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항해사, 네이버 이해진 의장의 열정과 도전

박병진 / 2015-06-19 / 조회: 1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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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고 (뉴스스탠드)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통합검색과 '지식iN’에서의 지식검색) 쇼핑할 것을 추천 받고 비교하고 (네이버 쇼핑) 식당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거나 관광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 공유하고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 자기 사업을 광고하고 (소액광고) 지인들과 소통하고 (네이버 밴드와 모바일메신저 라인)... 아침에 눈을 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네이버를 접하지 않는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와 같은 우리 생활의 커다란 변화는 한 소년의 꿈으로부터 시작된다. 소년이 학교를 다닐 때 백과사전은 소수 부유층만이 가질 수 있는 전유물이었고 전과마저 없는 친구들을 보면서 소년은 친구들이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백과사전을 꿈꾸었고, 그 소년은 모두가 정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더 큰 꿈을 이뤘다. 네이버(구 NHN)를 세워 국내 최대 포털로 이끈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의 이야기다.

 

한국경제에서 네이버가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크면서도 독특하다. 네이버는 시가총액 상위 30위 기업 중 유일하게 대기업집단이나 국영기업이 아닌 회사다. 즉, 국내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벤처기업이자 코스닥 등록업체 중 시가총액 1위 기업이 네이버이다. 또한, 한국이 구글, 야후, MSN과 같은 세계적인 인터넷 검색 기업들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힘을 못 쓰는 나라인 것도 네이버가 한국 포털검색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세계 5위의 검색엔진으로 하루 10억 페이지뷰를 달성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13년부터는 모바일 메신저 라인(LINE)이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와 스페인 등 유럽시장을 아우르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네이버 공화국”이라 불리면서 온라인 생태계를 황폐화시킨다는 여론을 바탕으로 정치권과 정부부처에서 규제의 움직임을 보이는 대상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디지털 라이프를 이끌고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인터넷 벤처인 네이버. 구글과 야후까지도 벤치마킹 하고 있는 '지식검색’, 대한민국 검색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통합검색’ 등 새로운 디지털 트랜드를 창조하며 인터넷 제국을 건설한 네이버의 성공을 말할 때 이해진 의장을 빼 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본 사례는 네이버 이해진 의장의 열정과 끈기, 도전과 혁신이라는 기업가정신의 구현이 개인과 기업의 성공뿐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의 발전을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1부. 열정, 도전 그리고 성공

 

삼성SDS의 사내벤처로 돛을 올리다

 

네이버 이해진 의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86학번으로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마치고 1992년 삼성SDS에 입사한다. 이해진이 본격적으로 인터넷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삼성SDS에서 실시한 한계도전 프로그램('사원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발굴∙신규 사업영역 개척∙스피드경영 실현’을 모토로 선발된 직원이 1년간 자신이 원하는 것에 도전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한계도전팀에서 미래를 이끌 기술분야를 연구하던 중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를 발견한 이해진은 PC통신 이후 인터넷 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확신했다. 그는 한계도전팀에서의 연구를 바탕으로 1994년 당시에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산형 검색엔진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1996년에 회사 경영층에 인터넷사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검색엔진의 주 수입원인 배너 광고만으로는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때 기회를 열어준 것이 삼성SDS가 새롭게 도입한 '사내벤처’ 제도로, 네이버는 1997년 삼성SDS의 사내벤처로 돛을 올린다. 이와 같이 국내최고 인터넷기업을 향한 항해는 이해진 사장이 소사장(삼성SDS 과장)으로 사원들 중 인터넷 검색엔진 개발과 사업을 할 수 있는 기술자 세 명과 함께 양재동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이해진 사장이 직접 온라인 광고를 따와서 살림을 꾸리며 시작된 것이다.

 

삼성SDS로부터의 분사

 

1999년 6월 네이버는 삼성SDS에서 독립기업인 네이버컴으로 분사하게 된다. '네이버’라는 의미는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분리 당시 자본금은 5억 원이었으나, 당시는 IMF직후 IT와 인터넷이 급부상하기 시작한 때로 11월에는 한국기술투자로부터 100억 원의 투자도 받게 된다.

