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美) 대선 이후부터 “가짜 뉴스”라 일컫는 말이 뉴스에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보통 거짓 뉴스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 고의적인 왜곡과 뉴스의 와전된 보고에 언론이 동참하는 것으로 함축 할 수 있다. 그냥 평범한 미디어가 아닌, 흔히 “주류 언론”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미디어가 “가짜 뉴스”를 전달한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다.
최근, 나는 미디어에 관한 모든 견해를 달리할 수 있는 평론을 읽었다. 모든 언론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 평론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짧은 60여 페이지는 주류 언론이 확실히 편향적인지 말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왜 이것이 사실인지 설명해준다. 가장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편향은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잠재의식적인 차원에 존재하고 미디어가 하는 모든 것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특정 매스컴이 좌로나 우로 기울어졌냐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 로빈 코어너(Robin Koerner)는 캠브릿지 대학에서 받은 과학론과 물리학 석사를 소지하고 있다. 이에 관한 정보는 그의 책 If You Can Keep It: Why We Nearly Lost It & How We Get It Back 첫 번째 챕터 미디오그래피(Mediography)에 있다.
우리 모두에게 내재 되어 있는 편견
그가 말한 요점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의 예시로 시작하는 것이다. 2006년 11월 드러지 보고(미국의 인터넷 신문)의 헤드라인이다 : “이란은 이스라엘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이것은 사실에 입각한 헤드라인이다. 이것은 고의적으로 편향되지 않았다. 하지만, 코어너는 이것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코어너가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거짓 뉴스로 간주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이란)과 아랍 세계 사이에는 끓는 반감이 있다고 코어너는 설명한다. 페르시아인들과 아랍 사람들은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다. 1980년경에 이란과 그리고 주변 이웃의 아랍 국가인 이라크는 9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다면, 이 헤드라인은 이란의 무기 실험은 이스라엘을 향한 도발 또는 위협으로 나타난다. 좀 더 뉘앙스가 있고 덜 선동적인 헤드라인은 “이란은 사정거리 1500마일의 미사일을 발사했다”라고 말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래 쓰인 헤드라인의 수많은 암묵적 암시를 배제한 이것 또한 사실에 입각한 헤드라인이다.
코어너가 설명한 것처럼, 미디어와 언론의 소비자는 둘 다 해당 정보 문맥 내의 특정 패러다임을 퍼트리고 또한 흡수한다. 패러다임은 시대•분야에서의 특징적인 사고방식•인식의 틀이다. 그렇기 때문에 패러다임은 개인의 편견과 관점을 포함한다.
이런 개념은 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의 혁명적인 책 과학 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 의해 도입되었다. 이것은 스티븐 코비(Stephen Covey)의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The 7 Habits of Highly Successful People) 을 통해 대중화 되었다. 코비는 인식 체계[패러다임]의 대전환- 같은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것에 대해 상술하였다. 가끔 이것은 우리의 눈을 깜빡거리는 것과 같이 심플할 수도 있다.
밑 그림을 참고하라:
이것은 젊은 여성의 사진인가 아니면 노파의 사진인가? 당신이 처음에 무얼 보았든, 눈을 깜빡거리거나 당신의 포커스를 조금만 움직인다면, 대단히 놀랍게도, 이 사진은 당신의 눈 앞에서 바뀔 것이다. 당신이 노파를 본다면, 그녀의 오른쪽 눈을 귀로 보고, 오른쪽 끝의 코를 턱으로 보고 그녀의 입을 목걸이로 봐라. 그리고 역(逆)도 또한 같다.
코어너는 사람들은, 뉴스 제작자와 뉴스 소비자 둘 다, 하나의 특정한 세계관과 특정한 패러다임으로 인해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드러지 보고의 기자 작가는 중동을 주로 이스라엘과 그리고 그 주변국의 충돌만으로 보는 특정한 패러다임에 갇힌 체 기사제목을 지었다. 이것은 페르시아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의 오래된 갈등을 감지하지 못하였거나 무지하였던 세계관이다.
