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산업화의 진전으로 영국의 애덤 스미스와 프랑스의 장바티스트 세가 대표하는 고전 경제학은 완전무결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1825년 신용이 크게 팽창한 이후, 시장은 붕괴되었고 국민들은 산업화와 자유무역이라는 새로운 경제체제가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업적 위기”에 관심을 갖은 사상가들 중에는 스미스와 세의 추종자인 Simonde de Sismondi가 있었다. 그는 당시 지배적인 경제 논리였던 자유방임주의에 대해 비판했다. 고전 이론의 두가지 개념인 '이기심’과 '자유로운 경쟁’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산업화가 프롤레타리아와 자본가라는 새로운 경제계층을 창출했다고 주장했으며, 이 두 계급은 각각 높은 인건비와 낮은 재화 가격을 주장하며 갈등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비록 사유재산의 폐지를 요구하는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국가개입을 요구하며 경쟁을 억제, 노동을 규제할 것을 요구했다. 더하여 최초의 근대적 노동법안을 도입했다.
앙리 드 생시몽은 사회주의의 아버지이며 생시몽의 추종자들은 최초의 공식적인 사회주의 교리를 만들었다. Sismondi와는 달리, 생시몽은 산업화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산업화의 확대로인해 사회에서 노동자와 게으름뱅이만 남았다고 보았으며 게으름뱅이란 봉건시대의 지주였다. 생시몽주의자들은 생시몽이 언급한 봉건적 지주들을 자본의 소유주들로 확대, 치환하였고, 자본가가 노동자의 노동으로 먹고 산다는 착취이론을 만들며 사유재산에 대해 비판했다. 더하여 사적 상속을 통해 사적 소유권을 폐지할 것까지 요구했다.
칼 마르크스가 부여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자들’이라는 꼬리표를 가진 다른 초기 사회주의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대표적으로 로버트 오언과 샤를 푸리에가 있다. 먼저 오언은 영국 사업가였고, 땅을 매입하여 공산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협력 공동체를 설립하였다. 자신의 공동체를 “병렬도”라고 부르며 노동화폐(1832년 오언이 만든 단위로, 1시간의 노력을 표준으로 함)를 통한 공정한 노동 교환을 꿈꿨다. 푸리에는 “팔란스테레”라는 공동 공간을 생각했다. 오언과는 달리, 모든 구성원이 일에 동등하게 기여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이를 통해 계급 갈등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이들의 유토피아 공동체는 실패했지만, 다음 두 가지 중요한 생각을 후대에 남겼다. 먼저는 인간성에 대한 사회적 결정론이다. 올바른 사회적 환경을 조성한다면 개인의 본성이 가진 부정적 요소들이 사라진다는 주장이었다. 다음으로 오언과 푸리에는 개인의 이해관계가 자연스럽게 집단에게 종속될 것이라고 믿었다. 완전한 사회주의 집단화의 공식적 표현을 제공한 셈이다.
생명 유지에 관한 사회주의 – 1848년 혁명과 인센티브 문제
루이 블랑은 Sismondi에게 큰 영향을 받은 프랑스 학자이다. 그는 경쟁은 파괴적이라고생각하며 국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언, 푸리에와 함께 사회적 결정론을 공유하하지만, 이들과는 결정적 차이점을 가진다. 블랑은 사회공동체 내 노동자들이 산업별로 연계된 “사회적 공장”을 주창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동시에, 피에르 프루동은 '재산은 도둑질이다’라는 문구를 대중화한 프랑스에서 영향력이 큰 사회주의자였다. 상호주의로 알려진 그의 제도는 재산의 폐지가 아닌 소유주에게 부여된 재산의 특권을 폐지하길 원했다. 여러 이론의 전개에도 불구하고, 후기 사회주의자들에게 그의 영향력은 미미했고, 오히려 아나키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848년 프랑스 혁명은 블랑과 프루동 모두에게 그들의 사상을 실천할 기회를 제공했다. 블랑은 정부가 국민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업 노동자들을 파리로 초청했다. 하지만 과도한 참가자로 인해 그의 계획은 사실상 실업 복지로 바뀌었고, 정부는 한가한 노동자들에게도 적당한 급여를 제공하며 이러한 잉여금은 정치적 선동에 이용되기도 했다.
프루동은 혁명을 이용해 '교환은행’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했다. 이는 기존 상품의 지원을 받아 무제한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는 은행이었다. 그러나 그의 은행은 현실에 결코 존재할 수 없었고, 1848년 프랑스 혁명은 사회주의의 신임을 철저히 떨어뜨렸다. 대부분 프랑스의 산물이던 사회주의는 점차 쇠퇴해갔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1848년 홍보물을 발간하면서 사회주의를 소생시키고 역사상 가장 완전한 이론적 틀을 제공하려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이다.
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입니다.
Chris Calton, The First Socialists: The Saint-Simonians and the Utopians , 13 July, 2020
출처: https://mises.org/wire/first-socialists-saint-simonians-and-utopians
번역: 오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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