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를 통해 이승만-자유당 정권이 붕괴된 이후, 1960년 6월 15일에 소집된 국회는 대통령 중심제를 내각제로 대체하기로 의결하였다. 대통령은 여전히 국가원수로서 존재하지만, 정치적 권력은 의회(민의원과 참의원)로 이전되었고, 의회를 통해 총리가 정부를 구성하는 구조였다. 이는 민주당이 한민당 시절부터 추구해왔던 영국식 민주주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실시된 1960년 7월 27일의 총선을 통해 상원 격인 참의원 58명과 하원 격인 민의원 233명이 선출되었다. 민의원 233명 중 과반인 117명이 민주당 소속이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4.19를 통한 민주당의 집권이 국내 정치에서 민주화의 시작이고, 국민 모두가 환영했던 사건이었다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친일정당 한민당에서 1955년에 당명만 바꾼 민주당 역시 자유당과 본질에서는 차이가 없고 오히려 자유당보다도 더 수구적인 집단이었다. 실제로 민주당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상황은 오히려 더욱 불안해져갔다. 의회의 과반을 차지했던 민주당은 8월 12일에 대통령으로 선출된 윤보선을 중심으로 하는 “구파”와 8월 19일 총리로 선출된 장면을 중심으로 하는 “신파”로 분열되어 부패정치인 청산에 이견을 드러내며 사사건건 대립하며 권력 다툼에만 몰두했다. 또한 반공과 친미라는 노선에서 민주당은 자유당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었으며, 경제문제나 민생문제 등 국정을 이끌어 가는 능력은 더 부족했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민주당은 이승만의 독재에 반대했던 또 하나의 수구 기득권세력일 뿐이었다.
민주당 정부시절 한국사회의 정치적 혼란은 주한 독일 대사 뷩거(Bünger)가 1961년 3월 9일에 본국에 보냈던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있다: “서울과 다른 대도시들에서는 지속적으로 데모가 발생하고 있다. ... 데모는 경찰에 의해 성공적으로 진압되고 있다. 민주당 정부는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미국이 요구하는 “환”화 가치 절하요구를 수용했다. 따라서 1달러에 500환이었던 환화의 가치가 1961년 1월 1일에 1,000환으로, 또 2월 1일에는 1,250환으로 환화의 가치가 하락했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는 급속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최근에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민주당 정부의 정치적, 외교적 무능에 대한 불만과 더불어 반미 구호까지 등장하기 시작했고, 신문들도 미국의 원조방식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 또한 한국인들은 부패청산이 미미한 점에 큰 불만을 갖고 있다. 이승만 정권에서의 기득권자들이 그들의 재산을 은닉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 또한 매일 부패 스캔들이 터지고 있으며, 공산주의 세력의 선전 선동에 사회적 동요와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 한국의 경제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으며, 장면은 혹시 발생할 수도 있는 민중봉기를 진압할 경찰력을 확보하고 있다. 모든 상황은 이승만 정부 당시로 회귀하는 양상이다. ...”
1960년 3월, 정치적 분열, 경제상황의 악화, 화폐가치의 지속적인 하향조정 그리고 증가하는 실업률 등으로 인하여 국민의 불만은 팽배했고, 민주당 정권은 이미 국정을 이끌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Poliitsches Archiv des Auswärtigen Amtes, Abteilung 4, Referat 417, Bünger 보고서, 1961년 3월 9일) 이렇듯 외부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당시 상황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매우 불안정했고, 언제든지 민중봉기가 다시 폭발할 수 있는 상태였다.
한국 국민의 불만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 정부는 미국의 환율조정 요구에도 매우 쉽게 굴복했고, 이승만 정부 당시 수립된 외교관계(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필리핀, 대만, 베트남, 터키, 바티칸)외에 전혀 외교관계 확대를 하지 못했으며. 외교적인 고립상태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했다. 이는 민주당 정권이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또한 민주당 정권이 1960년 10월 1일 발표했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위해 미국 이외의 국가로부터 차관을 얻으려는 시도도 모두 실패하였다. 이는 국제사회가 한국의 민주당 정권의 청렴성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미국만이 “환”화 가치의 절하를 조건으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필요한 4억 2천 1백만 달러의 원조를 약속했을 뿐이었다. 이로 인하여 민주당 정권의 미국 의존도는 더욱 증가했다.
민주당 정권으로는 부패한 한국정치와 파국으로 치닫는 경제상황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당시 한국에 주재했던 서방 외교관들의 공통된 인식이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정치와 경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부정과 부패가 만연되어 있고, 이를 민주당 정부가 스스로 극복할 능력이 없다고 인식했다. 특히 주한 독일대사 뷩거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청렴한 집단을 6.25 전쟁을 수행하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지켜낸 군부세력이라고 할 정도였다.(Poliitsches Archiv des Auswärtigen Amtes, Abteilung 4, Referat 417, Bünger 보고서, 1961년 3월 15일)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6월 9일에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한국의 군사혁명의 원인”이라는 보고서에서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한국 상황을 회의적으로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장면 정부의 무능과 정치, 언론의 부패 그리고 실업률과 광범위한 빈곤으로 인하여 공산화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따라서 쿠데타를 통한 새로운 정권의 출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The Causes of the Military Revolution in Korea, Seoul, June, 9. 1961)
무능과 부패에 대한 자정 능력이 없는 민주당 정권이 국민을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했던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빈곤과 혼란을 타개할 그 어떤 건전한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민주당 정권도 구파와 신파로 나눠진 당내 분열로 인하여 정부 정책에서도 혼선을 빚으면서, 스스로의 무능만 드러냈다. 그래서 “군사혁명”을 통한 군부세력의 등장은 어쩌면 필연적 결과였다. 이들이 박정희를 중심으로 했던 세력이었던, 아니면 다른 세력이었던 그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 만큼 한국 정치는 무능과 분열 그리고 부패에 빠져있었고, 건전한 집단이었던 군부세력은 절망에 빠졌던 당시의 한국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5.16 군사정변”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5.16 군사혁명” 또는 “5.16 군사 쿠데타”로 지칭되고 있고, 그 명칭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혁명”이란 것은 사회구성원 전체의지와 전체의 이익에 부합되어야 한다. 반면에 “쿠데타”는 소수의지와 소수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5.16 군사정변은 당시 한국사회의 혼란과 빈곤을 극복하고자 했던 국민 전체의지에 부합했고, 자유무역과 경제개발을 통해 한국의 산업화를 이루고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게 했다는 의미에서 전체의 이익에 부합했다. 따라서 “5.16 군사정변”은 “혁명”으로서의 의미가 충분했다. 다만 전체의지에 반하는 유신헌법(1972년 10월 17일 제정)을 통해 박정희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면서 박정희 스스로 “5.16 군사혁명”의 가치를 훼손시켰고, 박정희의 독재 체제는 대한민국의 건전한 민주주의 발전에 장애요인이 되었다.
권오중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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