인생은 복잡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코어너는 좀 더 복잡한 이야기일수록,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의해 쉽게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한다. 이야기가 평범할수록, 이에 대한 우리의 통찰력은 더 정확하다. 그는 나무에 매달린 한 고양이의 이야기를 예로 든다. 그 누구도 이 이야기에 상관하지 않는다. 고양이 이야기는 정치적인 함축이 없기 때문에 뉴스 보고와 우리의 통찰력 둘 다 다소 정확하다. 하지만 이란의 미사일 테스트와 같은 정치적인 이야기는 “풍부한 문맥 안에서 뉴스 제작자나 뉴스 소비자가 다른 의견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
대부분의 뉴스 미디어들은 그리고 대부분의 뉴스 소비자들은, 코어너가 언급한 것처럼, 같은 패러다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자유민주주의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의 정치적 견해가 무엇이든, 특정한 가치관을 공유한다. 의견 대립은 좀 더 관심을 받지만, 그들은 동의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이 한다. 하지만 문화의 공통 견해와 표준과 같은 패러다임의 기본적인 것들은 함께 공유되어왔다.
정치적 의견 충돌은 일반적으로 해석에 초점을 맞춘다. 서구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은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 열심히 노력하는 것의 가치, 일의 의욕과 열심히 노력하면 주어지는 보상의 믿음, 폭력 근절과 협상이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 이런 자유에 관한 믿음을 공유한다.
뉴스 리포터와 제작자로 고용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세계관을 공유한다. 그리고 특정 부분의 견해가 다르다면 이것은 정치적 대립의 본질이 된다.
뉴스를 보도하는 것은 예술이다
이것이 이상한 생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뉴스 보도는, 어느 정도까지, 예술이라 생각한다. 내가 텔레비전 뉴스에서 일했을 때 우리는 단지 뉴스 아이템을 리포트라 표현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들을 이야기라고 불렀다. 사실, 우리는 뉴스 기사를 뉴스보도보다 더 많이 얘기한다. 어떻게 이야기가 준비되고 있지? 이야기 준비는 다 됐나? 이야기 준비를 끝내는데 더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가? 기타 등등.
아인 랜드(Ayn Rand)는 “예술은 예술가들의 형이상적인 가치 판단에 따른 현실의 선택적인 개조”라고 썼다. 코어너는 이야기가 더 복잡할수록, 이야기에 관련 있는 모든 뉘앙스, 모든 양상을 되살리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상황이 라이브로 보도 되지 않는 이상, 기자와 편집장은 스토리 속에 들어갈 요소들을 선택 해야만 한다. 텔레비전 뉴스 편집장으로서 나는 제공된 테이프들을 검토했고, 내가 생각하기에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시각적인 요소들과 함께 가장 관련 있고 간단명료하고 적절한 인터뷰를 선택하였다. 짧고 명확한 인터뷰는 길고 두서없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스토리에 포함되는 요소들을 선택할 때는, 텔레비전 뉴스 편집자는 필요상 많은 것들을 무조건 빼놓아야 한다. 뉴스는 편집자와 보도자의 가치 판단에 따라 선택된 한 사건의 개조물이다. 이것은 스토리가 어떻게 제공되는지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패러다임을 사건에 적용시키는 시청자들이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대단한 영향을 준다. 코어너는 시각 보조 수단을 가지고 이것을 훌륭히 설명한다. 천 마디 말보다 한 번 보는 게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가. 아래 그림을 참고해보라.
뉴스 보도자들과 그의 편집자들은 기사의 모든 요점을 포함시킨다고 믿는 복잡한 이야기의 특정한 사실들을 선택하였다.
