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교환적 정의가 가지는 경제학적 함의

김경훈 / 2021-01-19 / 조회: 12,370

아리스토텔레스는 왜 교환의 문제를 인간 삶의 궁극적인 좋음을 논하는 저서인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진지하게 다루었는가? 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교환은 인간의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한 수단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드러나는 교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분량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에 몇몇 설명은 애매한 점이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윤리학에 대한 그의 전망과 일치할 뿐더러, 오늘날에도 상당 부분 유효한 함의를 남겨준다.


교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교환적 정의는 재화의 교환이 어떻게 해야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동체가 근본적으로 교환으로부터 존재하게 된다고 말하며, 교환적 정의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운영하는데 기본적인 전제라고 평가할 정도로 교환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제5장 10절)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정한 교환이 기본적으로 균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두 교환당사자 A와 B는 서로 동등한 가치를 교환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한 당사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되는 반면에 다른 당사자는 더 적게 가지므로 공정하지 못하고 따라서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모든 재화가 서로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공정한 교환은 단순한 동등성이 아니라 비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6절, 12절)


아리스토텔레스는 집을 짓는 목수 A와 그가 만든 집 C, 그리고 신발을 만드는 제화공 B와 그가 만든 신발 D 사이의 예시를 만들어 이를 설명한다. 이 둘이 서로의 필요에 따라 집과 신발을 교환하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교환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둘은 서로 같은 가치를 가진 재화를 비례적으로 교환해야 한다. 한 채의 집은 대체로 한 켤레의 신발보다 더 가치있다고 여겨진다. 그렇다면 제화공은 목수에게 한 채의 집에 상응하는 수의 켤레에 해당하는 신발을 넘겨야 한다. (8절)


그렇다면, 공정한 교환의 교환대상들은 서로 비교가능해야만 한다. 서로 가치를 비교할 수 없다면 공정한 교환은 결코 성립될 수 없을 것이다. 공정하게 성사된 교환은, 사람들이 필요한 것들 중 각각에게 부족한 것과 넘치는 것의 균형을 가능하여 불공정함을 해소하며, 공동체를 지속시키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교환이 곧 정의로운 것이라고 본 것이다.


화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


공정한 교환은 수적으로 동등한 것들의 교환이 아니라 가치상 동등한 것들의 교환이다. 문제는 물물교환의 경우 서로 다른 재화의 가치를 상호비교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몇 켤레의 신발이 집 한 채에 상응한다고 어떻게 신발과 집만을 놓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객관적으로 참조가능한 기준이 없다면 사람마다 재화들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다를 것이고 원활한 교환이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화폐가 필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10절) 화폐는 교환매개체로서 서로 다른 재화들의 가치를 비교하고 평가할 기준을 마련해준다. 다시 말해, 화폐는 가치의 환원을 가능하게 한다. 


의문점 1: 화폐가치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교환적 정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는 비교적 짧은 편이고, 주장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이 많이 있지는 않기 때문에 여러가지 상이한 해석이 가능해보인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수와 제화공의 산출물이 가치상 균등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균등한 것으로 계산하여 교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집 한 채가 신발 몇 켤레와 균등한 가치를 가지는지 우리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근본적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화폐가 집 한 채와 신발 한 켤레에 서로 다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5개의 침대는 어떻게 한 채의 집과 같은 가격을 가진다고 계산될 수 있는가? 왜 신발 한 켤레가 집 한 채보다 가치가 떨어지기에 집 한 채를 사기 위해서는 신발 여러 켤레를 팔아야 하는가? 화폐적으로 정당한 가치를 지불하고 교환을 해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 자체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실이기 때문에, 많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의 다른 저서에는 이에 대한 해명이 나와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주어진 부분만 본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가격의 형성 논리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 가능한 최선의 잠정적인 결론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교환에서 재화들 사이의 비율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파악했지만, 그러한 비율이 어떤 방식으로 환산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1. 탐구하지 않았거나, 2.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동의 질 혹은 투입시간에 의해 가치가 계산된다는 노동가치론, 혹은 개인의 주관적인 평가에 의해 가치가 계산된다는 주관가치론 등 후대의 여러 재화의 가치이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과 호환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 추론을 섣부르게 내놓는 것은 조심스럽다.


의문점 2: 공정한 교환은 동등성에 따른 교환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공정한 교환이 동등한 것들 사이의 교환이라고 말하며, 이를 간단한 수학적 등식으로 설명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 최초의 수학적 경제학자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관건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등식이 실제 교환과 충돌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교환은 교환당사자들이 교환대상이 되는 재화의 가치를 주관적으로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에 성사될 수 있다.


교환대상이 되는 재화의 가치가 정말로 동등하다고 여겨진다면, 두 교환당사자는 서로 교환하지 않을 것이다. 자발적인 교환은 오로지 두 교환당사자가 상대방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을 서로 차등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A는 100 켤레의 신발을 한 채의 집 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기에, 다시 말해 동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교환할 의사가 있고, B는 한 채의 집 보다 100 켤레의 신발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A와 교환하고자 한다. 화폐를 매개로 한 간접교환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교환과 화폐에 대한 생각이 여러 해석과 병존할 수 있다고 쳐도, 조심스럽지만 그의 견해가 노동가치론에 보다 친화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재화의 가치가 순전히 주관적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면, 공정한 교환이 동등한 것들 사이의 교환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적어도 그런 서술은 교정되어야 할 것이다. 반면에 만약 재화의 가치가 노동의 투입시간이나 투입된 자본 등에 의해 어느정도는 객관적으로 정해진다고 생각한다면, 주관적인 사용가치와 별개로 객관적인 노동가치가 사물에 내재하게 되므로 동등한 가치의 공정한 교환이 성립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결국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텍스트의 밖으로 넘어가는 것이므로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술이 모호한 까닭에, 이러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할 수 있을 뿐이다.


교환과 화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의 선구적 성격


비록 아리스토텔레스의 몇몇 서술에 대해서는 의구점이 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본다면 그는 위대한 경제사상가로서 후손들이 개별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을 성립하는 초석을 세웠다고 평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교환을 윤리학적인 맥락에서 다루었다는 점은, 그가 교환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은 최고의 선인 행복을 목적으로 추구하며 어떻게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이다. 만약 그의 윤리학이 의무론적 윤리 혹은 결과론적 윤리를 다루었다면, 분명 윤리학 책에서 교환을 논하는 것은 상당히 기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환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교환당사자들은 교환을 통해 자신의 처지가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교환한다. 자발적인 교환의 유일한 목적은 자신의 불안의 해소와 행복의 추구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즉, 자발적인 교환으로 자신의 처지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교환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환을 윤리학에서 다루고자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결정은, 당대의 경제학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고려한다면 매우 적절한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교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 여전히 상당부분 유효한 이유는, 그의 접근법에서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고용하고자 하는 인간의 행위가 곧 경제적 행위이고, 경제현상이란 그러한 경제적 행위가 상호작용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만약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이 행복이라고 할 수 있다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인간의 행위는 경제와 어느정도 연관될 수밖에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행복이란 무엇이고,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 무엇을 논리적으로 함의하는지 추적함에 따라, 경제적인 문제에도 통찰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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