 

그러나 사업이 초반부터 순풍에 돛을 단 것은 아니었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인터넷 비즈니스의 미래를 낙관한 수많은 기업들이 포털시장에 뛰어든 것이다. “시장에서 한 떡볶이집이 인기를 끌자 모두 떡볶이를 팔겠다고 나서고 있다.” 염진섭 야후코리아 사장이 당시 국내 인터넷업계의 상황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국내 포털은 시장규모가 너무 작고 뚜렷한 수익모델도 없는 가운데 무료 서비스와 경품 행사 등을 통해 무한경쟁에 나서면서 심한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다. 야후코리아, 라이코스코리아 등 해외 포털들이 막강한 브랜드 효과를 누리고 있을 때 군소 포털로서 네이버는 이름을 알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다음, 야후, 라이코스 등이 건재한 당시 업계 5위에 머물렀던 네이버컴으로서는 트래픽이 큰 문제였다. IT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의 사정이 점점 어려워지자 이해진 의장이 한때 사업을 접고 매각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해진 의장은 인터넷은 서비스 품질이 제일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인터넷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들과 차별화된 핵심요소가 필수입니다. 네이버컴의 핵심은 기술력입니다”(네이버 공화국). 인터넷만큼 서비스품질이 빨리 냉정하게 평가 받는 시장은 없다는 게 이해진 의장의 지론이었다. 다른 서비스와의 비교가 용이하고 전환비용(이전에 따른 코스트)이 없기 때문에 네티즌들은 써 봐서 불편하고 가격이 비싸면 바로 바꿔버리고 구전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1등이 될 것이다. 네이버는 한국에서 가장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굳이 '토종 포털'을 내세우지 않고 기술력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었다” (네이버 스토리). 이러한 품질지상주의를 통해 네이버는 규모는 작지만 실력이 있는 기업으로 서서히 인지도를 쌓아가게 된다

 

한게임과의 통합으로 전기를 마련하다

 

네이버를 말할 때 이해진 의장과 함께 떠올리는 인물이 김범수 의장이다. 이해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은 서울대 86학번 동기로 각각 카이스트와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92년 나란히 삼성 SDS에 입사하게 된다. 둘 중 먼저 김범수씨가 회사를 나와 1998년 게임포털인 한게임을 창업하고, 이해진씨도 1999년 삼성SDS에서 분사하여 독립법인인 검색포털 네이버를 설립하게 된다.

 

2000년은 네이버와 한게임 모두 커다란 사업적 변화를 겪고 있는 상태였다. 김의장의 입장에서는 불과 1년 6개월 만에 한게임의 회원이 10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성공을 했지만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어서 회사 운영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반면 네이버컴은 100억 원대의 투자를 받아 자금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상태였으나 이용자들이 장시간 머무를 수 있는 커뮤너티 서비스와 안정적 수익구조를 찾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임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커뮤너티와 국내 최고의 검색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네이버간 결합이 빛을 발할 것이라고 믿은 이의장과 김의장이 의기투합한다. 결국, 2000년 7월 네이버컴과 한게임을 합병하고, 2001년 9월 NHN㈜로 상호를 변경하여 이의장과 김의장이 NHN의 공동창업자이자 공동의장으로서 손을 잡고 회사를 키우게 된다.

 

물론 합병했다고 어려움이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2000년 겨울은 인터넷 거품 논쟁으로 어느 때보다 혹독했다. 투자심리는 얼어붙었고, 직원들의 사기는 저하되었으며, 재무상황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막막했다. 이러한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 이해진 의장은 '한게임 유료화’를 단행하게 된다. 유료화가 이용자 감소를 초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존 무료 사이트를 그대로 운영하면서 사용자 편의성과 이용속도를 개선한 유료사이트를 개설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를 통해 유료화가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으며, 합병전 6천만 원 적자가 순이익 100억 원으로 전환된다.

 

제2의 창업 NHN과 코스닥 등록

 

2001년 9월 네이버는 사명을 네이버컴에서 인간의 미래지향적 의지와 가치를 상징하는 의미인 'NHN(Next Human Network)’으로 변경하고 제2의 창업을 선언한다. 사업영역도 인터넷 포털, 게임, 모바일, 솔루션 비즈니스 등으로 확대한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네이버는 2002년 코스닥 시장에 진입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코스닥등록 사전심의에서 닷컴출자 리스크 등으로 인해 두 차례나 심사에서 탈락하고, 세 번째 심사만에 통과된 것이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공모주 청약에 대규모 자금이 몰리고 코스닥에 등록하자마자 주가가 가격제한 폭까지 오르면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그 결과 네이버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던 삼성SDS는 투자원금의 150배에 달하는 수익을 내게 된다. 더 중요한 것은 네이버의 코스닥 등록과 성공으로 '인터넷기업은 수익성이 없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식까지 찾아주는 검색, '지식iN’

 

네이버 점유율이 급상승한 것은 2002년 10월 네이버가 대화형 검색서비스인 '지식iN’이라는 지식검색 서비스를 도입하면서부터이다. 기본적으로 검색은 웹 데이터베이스의 양과 검색엔진의 성능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된다. 하지만 2002년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는 한글 데이터베이스의 양은 영어 데이터베이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국내 검색엔진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한글로 된 정보를 찾을 수 없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2년초 이해진 사장은 검색기획팀에 “웹사이트에 널려있는 지식을 거두는 데 머물지 말고, 사람들 개개인의 머릿속에 있는 경험과 노하우를 끄집어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인터넷이 접근성은 뛰어나지만 쓸만한 정보는 찾아내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네이버의 지식iN은 이 같은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탄생했다.

