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부터 국내 게임업계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가장 최근의 사례인 동시에 논란이 많았던 사례는 국내 1위의 게임회사 넥슨이 퍼블리싱하는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 문제이다. 메이플스토리는 국산 게임 중에서도 유독 리니지, 피파 온라인과 함께 사행성이 짖은 게임으로 악명이 높은데, 게임 내에서 아이템 강화의 가장 기초적인 조건으로 평가받는 “추가옵션”의 확률 배정이 완전히 무작위가 아니라 정해진 로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그 동안 “추가옵션” 때문에 엄청난 수준의 현금을 투자해온 유저들이 분노한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추가옵션의 배정을 넥슨 측에서 조작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메이플스토리 유저들은 넥슨 본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국회의원이나 언론과 접촉하여 해당 사태를 공론화하는 방식으로 운영진에 맞섰다. 회사의 운영방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보이콧 등의 방식으로 개선을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유저들이 회사에 대한 단순 보이콧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간섭을 상당히 강력하게 요청한다는 점에 있다.
메이플스토리 유저들의 여론을 주도하는 “메이플스토리 인벤”에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현재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은 별 다른 국가규제가 없으며 업계의 자발적인 자율규제에 대체로 의존하고 있다. 설령 이번 사태에서 넥슨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들, 애초에 국가의 법적인 규제 혹은 감시가 없는 한 이런 일은 재발할 수도 있고 소비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게임회사들은 정부의 관리감독이 없다면 소비자를 착취하기만 하므로 국가적 차원에서 게임업계를 통제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리버테리언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들의 주장은 전형적인 국가주의 오류에 빠져 있다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건전한 경제학은 우리에게 진리를 알려준다. 국가간섭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더 키울 뿐이거나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포장하며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확률형 아이템은 게임회사가 일방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제도와 다르게 시장의 제도에는 강제성이 없다. 우리는 국가에게 꼬박꼬박 세금을 납부하거나 병역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감옥에 투옥된다. 그러나 메이플스토리를 하면서 보다 강력한 보스 몬스터를 잡기 위해 반드시 50만 원 수준의 현금을 투자해야 한다고 한들, 게임회사가 우리에게 50만 원을 내놓지 않는다면 감옥에 갈 것이라고 협박하는 것이 아니다. 유저는 언제나 메이플스토리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다른 게임을 하거나 아예 게임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저는 메이플스토리의 확률형 아이템을 사용하기로 스스로 결정했다. 다시 말해 유저가 구입하지 않는다면 게임회사는 팔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시장에 자리잡은 확률형 아이템들은 소비자와 공급자가 함께 형성한 질서이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시장질서에 국가가 간섭하는 것은 이러한 균형을 깨트리고 부작용을 발생시킨다.
만약 게이머들이 확률형 아이템을 진심으로 거부한다면, 그들은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게임을 보이콧하거나 자기 재산을 활용해 회사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면서 자율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 많은 게임들은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한 이윤을 챙기고 있다. 오히려 확률형 아이템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일부 게임들은 게이머들의 큰 비난을 받으며 향후 이윤창출에 큰 난향을 겪고 있는 수준이다. 확률형 아이템은 정부가 직접 규제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 악폐습이 아니다. 게임회사가 사업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신호를 반영할 수 밖에 없고, 소비자들이 진심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반대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적절한 대안적 이윤창출방안을 찾아낼 것이다. 물의를 일으킨 메이플스토리 역시, 정부가 규제하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소비자들에게 사과하고, 배상안을 제시하고, 기존 확률형 아이템의 로직을 공개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혹자는 그렇다면 게임회사가 소비자에게 확률형 아이템을 가지고 사기를 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냐고 물을 수 있다. 예컨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를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면 게임회사는 확률을 “조작”하여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으나, 만약 확률이 법적으로 공개된 상황이라면 그러한 조작이 차단될 뿐만 아니라 조작을 한다고 해도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공개, 그리고 확률 조작의 문제는 경제학이 아니라 윤리학의 문제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리버테리언 윤리학은 두 사례 모두 국가가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확률 공개의 경우 게임회사의 권리이므로 국가로서는 간섭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게임회사의 자발적인 확률 공개를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것이다. 확률 조작의 경우, 그것이 사기이므로 법적 처벌의 대상이라는 점은 확실하지만, 실제로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사전에 그 가능성을 통제하는 것은 부당하다. 테러방지법이나 국가보안법 등이 부당한 것과 같은 이유이다. 확률 공개를 강제한다면 기업의 확률 조작을 보다 쉽게 식별할 수 있겠지만, 이는 국가가 전 국민의 개인정보를 통제한다면 테러리스트를 더 쉽게 잡을 수 있다는 논리와 동일하다. 두 사례 모두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므로 목적이 바람직하다고 한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시장이 언제나 즉각적이고 확실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할 수 있다. 아마 기존에 형성된 질서를 갈아엎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정부의 간섭을 단기에 큰 효과를 내기에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관건은 그러한 간섭은 장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실효가 없을 뿐만 아니라 문제를 더 키운다는 것이다. 기업과 소비자가 상호작용하며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기 이전에 강제로 해답을 정해버린다면, 가능했던 최선의 해결책은 사라지게 된다.
과거의 게임업계는 게임회사와 게이머가 함께 정부규제를 맞서는 방향으로 투쟁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정이 다르다. 이는 게임회사들이 게이머들의 니즈를 오판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 사안이다. 게임회사들은 스스로의 잘못을 정확히 인지하고 소비자들의 진정하고 긴급한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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