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현재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을 다루는 글이므로, 시작하기에 앞서 몇 가지를 공지하고자 한다.
1. 필자는 전문적인 학문적 훈련을 받지 못했으며, 오스트리아학파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 대한 비전문가이다. 즉, 이 글은 오스트리아학파의 논리를 빌리고 있음에도, 명백한 오스트리아학파 견해라 보기 어려울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오해와 잘못은 필자의 책임이다.
2. 이 글은 Stephan Kinsella - Against Intellectual Property, Walter Block - The Crime of Blackmail: A Libertarian Critique, Murray N. Rothbard - The Ethics of Liberty 등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치철학 저서에서 밝혀진 몇 가지 개념에 의존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이 글이 그러한 기초 위에서 일관성있게 성립되었는지와 별개로) 오스트리아학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동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3. 이 글에서 말하는 '자유사회’는 오스트리아학파에서 말하는 '아나코-캐피탈리스트(Anarcho-Capitalist)’ 사회를 의미한다.
n번방 사건은 기본적으로 "협박을 통해 수십여 명의 여성에게서 나체 사진 및 성적 행위가 담긴 영상물을 받아내고, 그것들을 텔레그램을 이용하여 약 3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이용자들에게 유포 혹은 판매한 사건"이다. 문장만 보아도 이 사건이 심히 악덕함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주동자에 대한 매우 강경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범죄가 악덕하지만 모든 악덕이 범죄는 아니다. 예컨대, 살인 범죄가 악덕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그러나 친구와 약속하고 어기는 행위는 악덕할 수는 있어도 범죄라고 보기는 어렵다. 도덕적으로 그릇된 악덕과 법적인 처벌을 필요로 하는 범죄의 구별은, 오스트리아학파 정치철학의 사실상의 창시자 머레이 N.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가 매우 강조해온 사안이다.
선요약하자면, n번방 사건은 매우 심각한 중범죄와, 안타깝게도 범죄라고 볼 수 없는 요소들이 뒤섞여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필자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n번방 사건의 주동자들은 세 가지 유형의 행위를 하였다. 첫째, SNS에서 자신의 알몸 사진을 올리던 여성들의 계정을 해킹하여 신상정보를 파악한 후, 그것을 유포한다고 협박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음란 영상물을 받아냈다. 두번째, 성매매 여성 혹은 성매매를 원하는 여성에게 접근하여 신상정보를 파악한 후, 그것을 빌미로 협박하며 음란 영상물을 받아내다가, 여성이 거부할 경우 강간 협박 혹은 살해 협박을 하며 계속 음란물을 촬영할 것을 강제했다. 세번째, 상기한 방법으로 여성을 유인한 후, 모텔 등에 감금하고 집단으로 강간하였다. (이 세가지 유형이 조금씩 섞인 사례도 있을 수 있다.)
여기서 두번째 사례와 세번째 사례는 결정적으로 물리적 협박을 하였거나 폭력을 행했으므로 매우 심각한 중범죄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경미한 첫번째 사례, 즉 물리적 협박 혹은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갈취의 경우는 어떠한가?
사건의 시작부터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해킹은 범죄인가? 오스트리아학파 법학자이자 지적재산권 변호사 스테판 킨젤라(Stephan Kinsella)의 해석에 따르면, 두 가지 유형의 해킹이 있다. 첫번째 경우는 데이터를 제거하거나 치명적 바이러스를 심어 기기를 못쓰게 만드는 해킹이다. 두번째 경우는 데이터를 그저 염탐하거나 복제하는 해킹이다. 첫번째 해킹은 물리적 파괴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재산권 침해이다. 그러나 킨젤라는 두번째 해킹은 범죄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유지 무단 침범과 달리 인터넷상의 무단 접속은 언제나 물리적인 피해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닌데, 만약 무단으로 접속한 후 데이터를 제거하지 않고 복사만 한다면, 여기서 발생하는 어떤 물리적 파괴도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비스 제공사의 서버에는 여전히 이전과 정확하게 같은 데이터가 남아있다. 그리고 그것과 정확하게 같은 새로운 데이터가 해킹범의 하드디스크에 추가되었다. 새로운 것이 생겨났을 뿐, 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여기서 발생할 수 있는 유일한 범죄는, 서비스 제공사가 만약 계정의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할 것이라 보증했을 경우, 그 보증이 허구임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사기행각을 저지른 경우 밖에 없다. 서비스 제공사는 자신들의 데이터에 대한 독점적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 데이터는 일종의 '자유재(free goods)’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의 이전 칼럼인 '저작권은 권리가 아니다, https://cfe.org/20191205_22131’를 참고하라. 이 글 역시 부족한 점이 많지만 관련 주제에 대한 필자의 논지를 보다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n번방 주동자가 SNS 상에서 자신의 알몸사진을 업로드하던 여성들의 계정을 해킹하여 신상정보를 파악한 것 자체는 범죄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신상정보를 가지고 여성들을 협박하여 자신이 원하는 목적을 성취하고자 한 것은 범죄인가?
