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승계 문제는 기업가와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키는 요인 중의 하나다. 주요 기업들의 승계 과정을 보면 형제들끼리, 혹은 아버지와 자식들 간에 다툼이 발생하고 이에 대해 좋지 못한 여론이 형성되곤 한다. 하지만 LG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조용하고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로 기업의 경영권 상속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인화(人和)의 기업문화는 창업주 구인회로부터 시작해 그의 아들인 구자경 회장에서 꽃을 피운다.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의 전통 만들어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1969년 12월 31일 69세로 생을 마감했다. 주변에서는 창업주가 타계했으니 LG그룹 내부에서 삼촌, 조카, 창업의 여러 조력자들이 이해다툼을 벌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구인회의 첫째 동생인 구철회는 동생들과 조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나는 이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다. 내가 물러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너희들 각자가 허심탄회하게 생각하고 상의해서 앞으로 닥쳐올 일들을 헤쳐 나가도록 해라. 진심으로 믿고 당부한다.”라고 말하며 방을 나가버렸다. 그리하여 구자경은 주변의 우려를 무색하게 하며 창업세대들을 대신해 럭키금성 그룹의 제2대 회장이 되었다.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는 구자경 회장이 취임 당시 매출 260억 원이던 그룹을 30조 원 규모로 성장하게 하는 발판이 되었다.
구자경 회장은 선친이 갑작스럽게 타계해 경영권 승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던 점을 고려해 “70세가 되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실제 그는 70세가 되던 1995년 2월 은퇴를 선언하며 아들 구본무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준다. 이때 창업 2세대들도 경영에서 물러나 구자경 회장의 뜻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후 구자경 회장은 인재양성을 위해 충청도의 천안연암대학교에서 농업과 장학지원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이와 같이 3대에 걸쳐 분쟁 없는, 매끄러운 경영권 승계는 LG그룹이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룹 내에서 다툼이 없이 안정적으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한 것은 LG그룹의 혹독한 후계자 수업 덕분이다. 다른 기업들이 2세, 3세 자녀들을 입사 후 5~8년 내에 대표를 맡게 하는 것과 달리 LG가의 회장들은 기본적으로 10~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는 과정을 거친다.
구자경 회장은 취임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아버지 구인회 회장 밑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1950년까지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구자경은 '교직을 그만두고 내 일을 도우라’는 구인회 회장의 말에 럭키금성에서 근무를 시작한다. 새벽마다 상인들에게 물건을 나누어주고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숙직을 하는 일을 4년간 맡기도 했다.
오죽하면 주변에서 아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구인회는 “맏이란 일이 고된 법이다. 남들은 놀아도 맏이는 놀 새가 없다. 묽은 걸 알고, 된 걸 알아야 남을 다스려 나갈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구인회는 병석에서 아들에게 “너 나를 원망 많이 했제. 기업을 하는 데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바로 현장이다. 그래서 본사 근무 대신에 공장일을 모두 맡긴 게다. 그게 밑천이다. 자신 있게 기업을 키워 나가라”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구본무 회장 역시 1975년 입사해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총괄본부장 등을 거쳐 19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한다. 이후 금성사 일본 주재 상무, 럭키금성 전무, 부사장 등 그룹내 여러 현장을 두루 경험한 후 1995년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인화를 바탕으로 한 동업
LG가의 창업주 구인회는 “한 번 사귄 사람과 헤어지지 말고,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말을 즐겨 했다. 이러한 인화의 전통은 LG그룹이 지금까지 성장하며 큰 분쟁 없이 내외부의 위험을 극복해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LG그룹이 인화의 문화를 갖게 된 것은 동업이라는 특수한 배경 때문이었다. LG그룹의 창업에는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했다. 구인회로 시작된 6명의 형제들, 6남 4녀의 자녀들, 동업자인 허씨 일가, 그리고 구인회 회장을 초창기부터 도운 경영자들이 함께했다. “친구와 가장 빠르게 헤어지고 싶으면 동업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것이 동업인데, LG그룹은 동업의 형태를 유지하며, 양보하고 화합하고 협력하여 그룹이 무리 없이 성장시켜 왔다.
LG가의 인화의 정신은 2004년 LG와 GS가 분리되던 시점에도 빛을 발한다. 구본무 회장대에 오면서 많은 자손들로 인해 지분구조가 복잡해졌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계열분리를 하기로 했다. 구씨와 허씨, 두 가문은 창업 당시부터 보유한 지분율 비율인 65:35로 분사를 했다.
LG는 LG전선에 대한 경영권을 갖는 대신 LG그룹의 주력사업이었던 정유, 유통, 홈쇼핑 등 캐시카우 사업들을 모두 양보했다. 그리고 5년간 같은 업종에서 경쟁하지 말 것을 약속했다. 이렇게 구씨와 허씨 두 가문은 57년간의 동업을 마치고 어떠한 잡음도 없이 아름답게 이별한다. 두 가문의 동업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다.
