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임*
Ryan McMaken,
Why Bad Economics Makes Such Good Politics
2 NOV, 2018
선거철이 다가옴에 따라 정치인들은 그 동안 유권자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지, 혹은 당선된다면 그들이 유권자들을 위해 어떤 좋은 일들 할 것인지 점점 더 언급할 것이다.
물론 정치인들은 모든 유권자를 대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투표권을 가진 인구 중 해당 정치인이 발의하거나 지지하는 법, 세금, 규제, 지출 프로그램으로부터 이익을 보는 개인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말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유권자들을 위한 좋은 일들의 두 가지 예시는 관세와 최저임금법이다. 두 가지 모두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비용을 부과하지만, 정부의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극히 소수의 사람에겐 이득이 된다.
최저임금법과 관세에 관련된 경제, 혹은 전반적인 조세 제도와 사업 규제들은 여기 페이지들에서 이미 여러 번 다루어졌다.
정치인들이 스스로 칭찬받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이런 정책들이 사실 잠재적으로 특정한 이익집단들에만 이득이 된다고 지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정책들은 정치적으로 인기를 끌게 될 수 있고 정치인이 당선되는 것을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소수에게만 이득이 되고 이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에게 오히려 비용을 부과하는 정책들이 정치적으로 인기를 끌게 되는가?
Henry Hazlitt가 지속해서 인기 있는 그의 저서 “Economics in One Lesson”을 쓰게 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문제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이다.
가장 첫 번째 장에서 Hazlitt는 사람들은 자신 개인만의 경제적인 이익에 부합하는 잘못된 형태의 경제학을 믿게 되기 때문에 경제학은 많은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였다. 혹은 Hazlitt가 말한 것처럼 경제학의 오류들은 “사리사욕들의 특별한 요구들로 인해 천 배로 증가한다. “
때때로 올바른 경제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이런 시도들은 극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실제로도 수십 년 동안 많은 미국인이 “GM에게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라는 주장을 믿었었다.
Hazlitt가 계속 말하길: 각각의 집단들에게는 모든 집단 중에서 동일한 특정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들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뒤에서 볼 것처럼, 다른 집단 중에서 반대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들 또한 존재한다. 어떤 공공정책은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만, 또 다른 정책은 다른 모든 집단의 희생을 발판으로 한 집단에게만 이익이 될 수 있다. 이런 정책으로 이익을 얻는 집단은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고 그런 정책을 위해 지속해서 그럴듯하게 주장할 것이다. 그 집단은 최고의 지성인들을 고용해서 이 정책에 대해서 모든 시간을 쏟아가며 발표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일반 대중들에게 그 정책이 타당하다고 설득하거나 혹은 대중들을 교란하여 그 주제에 대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적절한 광고나 로비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을 원하는 대로 믿게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Ludwig von Mises 또한 이 문제에 대해서 그의 저서 ” Theory and History”에서 다루었는데, 공동선 (그가 common weal이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로 특정한 일부 집단의 선(혹은 이익)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ises가 말하길, 많은 (나쁜) 경제학자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집단에 이익이 되는 정책들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은 관세에 의존하거나 최저임금 액수를 정할 때 명확한 수치를 목표로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정책들이 그들의 지지자들이 원하는 수치에 이르렀을 때 그 정책들을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Mises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이 정말로 해야 하는 일은 다른 것이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경제학은 단 두 가지 측면만을 조사한다. 첫째는 관련 정책들이 해당 정책들을 추천하고 적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합한지의 여부이다. 둘째는 이러한 정책들이 정책들을 추천하고 적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원하지 않는 효과들을 가져올지의 여부이다.
정치인들이 최저임금제와 관세를 지지할 때, 그들은 보통 이런 정책들을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프레이밍 한다. (이것이 바로 “최소임금의 인상은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와 같은 표제가 흔한 이유이다.) 한편 Hazlitt와 Mises는 둘 다 건전한 경제학을 추구하는 만큼, 그들을 뒷받침하는 경험적 증거조차 사용하지 않는 이러한 정책들이 거의 모든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소수의 사람에게만 이익이 된다는 주장을 견지할 것이다. 더욱이 소수 집단이 누리는 이익은 단기적으로만 확대될 수 있고, 심지어 더 넓게 봤을 때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Hazlitt가 주장에 따르면, 정책을 바라볼 수 있는 모든 시각과 정책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결과를 고려하는 것이 경제학자의 일이며, 따라서 최저임금제와 관세가 어떻게 그리고 왜 그들의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지를 설명할 때 그들은 본인들의 소임을 다한 것이다.
단순하고 기본적인 경제 상식 수준의 반론에 직면할 때 최저임금 인상과 관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들이 원하는 지지를 얻지 못한다. 이에 맞서기 위해 그들은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경제적인 논쟁에서 질 때, 이런 정책들의 지지자들은 “글쎄요, 저는 논란이 되는 개입주의적인 정책을 펼칠 때 드는 비용을 지불할 용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이라고 하며 그 비용이 낮고 자신들의 개입주의적 입장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논쟁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경제학자 A가 운동가 B에게 관세는 상품들의 가격을 올리기 때문에 제품과 서비스들을 더 비싸게 만들어 그것들을 이용하는 기업가들과 생산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준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는 시장에서 구할 수 있는 물품들을 줄게 하여 소비자들의 선택폭의 폭을 축소시킬 뿐 더러 물가 인상을 야기한다. 운동가 B는 그럼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음, 관세가 물가를 올리겠지만 중국인들이 우리를 등쳐먹고 있기 때문에 그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 중국인들을 이기기 위해 물건에 몇 달러를 더 지불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다: 운동가 B가 “나는 그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말할 때, 그가 정말로 의미하는 것은 당신이 좋든 싫든 간에 당신으로 하여금 관세의 영향을 받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하게 만들 용의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중국인들을 이기려고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도, 그건 어쩔 수 없다. 관세가 당신 가족 소유의 작은 철제 펜스를 제작하는 회사의 이윤을 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당신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그들에게는 전혀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책 채택되기 위해 드는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기 때문에 당신 또한 그러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덕적이든 경제적이든 그들 자신의 이익이 다른 사람들 모두의 이익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는 국가의 정치 권력이 오직 소수의 변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경제 정책을 강요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믿음과 다름없다. 이는 옛날의 중상주의와 마찬가지이다. 많은 훌륭한 경제학자들은 상당수의 투표자가 자신들이 200년 전에 완전히 부정했다고 생각한 중상주의에 의하여 계속 속고 있다는 사실에 지속해서 실망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를 지표로써 본다면, 중상주의는 그 인기를 잃은 적이 없다.
번역: 이선민
출처: https://mises.org/wire/why-bad-economics-makes-such-good-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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