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 사장에서 그룹의 Owner가 되다! : FILA KOREA 윤윤수 회장

송헌재 / 2015-11-20 / 조회: 8,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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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명품사랑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품 사랑은 지하철을 타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성들의 가방을 살펴보면 널리 알려진 명품 브랜드들로 가득하다.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명품 시계나 가방을 들고 다니는 남성들을 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몇 해 전 겨울에 특정 브랜드의 패딩이 전국의 중고등 학생들 사이에서 광풍을 일으켰던 기억이 생생하다.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만 명품에 열광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파리의 루이비통이나 샤넬 같은 명품관에는 중국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도 명품을 좋아하기는 매한가지다. 어느 정도 소득수준이 뒷받침된다면 명품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 된다.

 

명품의 가격은 매우 비싸다. 가방 하나에 수백만원이나 하는 것을 보고 터무니없다거나 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명품의 가격이 비싼 이유는 연예인들이 높은 수입을 얻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할수록 연예인의 몸값이 올라가듯이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을 때 명품의 가격은 상승한다. 즉, 명품의 역할은 제품의 사용가치보다는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에 있다. 여기에서 명품 소비자들은 커다란 효용을 얻는다. 따라서 대중교통이 발달해있고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처럼 이러한 조건이 잘 갖추어진 곳일수록 명품에 대한 수요는 더 높아지고 이로 인해 명품의 시장가격은 더욱 비싸진다.

 

발상의 전환이 만든 한국발 명품 스포츠 패션 브랜드 왕국의 실현

 

그런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명품은 대개 프랑스, 이태리, 영국, 스위스 같은 유럽제품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 브랜드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는 명품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랜 시간 수많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형성된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FILA KOREA의 윤윤수 회장은 이러한 소비 문화적 기반이 허약한 상황에서 세계인이 공감하는 브랜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루이뷔통이나 카르티에와 같은 제품을 부러워하며 패션 후발국에 머물러야 할까?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명품 브랜드를 개발하고 이를 세계인의 사랑받은 고급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테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윤윤수 회장은 이에 대한 다른 접근법을 택하였다.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기보다 이태리 태생의 세계적인 브랜드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찾은 것이다. 윤윤수 회장이 FILA를 인수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나라가 패션의 명품브랜드를 소유하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패션 선진국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FILA는 이태리 브랜드이지만 현재 소유권은 한국에 있다. 2007년 윤윤수 회장의 FILA KOREA가 FILA GLOBAL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FILA KOREA가 FILA의 의류, 신발, 액세서리에 관한 전 세계 사업권과 상표권 및 상표사용권 일체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인수 당시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FILA 브랜드의 본사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FILA KOREA는 로열티를 지불하던 회사에서 로열티를 받는 회사로 탈바꿈하였다. 세계시장에서 FILA 제품의 판매가 늘어날수록 우리나라 기업의 로열티 수입이 증가한다. 마침내 패션산업의 독립을 선언하는 순간이 실현된 것이다.

 

위기를 기회로, FILA와의 만남

 

윤윤수 회장은 태어난 지 100일도 안돼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보며 암을 연구하는 의사가 되기를 꿈꿨다고 한다. 이를 위해 서울대 의대 시험을 쳤으나 의대는 떨어지고 2지망으로 치의예과에 합격하였다. 윤윤수 회장은 의사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어 재수를 선택했지만 의대에 또 불합격하고 치의예과를 다니던 중 적성에 맞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교로 진로를 변경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윤윤수 회장은 30대 초반에서야 직장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전공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그 당시 서울대 치대를 포기하고 외국어대로 옮기는 것은 일반인의 시선에서 파격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다. 윤윤수 회장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의 첫 직장인 해운공사에서 선박관리업무를 하다가 얼마 되지 않아 무역업으로 진로를 변경하였다. 아니다 싶은 길은 미련 없이 포기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간 이와 같은 윤윤수 회장의 경험은 미래 경영자가 되어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했을 때 분명 여러 모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윤윤수 회장은 1975년 미국의 JC Penny 백화점의 한국 지사에 입사하여 무역업을 시작하였다. JC Penny의 전자제품 수출 담당자로 6년간 일하면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 무역업의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37세에 “화승”의 수출담당 임원으로 스카우트되었다. 그는 화승에서 신발사업을 처음 경험하였고 업무차 방문한 미국 출장길에서 FILA를 처음으로 접하는 기회를 가졌다. 처음 FILA 브랜드를 접한 윤윤수 회장은 FILA의 세련된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화승에서 승승장구하던 윤윤수 회장은 세계적인 히트를 쳤던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에 나오는 ET 인형을 만들어 미국시장에 팔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에 ET 인형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던 미국회사의 제소에 걸려 선적한 물건이 모두 반품되는 일을 겪었다. 윤윤수 회장은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윤윤수 회장은 이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 만들었다. 미국출장길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던 FILA를 떠올리고 FILA 상표의 북미 신발 판권을 가지고는 있으나 사업은 하고 있지 않았던 호머 알티스를 찾아가 FILA 신발을 미국에 판매하자고 설득하였다. 윤윤수 회장은 화승에서 신발판매사업을 해본 자신의 경험을 살려 먼저 호머 알티스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결국에는 이태리에 있는 FILA 본사의 허락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윤윤수 회장의 예측대로 FILA 신발의 미국 판매실적은 급격히 올라갔고 미국시장에서의 이러한 성공은 전 세계 시장에서 FILA의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월급쟁이 사장에서 FILA 그룹의 주인이 되기까지

