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선호하는 권리들”을 요구한다면, 그건 정말 권리를 주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특권을 요구하는 것일까?
“네가 주먹을 휘두를 권리는 딱 내 눈 앞까지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권리”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권리”가 내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것은 진짜 권리일까?
정치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극단적인 자유의지론자에 해당하는 나는 인간의 모든 권리를 지지한다 –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내게 당신의 일을 강요하거나 내가 일을 하는데 방해만 하지 말라.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권리”란 대체 무엇일까? 이는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심오한 철학적 문제이다.
자연권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철학적 문제들은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지만, 우선 몇 가지 개념들을 명확히 밝히고 시작해야겠다.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가 있다. 이 권리들을 “자연권” 혹은 “자연법”이라고 부르는데, 이성과 논리로 추론된 것이다. 말하자면, 태어났을 때 생명을 가진 한 개인으로서 갖게 되는 권리이다. 만약 당신이 살아있다면, 당신은 생명을 보존하고 더 나은 삶을 살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생명의 중요성이 뭐란 말인가?) 이런 권리는 누군가 당신에게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라는 생명체에 내재되어 있다. – 그 권리들은 그저 존재한다.
당신이 짐작할 수 있듯이, 자연권에는 많은 것들이 내포되어 있기에, 철학자들은 지난 2,500년 동안 이를 고심하고 논쟁해 왔다. 그리스와 로마시대를 시작으로 여러 세기를 거쳐 아퀴나스, 살라만카(역자 주: 대학으로 유명한 스페인 지역), 홉스, 로크 등.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1632-1704)는 자연권을 이렇게 정의했다.
생명 : 모든 사람은 생명의 권리가 있다.
자유 : 모든 사람은, 다른 이의 생명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권리가 있다.
재산 : 모든 사람은, 다른 이의 생명권과 자유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재능 혹은 교역을 통해 창출하거나 얻은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
미국은 이런 철학적 개념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자연권 및 자연법의 사상(思想)과 이상(理想)은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토마스 페인(Thomas Paine) 등이 기초한 독립 선언문과 미국 헌법에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독립선언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박탈이 불가능한 권리를 창조주로부터 부여 받았으며, 그 권리에는 생명, 자유, 행복추구권이 있음이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로크의 생각을 그대로 가져왔다. (“행복”은 개인 행복의 근원으로서 “재산”을 포함한 더 일반적인 단어였다.)
그들은 이러한 사상을 헌법에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와 경험을 통해 정부가 개인의 권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임을 알았던 그들은, 정부가 국민에게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명확하게 설명하였다. 개인의 (자연)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의 제약을 좀 더 상세히 보강한 권리장전을 헌법에 채택하였다.
특권은 권리가 아니다
최근에 수많은 대의명분을 내세운 권리를 주장하는 시위들이 수없이 벌어지고 있다. 시민의 권리, 여성의 권리, 노동권, 세입자의 권리, 투표권, 장애인의 권리, 낙태의 권리, 성적 소수자의 권리, 이민자의 권리, 총기 자유의 권리, 복지권, 최저임금 권리, 대학 무상교육의 권리 등. . . 이제 당신은 무슨 말인지 감지했을 것이다.
이런 “권리들” (다시 말하자면, 특정한 요구들) 중에 다수는 권리가 아니다. 그저 다른 이들의 권리를 약화시키거나 정부나 납세자로부터 이익을 가로채는 정치적 운동에 불과하다.
당신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시민권을 위한 운동을 옹호하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미국의 흑인들은 인종차별법과 싸우기 위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자연권을 추구했다. “Jim Crow(역자 주: 과거 미국의 흑인 차별 정책)”와 “분리 평등 정책(separate but equal)”은 미국 흑인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정부의 법이었다. 또한 투표권, 여성 참정권, 다른 인종간의 출생법, 소도미 법(역자 주: 개인의 성적 취향 중 일부를 범죄로 취급)과 같이 몇 가지 예만 들자면, 그 자체만으로 자연권이자 요구였던 시민권 운동들이 있었다. 나는 지금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세입자의 권리나 최저 생활 임금 권리와 같이 진보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경제적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들이 선을 넘다
사회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이 “세입자의 권리”이다. 이 “권리”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거주 지역들에 살면서 정부가 그들을 위해 시장원리에 압박을 가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이다. 집주인이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월세를 낮추길 원한다. 집주인이 월세를 제대로 못 내거나 집을 험하게 쓰는 세입자를 내보낼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고 싶어한다. 세입자들이 학대라는 이름으로 집주인을 고소할 수 있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집주인이 그들의 재산에 대해 갖고 있는 권리를 빼앗으려 한다.
세입자 “권리”의 아이러니는 가난한 사람들이 빌릴 수 있는 집의 수가 줄고 월세가 높아져 결국에는 문제가 악화되는 데 있다. 분쟁이 많은 월세가 높은 지역의 주택의 수는 한정되어 있는데 살고 싶은 사람들은 많다. 집주인이 세입자를 선택할 수 있다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세입자 대신 가난한 세입자를 선택할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집을 얻지 못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사회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또 선호하는 것은 바로 “최저 생활 임금”에 대한 “권리”이다 – 또 다른 잘못된 권리다. 최저 생계비를 열정적으로 외치는 사람들의 문제는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선동의 껍질을 벗기고 보면, 그저 정부가 강제적으로 부를 재분배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업가들이 임금을 결정하지 않는다. 소비자인 우리가 사고자 하는 상품이나 받고자 하는 서비스에 얼마를 지불할 것인지 결정함으로 임금이 정해진다. 만약 법으로 사업가들에게 노동력의 한계 이익보다 많은 임금을 지불하라고 강요한다면, 그 사업은 경쟁력이 약화되고, 이익이 줄어들며,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을 줄일 수 밖에 없다. 비용을 줄이려면 고용을 줄이게 된다. 이것이 현실과 유리된 경제 정책의 의도치 않은 부정적 결과의 예이다.
이러한 진보주의자들의 목표는, 의도를 결과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자명한 이치를 잘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이러한 “권리들”은 개인으로서 우리 자신의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기본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와 당신의 권리를 침해하기 때문에 자연권의 기본 원리에 위배된다.
나는 진보주의자들과 이런 문제들을 토론할 때면, 왜 그들은 사회정책을 시행하는 방법으로 폭력과 강압을 선호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 문제를 실행하려면 결국 정부는 총을 들이대며 압박할 수 밖에 없다. 수백만의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바닥에서부터 선택하는 대신, 상부에 있는 오류를 범하기 쉬운 소수가 강압적인 정책을 상명하달식으로 통제하는 것을 선호할 이유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상명하달식의 정권이 어떠했는지 생각해본다면 매우 유의미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자연권과 자연법은 운 좋게도 (대부분) 서구 사회에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의 부와 행복을 극적으로 끌어올린 가장 주요한 원동력의 하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자연권을 묵살한다. 당신이 삶에 대해서 이성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적 권력을 얻으려는 자신들의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예부터 존중되어온 당신의 권리를 희생하려 할 것이다.
본 내용은 https://fee.org/articles/lets-think-clearly-about-rights/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번역 : 전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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