라스바드와 월터 블락(Walter Block)에 따르면, '협박(threat)’과 '공갈(blackmail)’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물리적인 위협이다. 즉, A가 B에게 “내일 오전 9시까지 나에게 1억원을 주지 않으면, 널 죽일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을 통보하는 것이므로 협박에 해당하며, 상대방을 침해하는 범죄행위이다. 요구조건을 따르지 않는다면 실제로 죽임을 당하거나, 강간당하거나, 폭행당하리라는 점이 개연성있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반면, A가 B에게 “내일 오전 9시까지 나에게 1억원을 주지 않으면, 네가 1주일 전에 동성애자 클럽에 갔다는 것을 폭로할거야” 라고 말하는 것은 물리적인 폭력을 예고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그의 사회적 평판을 훼손한다고 예고하는 것이다. 이 역시 상대방에 대한 침해인가? 라스바드는 아니라고 답한다. 지적재산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평판 혹은 지식은 소유될 수 없는 자유재이다. 무언가에 대한 평판 혹은 지식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다. 이를 물리적으로 통제하거나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생각은 무한정으로 복제가 가능하다. 누군가 독점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 혹은 누군가 혼자만 알고 있던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은 어떤 재산상의 피해 혹은 침해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늘날의 형법에서는 협박과 공갈의 구별이 명확하진 않지만, 라스바드의 정치철학에서는 매우 철저하게 구별된다. (라스바드는 이를 자신의 명저 '인간, 경제, 국가’와 '자유의 윤리’에서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하이에크는 라스바드와 정 반대의 견해를 가졌다. 즉 사회적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라스바드는 하이에크의 이런 측면을 '자유의 윤리’에서 매우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단순히 악덕할 뿐인’ 해킹을 통하여 수집한 정보를 볼모로 '공갈’하는 것은, 어떠한 물리적 협박 혹은 위협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서는 범죄로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악덕함과 별개로, 안타깝게도 법적인 처벌 역시 이루어지기 어렵다.
물론 라스바드, 킨젤라, 그리고 블락의 해석(이들은 모두 자연법을 응용하여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한다.)이 틀렸을 수도 있다. 저명한 오스트리아학파 학자 로버트 머피(Robert Murphy)는 라스바드의 자연법 이론에 매우 공감하면서도, 한 두명의 학자가 모든 개별 사례에 자연법의 응용을 도출하기는 어려우며, 자연법에 입각한 법 이론은 필연적으로 하이에크가 말하는 '발견 과정(discovery process)’을 거쳐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즉 공갈 혹은 해킹 등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에 자연법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는 즉각적으로 도출할 만한 사안이 아니고, 매우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선 이 글에서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잠재적 정설이라 할 만한 라스바드의 견해에 계속 의존하여 논의를 진행해보자.