 

미국에서 FILA 신발 사업이 성공하자 이태리 본사 경영진이 미국을 방문했고 이때 엔리코 프레시 FILA 본사 회장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미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FILA 본사는 호머 알티스에게서 신발 판권을 회수하고 전 세계 신발사업권을 윤윤수 회장에게 새롭게 수여하였다. 세계 시장에서의 보다 큰 성공을 위해 엔리코 프레시 회장은 윤윤수 회장에게 FILA KOREA의 설립과 경영을 제안하였다. 즉, FILA KOREA를 전 세계에 판매할 신발 공급처의 교두보로 삼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1992년에 FILA KOREA의 대표가 된 윤윤수 회장은 한국시장에서 FILA 브랜드 사업을 시작하였고 회사 설립 4년 만에 매출액이 첫해의 20배에 달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국내 스포츠 캐주얼 시장 점유율 14%를 기록하며 어느덧 리딩 브랜드로 자리매김하였다. 이러한 성공에 대한 보답으로 엔리코 프레시 회장은 윤윤수 회장의 연봉으로 18억원을 지급하였는데 윤윤수 회장은 당대 최고의 연봉을 받는 경영자로서 언론에 회자되는 유명인이 되었다. 

 

윤윤수 회장이 이끄는 FILA KOREA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인 반면에 FILA 본사는 90년대 말부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였다. 엔리코 프레시 회장이 주도했던 마케팅과 제품개발 및 유통센터 설립 등의 경영전략이 실패로 끝나자 2001년 FILA 그룹의 매출은 격감했고 이는 결국에 그룹 해체의 위기로 발전하였다. FILA는 1911년 이태리 비엘라 지방에서 FILA 삼형제가 창립한 회사로서 100년의 역사를 가진 유수한 기업이다. 1972년 이태리의 대표적인 자동차 기업인 FIAT 그룹이 FILA를 인수하면서부터 세계적인 스포츠 레저 명품 브랜드로 발돋움하여 성장하였으나 이때 큰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FILA의 경영자들은 다시 브랜드를 살릴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모색하다가 FILA KOREA의 경영을 훌륭하게 해온 윤윤수 회장에게 아예 FILA KOREA의 인수를 제안하였다. 윤윤수 회장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2004년 12월 31일에 1억 3,000만 달러에 주식을 인수하면서 마침내 그는 FILA KOREA의 1대 주주가 되었다. 연봉 18억을 받던 월급쟁이 CEO에서 그 회사의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FILA 그룹은 FILA KOREA를 매각한 이후에도 별다른 반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어려움을 극복할 새로운 타개책으로 FILA의 브랜드를 프리미엄 명품 브랜드로 전환시키고자 제품 가격을 올리고 명품 지향적 마케팅을 펼치는 전략을 시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소비자들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매출이 격감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침내 FILA 그룹의 경영권을 소유하고 있었던 스포츠 브랜즈 인터내셔널(SBI)은 FILA를 매각하기로 결정하였고 윤윤수 회장은 이 사태를 지켜보며 자신이 FILA 본사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FILA 그룹이 겪고 있었던 경영상의 어려움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탓에 있다고 판단하였으며 자신이 FILA KOREA를 성공시켰던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그동안 회사를 경영하며 그가 쌓아온 고객 및 사업파트너들과의 신뢰로부터 나올 수 있었다. 고객과 사업파트너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고 이들의 욕구에 귀를 기울이며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경영방식을 고수한 윤윤수 회장의 오랜 사업경험이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되었고 윤회장이 FILA 본사를 인수하여 새로운 경영을 시도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윤회장은   2007년 1월 SBI로부터 FILA GLOBAL을 인수하여 마침내 FILA 그룹의 주인이 되었다.

 

합리적인 가격의 고급 패션 브랜드를 추구하다

 

윤윤수 회장이 FILA 그룹을 인수하였으나 FILA의 본사는 아직도 이태리에 있다. 100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쌓이고 형성된 FILA의 고유한 명품 브랜드 가치를 그대로 살리기 위한 전략이다. 즉, 전 세계 시장에 FILA는 여전히 패션의 선진국인 이태리의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윤윤수 회장은 글로벌 경영자로서 새로운 조직과 비즈니스 모델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본인이 20년 넘게 쌓아온 스포츠 브랜드 사업의 지식경험을 기반으로 명품 글로벌 패션브랜드의 기업 틀을 구축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FILA는 현재 나이키(Nike), 아디다스(Adidas), 리복(Reebok), 푸마(Puma), 아식스(Asics), 컨버스(Converse)와 함께 세계 스포츠계를 주름잡는 7대 스포츠 브랜드 중 하나이다. 세계 시장에서는 명품 브랜드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FILA는 초고가의 이미지보다는 중고가 정도의 브랜드 이미지가 강하다. FILA KOREA가 최고급 상품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홈쇼핑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제공하여 소비자들의 접근성을 높여준 결과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브랜드 대표 모델로“김수현”이라는 한류스타를 발탁하여 FILA의 고급 브랜드 이미지는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경영전략이 과연 성공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FILA는 여전히 이태리의 명품 브랜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여 누구나 합리적인 가격으로 명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길만한 현상이 아닐까? 폼은 나면서 비싸지 않은 브랜드라면 이를 싫어할 소비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윤윤수 회장이 FILA 그룹의 주인이 되어 경영을 이끌어 가는 것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패션산업의 후발국이 아니고 패션산업을 선도하는 국가가 된 것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합리적인 가격에 명품 브랜드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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