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강제 착용은 드디어, 그리고 기어코, 본격화되어 11월 13일부터 벌금을 동반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나에게 이 날은, 연구 논문 한 편과 함께 내가 공저자로 참여했던 의학과 환경의 역사를 주제로 한 새 책이 나온 날이었다. 유럽에서 출간된 이 책에서 19세기 영국의 위생과 의학의 관계를 다룬 내 논문의 마지막 문구는 묘하게도 위와 같은 정책이 아무렇지 않게 시행되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바라보는 현재의 내 씁쓸한 감정과도 연결된다. 적당히 의역 하자면, 그 마지막 문구는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오늘날 환원론은 의학과 여타 과학 분야에 지배적인 시각이 되었으며, 자연 바람과 신선한 공기는 더이상 건강에 있어서 우리가 중요하게 신경 쓰는 가치가 아닌, 부차적인 존재이자 귀찮은 환경이 되었을 뿐이다. 손 씻기와 정기적 검진 등은 의사들에 의해 항상 강조되지만, 정작 건강을 위한 전통적 위생의 기본 철학은 평범한 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오늘날의 독점화된 의학 시장 속에서 망각되어 버린 듯하다.
물론 위의 글은 서구의 고전적인 위생(hygiene) 개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이 고전 위생 개념의 핵심은 개인이 자신의 생활과 환경에 대한 관리를 통해서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의 몸에 깃든 면역 능력을 높이는 데에 있었다. 가령 전체론적(holistic) 의학 이론이 나름 번성했던 19세기 중반까지도 유럽의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처방했던 가장 핵심적인 위생 조치 (hygienic regimen) 중 하나는 야외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하는 산책(work in the fresh air)이었다.
이 전통적인 위생 관념이 특히 18, 19세기 전 유럽에 유행했었던 시대적 배경은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에 있었다. 조용한 숲 속을 산책하는 것을 필수적인 삶의 요소로 생각했던 당시 유럽의 모습은 문학이나 예술뿐만 아니라 의학 철학사 (the history of medical philosophy)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지금도 영국에서 대부분의 서민들이 가족과 함께 기분 내는 방법은 자연으로 떠나는 것이다. 굳이 캠핑이 아니더라도 영국의 어느 타운이든 한 시간 거리 이내에 숲이 우거진 자연 속을 마음껏 거닐 수 있는 곳은 널려 있다.
서울의 미세먼지 자욱한 공기 속에 지내는 지금은 예전 유학 시절,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crisp air라고 부르던 그 차갑고 건조하면서도 상쾌한 공기가 그립지만, 사람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공기에 너무나 쉽게 익숙해진다. 서울에 돌아와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도시의 풍경은 메케한 공기 속에 다들 자신의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었다. 도로는 비행기 활주로 마냥 지나치게 넓고, 보행자 '따위'는 이 자동차 왕국처럼 보이는 서울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사람들이 그다지 망설임 없이 무단 횡단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보행자 천국인 유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우리와 비슷하게 교통신호를 잘 지키는 일본의 동경과 비교해도 서울의 보행자 신호등 대기 시간은 거의 두배 가까이 길며, 자동차들은 시야에 보행자가 보여도 결코 속도를 줄이지 않으려 하는 삭막한 곳이 한국의 차도와 교차로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사람들은 자동차 바깥, 창문 바깥의 공기와 관계를 끊은 채 살아간다. 거리의 보행자 따위의 존재 그리고 그들이 들이쉬는 공기 따위에 관심을 보일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미세먼지는 매년 심해져 왔지만 차량의 숫자와 도로의 폭은 갈수록 더 늘어나고 도저히 건강해질 수가 없는 상황으로 도시 환경은 흘러가는데, 사람들은 혈당 수치와 칼로리 섭취량만 들여다보며 살고 있다. 갈수록 포퓰리즘화 되어가는 한국의 정치 현실도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정치력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부유층 증세를 지지하며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자 외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유류세나 도로세, 자동차세를 올리는 데에는 찬성할지 의문이다. 서울의 수많은 빌라 건물 옥상에 발라진 녹색 페인트는 역설적으로 녹지로부터 멀어져 가는 서울시민들의 반자연주의적 삶을 선명하게 반영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코로나 바이러스를 명분으로 한 마스크 강제 착용 정책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올해 스피커를 통해 거리 곳곳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울려퍼지는, '마스크로 입과 코를 끝까지’ 덮어 쓰도록 강조하는 지침은 들을 때마다 정말 심히 미간이 찌푸려지게 만든다. 인터넷 구글에서 compulsory mask wearing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면 첫 페이지에 나오는 글 중에 인도 타임즈에 한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 보건학 명예교수가 지난 달 기고한 글이 있다(https://timesofindia.indiatimes.com/blogs/toi-edit-page/compulsory-worry-to-wear-or-not-to-wear-masks-that-is-the-life-and-death-question). 점점 더 집단주의적 기조를 강하게 띠기 시작한 한국의 방역 지침과 비교되는, 날카로운 비판의 쟁점을 다수 포함한 글이다. 기본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는 정책은 보건학적으로 아직 논쟁적인 주제임을 지적하고 있고, 실제 감염은 대부분 실내 공간에서 일정 시간 이상 감염자와 함께 (마스크를 끼던 안끼던) 시간을 보내는 경우였음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즉 마스크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창문을 열고 자신의 주변 공기를 환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다른 많은 논문에서도 지적하듯, 마스크 착용의 유익은 착용자 자신을 위한 예방에는 별 효과가 없고 (매우 고위험군은 예외), 일반적으로 말하거나 기침할 때 비말이 가까이 있는 상대에게 튀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음을 얘기하고 있다.