분사 이후 LG가 주력 건설사가 없다는 이유로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이에 구본무 회장은 “LG는 3대 주력 사업인 전자, 화학, 통신에 주력한다”고 선언하면서 주변의 우려를 일축했다. 한편 LG는 2013년 STX에너지 인수전에서 GS와 합작으로 인수를 이루어내며 동업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화를 바탕으로 한 동업의 역사는 LG가 다른 어떤 그룹보다 합작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빠른 시간 내에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사와의 합작을 이끌어 냈는데, 외자유치 최대 규모인 16억 달러 수준이었다. 필립스사의 크리스털리 회장은 LG, GS가 잡음 없이 50년 이상 서로 동업을 하는 모습에 감동해 LG그룹을 투자처로 선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어떤 기업과도 합작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IBM과도 합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 외에 LG다우폴리카보네이트, LG칼텍스정유 등 10개 이상의 굵직한 합작을 성사시켰다.
수도권 규제 장벽을 풀다
2004년 3월, LG는 경기도로부터 파주에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100만평 규모의 디스플레이 공장을 지을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수도권 규제 지역이라 공장을 세우기 불가능했던 파주에 5억 3천억 원을 투자해 7세대 LCD 공장을 준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시 반기업 정서가 팽배했던 상황에서 그것도 수도권인 파주에 대규모 공장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주목할 만하다. 필립스와의 합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산업단지 조성의 경제적 효과를 꾸준히 설명해 경기도의 협조를 이끌어 낸 덕분이다.
이후 작은 군사도시였던 파주에 2만 5천 개의 일자리가 생겨났으며, 공장 건설 후 5년 동안 지역경제가 17% 성장하게 된다. 인구도 2006년 29만 명에서 2013년 40만 명으로 증가했다. LG는 필립스사와의 합작이 종료된 이후에도 파주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인 1조 8천 400억 원을 투자하여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을 짓는 등 디스플레이 분야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LG는 정경유착이라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는 기업 중의 하나다. 창업 이후 지금까지 정치권과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관계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원칙은 정치적 리스크 없이 안정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인화의 최종 목적지는 소비자
소비자가 왕이다. 이런 문구는 지금은 매우 흔한 표현이지만 1960년대만 하더라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물건이 부족해 생산하기 급급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1966년 금성사가 국내최초 TV를 생산했을 때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흑백 TV를 들여놓은 집은 동네 소극장 역할을 하게 되었고, 생산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공급이 부족해 소비자들의 구입신청을 받아 공개추첨을 했고, 당첨자에게만 판매를 하는 상황까지 생겨났다. 수출품의 경우 OEM방식의 수출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에 직접 소비자를 응대하는 대신 외국 유명 백화점이나 제조업체의 상표를 붙여 판매가 되었다.
구자경은 국내 시장이 개방되면서 고객의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국내 기업이 경쟁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고객 최우선의 가치를 경영이념으로 내세웠다. 인화를 바탕으로 한 LG가문의 리더십은 기업의 존재 원천은 결국 사람, 즉 고객이라는 점까지 이어진다.
“기업경영도 손해냐 이익이냐 하는 이해득실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창의성에 바탕을 두고 항상 사람을 중시하는 인본주의 정신으로 해야만 훨씬 더 생명력을 갖게 된다”
존경받는 기업가로
LG가의 경영방식은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과 공통점이 많다. 발렌베리 가문은 5대에 걸쳐 160년 동안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금융, 건설, 제약, 항공, 통신 등의 19개의 자회사를 갖고 있으며 스웨덴 GDP의 40%, 상장사 시가총액 30% 이상을 소유하고 있다.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사회적 지탄을 받지 않고 기업을 경영해왔으며,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어떤 다툼도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우리는 가족 기업이다. 가족 경영은 변함없이 지켜져야 한다. 단 경영은 적합한 사람이 있는 경우에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리고 기업을 경영할 후계자는 몇 가지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일임하고 있다. 이들은 견제와 균형을 위해 2명의 후계자를 선정하고 있다. 발렌베리 가문의 경영 후계자가 되려면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해야 하고, 명문대를 졸업해야 하며,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강인한 정신력을 길러야 하며, 부모의 도움 없이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에 진출, 실무 경험을 쌓고 국제 금융 흐름을 익혀야만 한다.
또한 오너 경영자는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하고, 경영은 외부 전문가에게 일임하고 있다. 이들의 기업 경영과 경영권 승계 방식은 가문의 이익도 중요하지만 기업의 연속성도 중요하다는 인식에서 나온다. 이러한 전통으로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훌륭한 기업가를 만들기 위해 혹독한 후계자 교육을 하는 점과 기업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형제간, 부모간 다툼이 없는 점은 LG그룹과 발렌베리 가문의 공통점이다. 또한 기업의 분사나 수도권 공장 신설 등 여러 가지 대내외 굵직한 과제들을 무리 없이 수행하는 LG의 모습은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는 발렌베리 가문의 철학과도 닮아있다. 반기업 정서가 강한 한국사회에서 LG가문 사람들은 성공한 기업가를 넘어 존경받는 기업가의 표본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오직 이길밖에 없다. 구자경, 1992, 행림출판사, 54~59p
한국 자본주의의 개척자들, 조동성 외, 2003, 월간조선사, 52~53p
곽 은 경 |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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