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본 일자리 ①: Employment at will과 정년

조정환 / 2021-03-16 / 조회: 9,964

저는 미국의 대기업과 한국의 대기업 모두에서 인턴을 해 보았습니다. 둘 다 각 산업의 선두주자로 인정받는 굴지의 회사들이었지만, 그 내부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특히, 인사 시스템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우선, 부서 배치 과정부터 상당히 차이가 났습니다. 미국 회사에서는 지원시부터 각 사업부, 부서별로 다르게 채용해 지원자가 본인의 적성과 맞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한국 회사에서는 우선 뽑고 '뿌리는’ 인력 배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미국 회사에서는 이 회사 이후의 커리어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조언을 주고받았지만, 한국 회사에서는 '퇴사 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였습니다. 미국의 회사가 개인의 커리어를 존중하며, 이를 지원해 주었다면, 한국 회사는 조직의 필요를 더욱 중요시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기들의 성향 역시 많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미국 회사의 동기들은 이 회사 이후에는 어떤 회사를 갈 것인지, 어떤 커리어를 쌓아 나갈 것인지를 자유롭게 이야기했지만, 한국 회사의 동기들은 들어온다 해서 정년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을 것인지,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 것인지를 조금 더 고민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여러 요소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고용의 유연성일 것입니다. 철저한 능력 중심의 임금 구조를 가진 미국에서는 개개인 모두가 본인 노동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이직을 자유로이 하며, 회사 역시 뛰어난 직원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가파른 임금 상승과 빠른 승진 등의 수단을 통해 회사의 매력도를 높입니다.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는 본인의 역량을 높여 빨리 이직을 하며 임금을 올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입니다.


하지만, 연공서열 중심의 폐쇄적인 고용 구조를 가진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는 그 리스크를 감수할 만큼 이직이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한 직장에 오래 재직하며 꾸준히 중상위권의 임금을 받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원들의 관심 역시 승진 보다는 정년에 쏠리게 됩니다. 


노동자 개개인이 도전보다 안정을 택하는 사회는 역동성이 결여될 것이며,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경쟁력 역시 약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AI와 드론 등 미래 유망 산업에서 경쟁국들보다 몇 걸음 뒤에 있습니다. 이를 타개하려면 뛰어난 인재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우리의 노동 시장을 혁신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노동 시장 개혁은 청년 실업률을 해결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역량을 갖춘 청년들을 대규모로 채용함으로 인해 청년층의 높은 실업률은 자연히 해결 될 것입니다. 저출산과 같이 높은 실업률로 인해 발생되었던 문제들 역시 상당히 개선될 것이며, 우리 경제는 더욱 지속가능한 구조로 재편될 것입니다.


노동 시장 개편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점진적 개혁도 있을 수 있고, 임금 자체를 올려버리는 개혁 역시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미국식의 고용 구조를 도입하자고 제안합니다.


미국의 고용 구조는 Employment at will로 대표됩니다. 직역하자면, '의지에 기반한 고용’ 정도로 해석되는 이 표현은, 미국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잘 보여줍니다. 이 표현처럼, 미국에서는 고용주와 근로자 모두 특별한 사유 없이도 마음대로 고용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철저히 고용주 위주의 계약 구조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고용주 역시 근로자가 정년까지 근무할 것이란 기대를 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당한 대우를 계속해서 해주게 됩니다. 미국의 직급별 임금 상승률이 아주 가파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노동 구조는 노동자 개개인의 자기개발을 촉진하며, 경제의 역동성을 더욱 높이는 효과도 창출합니다.


우리 역시도 이제는 중후장대형 제조업에 필요한 정년 기반 고용 구조 대신, 첨단 산업에 더욱 적합한 Employment at will 기반 고용 구조로 변화해 나가야 합니다.


기성 세대가 대규모로 정년을 맞이하게 되고,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는 지금 이 시기야말로 고용 구조 혁신의 적기입니다. 청년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고용 구조 개혁, 우리 역시 빠르게 추진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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