 

지식iN의 원리는 간단하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누군가가 지식iN에 접속해 질문을 입력하면 다른 네티즌이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답변을 적어 올리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검색은 네티즌이 필요한 정보를 웹상에서 찾는 것인데 반해 지식iN은 거꾸로 네티즌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을 웹상으로 끌어내는 방식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발상의 전환이었다. 네이버는 지식iN 서비스에 '내공’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운영하였는데, 이는 한국 네티즌 특유의 경쟁심을 이용하여 자발적으로 공유시장으로 유도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KBS와 공동으로 에듀테인먼트 프로그램 <스펀지>를 제작하여, 지식검색의 신뢰도를 높인 것도 성공요인이다.

 

대표 IT기업의 위치를 확고히 하다

 

질문형 검색서비스 '지식iN’의 성공에 이어, 새로운 수익을 안겨주면서 네이버를 한 단계 더 상승시킨 것은 검색광고 서비스를 출시한 것이다. 즉, 네이버는 기존 정액제 방식 대신에 고객이 광고주 사이트를 방문(클릭)한 경우에만 광고비를 지출하는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 방식은 초기 투자비용 없이 저렴한 비용으로 타켓팅된 광고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소액광고주들에게 효과적인 검색광고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2003년은 네이버(구 NHN)가 인터넷업계 강자의 자리를 확고히 한 시기이다. 2003년 상반기 네이버가 야후코리아를 제치고 검색부문에서 1위로 올라선데 이어 종합포털 순위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 이후에는 핵심역량인 검색엔진과 블로그, 카페 등 커뮤너티 서비스를 연계한 뒤 연이어 대박을 기록하며 다음의 카페서비스와 SK커뮤니케이션의 싸이월드의 아성을 위협하게 된다. 검색1위, 포털 1위의 지위를 확보하자 이후 신규로 만든 서비스도 상승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이메일 서비스도 경쟁자들보다 한참 늦은 2003년 5월에 시작했으나 5개월 만에 428만 명이 계좌를 개설하였고, 블로그 서비스는 가입회원 모두에게 하나의 블로그를 주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시작하자마자 1위로 등극했으며, 2002년 시작된 지식검색서비스도 선두의 자리를 굳혔다.

 

2004년-2005년은 네이버가 다음, SK커뮤니케이션, 엠파스 등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포털의 무한경쟁 시기이다. 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야후코리아를 넘어 2001년부터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2004년은 '싸이월드의 해’로 불리는데 싸이월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하는 올해의 히트상품 1위에 선정될 정도로 가입자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남녀노소 모두 싸이질에 열중하였다. 인터넷 동호회 카페는 다음이 강세를 보였고, 블로그는 SK커뮤니케이션즈의 싸이월드가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네이버는 2004년부터 기존 지식검색 외에 카페와 블로그 서비스에 공을 들이며 본격적 포털경쟁에 나선다. 전지현을 내세운 TV광고 등을 통해 적극적인 공세를 이어간 네이버는 다음과의 치열한 선투다툼 끝에 2005년에는 포털사이트 업계 부동의 1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후는 1위의 지위를 바탕으로 다양한 제휴와 적극적인 M&A 등을 시행함으로써 경쟁 사이트들을 멀리 따돌리고 인터넷 포털시장에서 독주체제를 굳히게 된다.

 

 

2부. 끊임없는 견제와 도전 그리고 새로운 꿈

 

견제와 비판적 시각의 대두

 

네이버가 한국형 검색을 개발, 지식의 외연을 확장하고 디지털화하는데 기여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더구나 네이버의 오늘은 전쟁터와 같은 경쟁시장에서 다음 커뮤니케이션을 비롯한 토종 선두기업들과 구글, 야후, 라이코스 등 거대 외국기업들을 물리치고 이룬 전과이다.

 

그러나 네이버가 인터넷업계 1위 기업으로 부상하면서 견제와 비판적 시각이 대두하게 된다.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독보적인 시장점유율과 영업실적에도 불구하고 중소업체와 상생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데이터베이스의 독점적 운용으로 '네이버 경제’를 만들어내는데 실패했다. 주변 산업과 함께 성장하지 못하고 남들의 희생 위에서 배를 불린다. 강력한 미디어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사회 곳곳에서 네이버의 영향력에 대해 견제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여론을 배경으로 한 정부(국세청, 공정위)의 조사, 포털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언론사와 입법부의 움직임 등이 시작된다. 나아가 네이버 댓글이 법적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고, 대형마트에서 시작된 골목상권 침해문제도 오프라인 상권을 벗어나 온라인으로 번지게 되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갑을문제는 포털서비스 시장으로도 옮아가게 된다.