이제, 두 명의 다른 시청자는 자신들의 인식에 따라 이 사실들은 다르게 이해할 것이다. 좌파나 우파의 관점 말고, 한 명의 시청자가 동그란 패러다임을 선호하고 다른 이는 오각형 패러다임을 선호한다고 얘기해보자. 그들은 뉴스에 보도된 사실들을 밑에 보인 것처럼 본다.
그들은 사건에서 제공된 똑같은 사실들을 관찰하였다는 것을 주목하라. 하지만 그들의 패러다임은 그 사실들을 다르게 이해시키고 있다.
코어너는 이렇게 말한다 “그 상황을 동그라미로 해석하는 사람과 오각형으로 해석하는 사람 사이의 모든 주장은 뉴스 소비자의 사이에 있는 패러다임 간의 주장이다. 오각형도 아니고 동그라미도 아닌 이것은 현실에 관한 주장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독자나 시청자가 그의 뉴스 해석을 시험 할 수 있나?
사실과 진리는 같은 것이 아니다.
코어너의 배경 지식은 과학론에 있다, 그래서 그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과학적 지식에 접근한다. 첫째로, 그는 “과학자들은 그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었다면 대담하게 주장한다. 그 발언자는 과학자가 아닐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근본적으로 불가지론자들이다.”
“과학의 길은 진리를 향한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모든 길이 그렇듯, 이 길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에만 그 목적지를 향해 갈 수 있다. 가는 길의 모든 걸음은 진리에 가장 가까워진다.
과학에서는,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사실은 “전에 알려진 사실들이 틀렸다고 발견되어지지 않았더라도, 새로운 데이터의 전면적 지지로 근본적인 이론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하나의 예로, 뉴스 소식에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된 데이터 보고를 숙고해보아라.
기존에 알려진 이야기의 모든 사실들은 참이다, 하지만 이 대안이 될 만한 이야기는 모든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하나의 추가적인 사실을 포함한다. 이것은 동그라미든 오각형이든 될 수 없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일까? 본래의 이야기 그리고 그 대안의 이야기가 기반을 둔 사실들이 여기에 있다.
아하! 이것이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새로운 데이터는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뉴스 소비자들은 어디를 가야 추가적인 데이터 요소들을 받을 수 있을까? 코어너는 패러다임을 드러내는 한 이야기를 말해준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대학에서 수강한 언어학 수업을 상기시켜주었다. 나의 교수님은 어떻게 다른 언어들이 특정 패러다임들에 맞추어 변화하였는지 알려주셨다. 한 예를 들면, 교수님은 이뉴잇족의 언어에는 눈을 가리키는 50가지의 다른 단어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셨다. 이뉴잇족에게는 눈이 너무나도 중요한 나머지 눈의 성질이나 상태를 나타내는 수많은 형용사들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젖은 눈, 마른 눈, 날리는 눈, 세찬 눈을 의미하는 단어들이 있다. 우리는 알아채지도 못하는 눈에 관한 뉘앙스가 있다.
중국어로 “should”는 “yinggai”인데 “yinggai”는 영어에는 해야 한다로 함축되어있는 도덕적 책무가 없다고 코어너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의 영향들은 강력하다.
중국의 문화와 언어는, “서양 개념인 자연 도덕법”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코어너는 말한다. 그가 중국어를 공부할 때 이 근본적인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는 서양과 중국의 문화 사이에 엄청난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서양 사람들은 그들의 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인권의식 부족을 보고 경탄하며 중국 문화에 대한 이 근본적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의 의미는, 당연히, 그들이 우리에게 이러한 부분에 있어 양보를 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도덕적으로 설득한 것 보단 그들이 우리에게 적응하고 우리와 화합하며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화합과 관계형성은 중국인들의 아주 강한 패러다임의 두 개념이지만, 이들은 기독교인들이 절대적 가치라 여기며 그들의 가치를 기반 하는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우리의 외교관들과 정치 지도자들이 이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중국과 그와 비슷한 국가들이 행하는 인권학대에 얘기를 꺼내는 것인지 궁금해 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을 선호한다.
