제도를 채택하여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와 데소토(Jesus Huerta de Soto)를 비롯한 학자들은 부분지급준비제도는 결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민간은행이 하던 중앙은행이 하던 그것은 언제나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부분지급준비제도를 사기, 즉 횡령이라고 정의하는 점에서 독특하다.
횡령은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타인의 재물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거나 반환을 거부(은닉)하는 금융사기이다. 예컨대 거액의 돈을 취급하는 회계담당 직원은 고용주의 재산을 횡령할 수 있고, 변호사나 펀드매니저는 고객의 신탁계좌에서 자금을 횡령할 수 있으며, 결혼한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의 재산을 횡령할 수 있다. 횡령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중대한 것까지 아주 다양한 범위가 포함된다. 중대한 횡령의 예시로는 폰지사기가 있다. 타인의 재산을 허가받지 않고 사용하는 범죄행위가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진다면, 특히 그것이 제도적으로 내재되어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면 발생하는 법적 그리고 경제적 문제는 상당하다. 그리고 그 예시가 바로 부분준비제도라고 오스트리아학파의 주류(라스바드의 견해)는 말한다.
부분지급준비제도는 민간은행이 모든 출금 청구를 한 번에 상환하기에 충분한 지급준비금을 유지하지 않고 예금의 일부를 대출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예컨대 지급준비율이 5%인 상황에서 고객 A가 은행에 10,000 달러를 예치한다면, 은행은 고객 B에게 A의 예금 중 9,500 달러를 대출해줄 수 있다. 실제로 A의 예금은 500 달러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물론 다른 고객들도 은행에 예금을 해두었으니 A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10,000 달러를 인출할 수 있지만, 그것은 다른 고객의 예금에서 빼돌린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예금자가 동시에 출금을 요구한다면 은행은 파산하게 된다. 주어진 달러에 대한 소유주가 원칙적으로 한 명이어야 하는 상황에서 두 명 이상의 공동 소유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A는 당연히 예금한 10,000 달러의 정당한 소유주이다. 그러나, B 역시 여러가지 조건을 충족하고 합법적으로 대출받았으니 대출한 9,500 달러의 정당한 소유주이다. 그리하여 주어진 9,500 달러에 대한 소유주가 동시에 두 명이 존재하게 된다. 동일한 물리적 자원에 대해 독점적인 통제권(소유권)을 두 명 이상이 가진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오스트리아학파의 주류는 부분준비제도가 계약상 의무를 적절하게 이행할 수 없는(모든 예금을 동시에 인출해줄 수 없음) 사기이자 고객의 자금을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횡령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혹자는 예금한 돈을 남에게 대출해주는 대신에 그 대가로 예금이자를 주는 것이니 무엇이 문제냐면서 반론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부분지급준비제도 하에서의 대출은 신규 투자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배당을 지급하는 폰지사기와 다름이 없다. 새로운 예금자 혹은 중앙은행의 담보가 없다면 고객의 예금을 빼돌려서 대출을 해주는 관행은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반론은 기각해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100% 지급준비제도라는 훌륭한 대안이 존재한다. 100% 지급준비제도에서 민간은행은 장기예금(계약한 기간 동안 돈을 인출할 수 없음)만을 대출해줄 수 있다. 이는 뱅크런을 방지하고 사기와 횡령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설령 중앙은행의 담보가 없는 부분지급준비제도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폰지사기와 다름이 없으므로 자유사회에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동시에 부분지급준비제도에 의한 대출은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의 양을 증가시켜 화폐구매력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므로 경기변동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부분지급준비제도는 법학, 윤리학, 그리고 경제학 모든 측면에서 큰 문제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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