 

2008년 공정위의 조사를 받으면서 한차례 파고를 넘었던 네이버는 2013년 들어 비판적 여론의 고조를 배경으로 한 정부 조사와 정치권의 소위 “네이버 규제법” 상정 압력 등 더 큰 시련에 봉착한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압력에 대응하여 2013년 7월 29일 네이버 김상헌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생∙공정∙글로벌을 핵심가치로 삼아 인터넷 선도기업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카카오톡의 등장과 모바일 플랫폼 시장에서의 경쟁

 

네이버는 수많은 도전과 위협을 극복한 결과 황금시대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1위 기업의 위치는 환경변화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도전자들에 의해 끊임없는 도전을 받게 된다. 그 중 가장 커다란 위협은 NHN 단독대표와 해외사업총괄대표를 거친 후 2008년 네이버를 떠난 김범수 의장에 의해 시작된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손에 가진 자금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새로운 사업구상을 하던 김범수 의장은 모바일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2010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출시한다. 스마트폰 도입과 함께 카카오톡은 국민 메신저로 떠오르게 되는데, 모바일 시장의 성장과 모바일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창출 가능성은 네이버에게도 커다란 위협으로 작용하게 된다.

 

'라인’으로 글로벌 포털을 꿈꾸다

 

PC인터넷에 안주했던 네이버도 모바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네이버톡이라는 모바일메신저 서비스를 출시하지만 카카오톡의 강세에 밀리게 된다. 하지만, 국내에서의 미약한 실적과는 달리 해외부문에서는 네이버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있다. 국내의 부진을 만회하고자 2011년 2월 일본에서 출시한 라인(LINE)이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모바일메신저 사업이 국내에서는 부진한 반면 외국에서 성공을 한데는 플랫폼(둘 이상의 집단을 서로 연결하고 교류를 촉진시키는 場) 사업의 특성이 작용을 한다. 즉, 플랫폼은 커뮤너티 형성에 의한 네트워크 효과로 인해 어느 기업이 시장에 먼저 진입하여 성공적으로 플랫폼을 구축하면 선순환 구조로 인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특히 모바일메신저는 네트워크 효과로 인한 참가자들간의 잠금(lock-in)효과가 큰 분야로 국내에서는 카카오톡이 성공적인 선발 플랫폼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를 깨뜨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네이버저팬이 출시한 라인이 선발자의 위치에 있었고 일본시장의 특성을 잘 반영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매력적인 플랫폼 구축에 성공한 것이다.

 

라인은 일본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대만,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여 2013년 11월에 전세계 가입자 3억 명을 돌파하였고, 2015년 현재 중국 등 100여개국에서 사용자 5억명에 달하는 커다란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러한 모바일 플랫폼 라인의 성공은 네이버가 글로벌화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도모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해외에서의 성공은 국내에서 네이버의 독점적인 시장지위에 대한 비난이 증가하고 카카오톡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네이버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어 주고 있다.

 

도전과 과제를 넘어 더 큰 발걸음

 

기본적으로 네이버의 사업은 플랫폼 비즈니스이다. 즉, 네이버는 개발자와 이용자, 광고주와 이용자, 지식제공자와 지식소비자 등 다양한 집단의 교류를 촉진시켜 주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플랫포머이다. 이러한 플랫폼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을 유인하는 매력적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 핵심이 뛰어난 검색서비스라 할 수 있다. 또한, 인수합병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하고 참여자 풀을 확대함으로써 지속적으로 플랫폼을 개선하고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네이버(구NHN)는 2013년 8월 또 다른 큰 변화를 맞이하는데, 포털회사 네이버와 게임회사 NHN 엔터테인먼트로 분할을 한 것이다. 한편, 2014년 다음과 카카오톡이 합병하면서 네이버와 다음카카오의 전면전이 다시 시작되었다. 포털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다음과 모바일 시장의 강자인 카오톡의 합병은 네이버에는 새로운 경쟁상대의 등장을 의미한다. 네이버의 독주에 우려와 질시를 보내던 시선을 고려하면 다음카카오의 등장은 네이버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자극이 될 것이다. 현재 네이버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공이다. 한국시장에서 역차별 논란에 시달리기 보다는 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강자와 경쟁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쉽지 않은 도전과 과제를 맞아 네이버와 이해진 의장은 그 동안의 열정과 혁신을 바탕으로 더 큰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참고문헌>

 

장정훈 (2007) 『네이버 스토리』, 뉴런.
임원기 (2007) 『네이버 성공신화의 비밀』, 황금부엉이.
김태규, 손재권 (2007) 『네이버 공화국』, 커뮤니케이션북스.
박효 등(2014) “라인, 네이버의 글로벌 플랫폼,” KBR, 제18권 제3호, 99-124.

 


박병진 (한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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