특히 마스크를 '코까지’ 덮어 씀으로 해서 실제로 바이러스를 오히려 코와 마스크 사이의 협소한 공간에 (배양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래 붙잡아 두게 되는 (trap the virus) 효과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히 나오는 결론이다. 나 역시 예전 인턴 시절 수술실에 들어갈 때면 마스크에 대한 엄격한 착용 지침 및 수술실에서 나오는 순간 즉시 폐기해야 하는 등의 매뉴얼을 열심히 따랐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매일, 그것도 거의 매시간,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자신들이 착용하는 마스크가 자신들의 호흡에 항균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믿음이다.
애당초 무균 호흡을 지향하는 듯한 (마스크를 코까지 덮어 쓰는 행위의) 목적 자체는 사실상 미신적 신념에 가깝다. 일반인들이 쓰는 마스크가 우주인 헬멧처럼 산소 탱크에 연결된 것도 아닌 이상 자신이 흡입하는 산소는 결국 마스크 밖의 외부 공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인체의 코 근육이 흡기를 위해 작용하는 압력은 마스크 착용 시 당연히 더 높아지고 여기에 들어가는 신체 에너지도 상대적으로 늘어남과 동시에 이러한 스트레스에 따른 예측할 수 없는 체내 장기적 변화도 고려되어야 한다. 즉, 마스크 착용이 주변 공기 중에서 코로 흡기 되는 바이러스의 농도를 낮춰주리라는 단순 논리에 근거한, 마스크 착용자에 대한 감염 예방 효과는 보다 포괄적 변인들을 포함한 의학적 합리성의 기준으로 검증되기 전에는 강제적 지침의 근거로 활용될 수 없다.
즉 사람이 많이 모인 밀폐된 장소 등에서 입을 마스크로 가리자는 것이 보건학적 차원에서 효과적인 방책이 될 수 있음은 수긍할 수 있지만, 마스크 착용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타인에 대한 배려 차원에 머물러야 하며 착용자 개인을 감염으로부터 지키자는 예방의학적 목적으로 강요되될 수는 없다. 낭만주의나 자연주의적 사치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건 환기가 안되는 밀폐된 상자 속의 공기(즉 시간이 가면서 몸 안에서 배출되는 온갖 노폐물로 가득한 공기)를 계속 호흡하는 것과 같이 건강에 무리를 준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요란하게 외쳐지고 있지만, 원래부터 기침을 할 때 그다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었던, 개인 공간 (personal space) 개념에 대한 의식도 없고, 줄을 설 때나 물건을 계산할 때 멀찍이 떨어져서 기다리는 기본 에티켓도 없는 한국 사회에서 코까지 가리는 마스크 정책이란, 치과의사로서 비유하자면 칫솔질하는데 치실이나 치간 칫솔은 안쓰면서 양치액을 입 속에 몇 번 가글한 후에 이제 개운해졌으니 구강 청결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어리석은 모습이다.
이는 애당초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이 마시고 살아가는 공기 자체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관계된다. 즉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를 누릴 수 있는 권리 따위는, 코로나 감염에 대비한 사회 전체의 집단적 책임에 비해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순수하게 이렇게 면역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목적이 그렇게 중요했다면, 독감 예방 백신 접종하고 사망한 수십 명의 개인들에 대해서는 왜 이 정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그들도 코로나 사망자와 마찬가지로 면역 체계에 뭔가 문제가 있었을 사람들일텐데 말이다.
면역 취약자들을 위해 온 사회 전체가 미생물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항균 소독제를 도처에 손 닿는 곳 표면 마다 들이 부으며) 싸우고 있는 이 마당에 이러한 이중 논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들은 백신 접종을 선택한 결과였으니 개인의 책임이라고? 그럼 나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알아서 바이러스와 싸우겠다는, 즉 마스크로 입까지 가리되 코는 가릴 수 없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왜 인정하지 않고 벌금을 매기려 하는 걸까? 위선적인 것인가 아니면 비논리적인 것인가?
어떤 정책이든 그것이 의도하는 목적이 있는 반면 그에 부수되는 비용이 초래된다. 이 비용에는 가시적인 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쉽게 정량화 할 수 없는, 개인들의 가치가 개입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비용이 중요하게 포함된다. 집단주의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부 하의 여러 정책들은 흔히 후자의 측면을 너무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분명히 얘기하자면, 마스크로 입을 가릴 필요가 있다는 데에 나도 동의하지만, 마스크를 코까지 의무적으로 가리게 하는 정책은 헌법적 정신에 입각해서도 개인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여지가 있다. 내가 숨 쉬는 공기를 깨끗하게 만드는데 조금도 관심 없어 보이는 정부가 합리적 근거도 없이 개인이 코로 공기를 들이쉬는 행위의 기본권마저 방해하고 간섭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왜 한국 사회는 여기에 침묵하는 걸까? 또 이러한 사회를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다들 그냥 프랑스 같은 나라도 다 하는데 우리도 닥치고 따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숭의여고 역사교사 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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