미디어의 또 다른 문제는 미디어는 중도가 아닌 극단의 것을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코어너는 말한다. 불, 강도, 총기사건 같은 보통이 아닌 사건들 볼 때 이것은 명백하다. 우리가 텔레비전 뉴스를 볼 때, 우리는 불에 타지 않은 집이나 도둑질을 당하지 않은 멀정한 가게들의 이야기는 볼 수 없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을 선호한다. 또 다른 말로는, 가장 과격하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극단적인 상황들은 수많은 뉴스보도 속에서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이것은 통찰력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지고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와 피해망상을 주입시킨다.
정치적인 뉴스도 마찬가지이다. 쉽게 보이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라고 코어너는 말한다. “절제있는 목소리 (다툼과 싸움 가능성이 있는 상황 속에서의 평화의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하고, 극단적인 목소리는 모든 미디어 속에서 주목을 받는다.”
과격하고 가식적인 무늬는 다른 평범한 옷들보다 많이 팔린다. 이런 이유들로, 보도된 내용들은 중간 입장이 아닌 한 이슈의 지배적인 스펙트럼에 치닫는 견해에 의해 쓰이는 경우가 있고 갈등 상황에 대한 보고는 미묘한 입장을 취해 사실과 의견을 넘어 그 어느 입장도 지지하지 않는다.
미디어는 전문가들의 의견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들이 전에 했던 분석이 잘못됐다고 밝혀졌을지라도 미디어는 여전히 그들을 믿는다고 코어너는 지적한다. 또한 그는 이렇게 설명 한다 “미디어는 끔찍한 실적의 기록을 추적하고 확인하는 것에 최악이다.” 이런 현상에 관해 설명한 훌륭한 책은 댄 가드너의 (Dan Gardner) Future Babble: Why Expert Predictions Fail and Why We Believe Them Anyway.
그러면 우리는 뉴스 소비자로서 이런 과잉의 불안전하고, 허위적이고, 왜곡된 정보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다양성이 해결책이다
우리의 뉴스를 다양한 출처로부터 얻으라고 코어너는 권한다. 코어너가 추천하는 사이트는 watchingamerican.com과 같은 사이트가 있다. 이러한 사이트는 세계 각지의 뉴스 기사와 함께 외국 저널리스트들이 미국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Al Jazeeera와 같은 뉴스 사이트는 주요 언론이 가지고 있지 않는 중동문제에 관한 통찰력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다. 그리고 RT.COM은 러시아인들의 관점에서의 뉴스를 보여준다.
코어너는 또한 대안언론(기존의 주류 언론에 대항하는 비판적이고 규모가 작은 새로운 개념의 언론)을 권한다. “기득권층을 비호의적으로 보는 청중을 가진 언론매체는 주류 언론보다 더 유용하다”라고 코어너는 주장한다. 미디어는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우파 성향의 폭스뉴스는 부시 행정부 때에는 아첨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고 백악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때는 신랄하게 비평하는 뉴스가 되었다.
다양한 미디어는 특정한 패러다임에 의해 제작되고 뉴스 시청자들은 그들 자신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정보를 받아들인다. 뉴스를 정말로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노력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대안언론과 외국 언론들이 가지고 있는 시각을 생각해봐야 한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없애는 내용은 우리가 원하는 것들로 대신 채워 넣는다.
주류 언론을 규탄하고 비난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주류 언론은 그들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대변해주는 것일 뿐이다. 뉴스의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소비자들이 더 깊이 파고 들어야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결국 소비자에게 달렸다.
만약 우리가 패러다임을 통해 걸러진 뉴스를 원치 않고, 진짜 뉴스를 얻기 위해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이 귀찮다면, 우리는 주류 언론들이 우리들에게 떠먹여 주는 것들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본 내용은 https://fee.org/articles/is-fake-news-really-fake/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번역 : 김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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