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비합리적 소비를 하는가: 감정을 따라가는 지갑의 심리학

김효성 / 2024-11-20 / 조회: 33

"이번 달에는 꼭 절약해야지!" 라고 다짐하고 가계부 앱까지 설치했지만, 한 달 뒤 카드 명세서를 보고 한숨 쉬어본 경험, 모두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월급이 입금되자마자 온라인 쇼핑몰을 둘러보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무언가를 구매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현대인의 공통된 경험이 되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성적이라 믿는 우리의 소비 생활에서 이토록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걸까?


첫 번째로 인간의 뇌는 진화 과정에서 손실을 회피하도록 설계되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 대니얼 카너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동일한 금액이라도 이득보다 손실에 약 2.5배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만원을 주웠을 때의 기쁨보다 만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이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를 아는 마케터들은 ""놓치면 후회할 특가!"", ""재고 N개 남음, 품절 임박!"" 같은 문구로 우리의 손실회피 본능을 자극한다. 마치 배고픈 사자를 피해 도망가는 영양처럼, 우리의 뇌는 '손실'이라는 위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우리 뇌는 첫 번째로 접한 정보를 기준점으로 삼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앵커링 효과'인데, 예를 들어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UN 회원인 국가의 비율을 묻는 생소한 질문한 다음 행운의 바퀴를 돌려서 나온 숫자를 하나 보여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행운의 바퀴에서 뽑은 숫자를 기준으로 비율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우연히 얻은 숫자가 질문의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으로 앵커링 효과를 보여주는 실험 중 하나이다. 이러한 앵커링 효과는 우리의 일상적인 소비 생활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백화점의 세일 전략이 대표적이다. ""정상가 100만원 → 특별할인가 40만원""이라는 문구를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100만원을 기준점으로 삼아 '60만원이나 절약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옷의 실제 가치가 40만원에 맞는지는 꼼꼼히 따져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물건을 구매했을 때의 기쁨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심리학자들은 이를 '쾌락적 적응' 또는 '쾌락의 쳇바퀴'라고 부른다. 마치 향수의 첫 향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옅어지듯, 물건 구매로 인한 만족감도 시간이 지나면 줄어든다. 최신형 스마트폰을 구매했을 때를 떠올려보라. 처음엔 새로운 기능에 감탄하고 디자인의 아름다움에 취해있지만, 한 달만 지나도 그저 평범한 일상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적응 과정을 자주 잊고, 새로운 구매가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착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SNS에서 유행하는 제품을 보면 나도 모르게 구매 욕구가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요즘같은 SNS 시대에는 이러한 동조 효과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실제로 SNS상에 수도 없이 나오는 각종 바이럴 광고들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심리를 노린 것일 것이다. 한 온라인 쇼핑몰 실험에서는 동일한 제품에 ""인기 상품"" 표시만 달았을 뿐인데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우리는 마치 철새들이 떼 지어 날아가듯, 집단의 선택을 따라가려는 본능이 있는 것이다.


충동구매를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시간을 두고 결정하는 것이다. 특히 고가의 제품을 구매할 때는 최소 24시간의 숙려 기간을 가지는 것이 좋다. 마치 중요한 이메일을 보내기 전에 하루 밤 자고 다시 검토하듯이, 구매 결정도 하룻밤 숙성시키면 더 현명한 판단이 가능하다.


또한 물건의 가치를 판단할 때는 '회당 비용'을 계산해보라. 예를 들어, 30만원짜리 옷을 산다면 한 번 입을 때마다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 계산해보는 것이다. 연간 10번 입는다고 가정하면, 한 번 입을 때마다 3만원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이런 계산법은 우리의 소비가 실제로 얼마나 효율적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구매 전에 자신의 감정 상태를 체크해보는 것도 좋다. 스트레스나 우울함, 불안감 때문에 하는 보상 소비는 아닌지 점검하는 것이다. 감정 소비의 패턴을 파악하면, 그것을 통제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쇼핑 대신 운동이나 다른 취미 생활을 통해 해소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새로운 물건을 사고 싶은 욕구가 생길 때, 기존에 가지고 있는 비슷한 물건을 점검해보면 어떨까. 옷장 정리나 집안 대청소를 하다 보면, 잊고 있던 물건들을 재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새로운 구매 없이도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사실 완벽하게 이성적인 소비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결국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소비 심리를 이해하고, 그것을 현명하게 다루는 방법을 배운다면, 비합리적 소비를 부추기는 유혹들이 곳곳에 산재한 현대사회에서도 한결 더 합리적인, 균형 잡힌 소비생활이 가능할 것이다. 소비의 진정한 목적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가치와 만족감을 고민해보는 것, 그것이 현명한 소비자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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