물리적 협박이 수반한 2번 사례와, 실제 강간이 이루어진 3번 사례와 달리, 단순 공갈에만 의존하여 음란물을 갈취한 1번 사례는 범죄라 보기 어렵다고 결론내렸다. 그렇다면, 만약 오스트리아학파 법 이론이 지배하는 자유사회에서는, 1번 사례와 같이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공갈로 이득을 취하는 '범죄자는 아니지만 악덕한’ 부류의 인간군상을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실제로 많은 반자유주의자들이 이러한 이유로 자유주의에 반대하곤 한다. 비슷한 사례로는 “사회복지가 없는 자유사회는 최저수준의 빈곤층은 굶어 죽게 되는 끔찍한 사회일 것이다.” 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절반만 보고 나머지 절반은 간과하는, 국가주의적 오류이다. (존재하지 않지 않는) 지적재산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자들에 대해 자유사회가 법적으로 보복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사회가 스토커와 공갈법들에게 매우 친화적인 인외마경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프라이버시 침해와 같이 '범죄는 아니지만 당하면 불쾌한’ 사안들의 경우, (물론 개인정보를 도용하여 사기를 치거나 대출을 하는 경우 등은 분명한 범죄이다. 여기서 말하는 프라이버시 침해는 개인 신상 및 일상 침해 등을 의미한다.) 분명 자유사회에서도 상식적인 인식이 매우 좋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프라이버시 침해를 일삼는 사람의 사회적 평판은 굉장히 안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프라이버시 침해자를 존중하지 않고, 각종 불이익을 주는 사회적 관습이 생겨날 가능성이 다분하다. 예컨대, 특정 공동체 혹은 토지 소유주, 주택 소유주은 어떤 부류의 사람이 자신들 소유의 마을, 거리, 주택 등에서 거주할 수 없거나 출입할 수 없다고 선포할 수 있다. 그러한 행위는 그들의 적법한 권리행사이다. 그들은 흑인 혹은 동성애자의 출입을 금할 수 있으며, 자유주의자를 고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권리행사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그들에게 있기에, 그들이 원한다면 그들은 상대방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만약 자유사회에서 이번 n번방 사건 주모자가 발각된다면, (물리적 협박 혹은 강간을 수반한 2번, 3번 사례가 아니라 1번 사례만 저질렀다는 전제하에서) 그가 민간검찰에 기소되거나 민간법원에 세워질 가능성은 현저히 적다. 자연법을 위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유사회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가능성 역시 대단히 적다. 오히려 그의 삶은 오늘날의 사회에서 보다 더 고단해질수도 있다. 국가가 지배하는 사회와 달리, 자유사회에서 그의 삶은 누구도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피해자에게 했던 것 처럼, 그의 신상정보가 온 사회에 만연하게 알려져 모든 사람이 그를 거부할 것이다. 그는 물건을 구입할 수 없을 것이고, 주택을 임대할 수도 없을 것이고, 취직은 당연히 할 수 없을 것이며, 아예 길거리를 걷는 것도 허가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는 매우 높은 확률로 무인도 혹은 산골자기로 피신해 홀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죽어야 할지도 모른다. 관습법에 대한 이해가 지금과 매우 다른 사회의 경우, 극단적으로 추측해본다면 그가 설령 폭행당하거나 살해당한다고 해도 민간경찰, 검찰, 법원이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잠정적으로 유예할지도 모른다. (이는 매우 극단적인 추측이다.)
실제로 자유사회가 도래한 적이 역사상 단 한번도 없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추측이지만, 사실 이는 시장경제의 작동원리와 유사한 논리를 사회문화적 측면에도 조금이나마 적용해본 것이다. 프라이버시 침해자 혹은 공갈범에 대한 사회적 수요는 전무에 가깝다. 그러한 인간부류의 공급은 오히려 피해를 끼친다. 수요가 없는 공급은 지탱될 수 없다. 공급을 아예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공급된 이후에는 (어떻게 본다면) 현행 제도하에서 보다 더 강경한 보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가 바로 시장경제원리가 지배하고 국가가 부재한 자유사회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대표적인 사회철학자 한스-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는, 국가가 행하는 강제력 행사를 통한 사회악 청산이 아니라, 상기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사회적 자정효과'를 '물리적 제거(physical removal)’라고 명명하였다.
자유사회의 논리적 근거와 작동원리를 명백하게 밝히고 있는 명저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에서, 호페는 공산주의자들이 자유사회에서 물리적으로 제거당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호페가 우리에게 몽둥이를 들고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자고 선동한 것은 아니다. 그는 “1. 사회제도와 문화를 개선하여 공산주의자에게 불이익이 가는 관습을 형성하고, 2. 공산주의자가 주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어 그들의 문화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조치하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자정작용을 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공산주의자는 자유사회에 '물리적으로’ 발을 내딛지 못할 것이다. 같은 논리가 n번방 주동자를 비롯한 '범죄는 아니지만 악덕한’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1. 물리적 협박과 침해가 수반되지 않고, 프라이버시 침해와 그것을 이용한 공갈은 범죄로 성립하기 어렵다. 2. 그리하여, 자유사회에서 그러한 부류의 악덕함이 법적으로 처벌되지는 않을 것이다. 3. 그러나, 시장경제의 원리와 매우 유사한 사회적 자정작용이 행해져 그러한 악덕을 '자생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이다.” 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가 사람들에게 설득력있느냐는 매우 별개의 문제이다. 이성적으로 옳은 경우에도 감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거부하는 문제를 보인다. 논리적 참을 사람들이 인정하게끔 수사법을 개선하고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은 추후에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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