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규칙, 모두의 힘으로

오원빈 / 2024-11-20 / 조회: 39

요즘 러닝이 유행이다. 운동장 트랙과 공원 산책로에서 이른 아침이든 늦은 저녁이든 혼자서, 때로는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달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러닝 관련 소식과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튜브 채널도 많이 늘었고, SNS에는 러닝 장비와 기록을 인증하는 게시물이 가득하다. 이름 있는 마라톤 대회는 접수 시작과 동시에 마감될 정도로 그 열기가 뜨겁다.


 언론과 기업, 지자체에서도 '러닝 붐’이라며 이런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봄 5호선 여의나루역에 러너 스테이션을 설치해 러너들의 접근성과 편리성을 높였다. 언론사와 기업은 주말마다 앞다투어 달리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렇듯 운동 부족 인구 비율이 58.1%로 세계 5위에 오른 우리나라 입장에서 러닝 붐에 힘입어 운동 인구가 늘어난다는 사실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러닝 열풍이 좋은 영향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러닝을 여러 사람과 즐기기 위해 가입하는 러닝 크루, 러닝을 더 잘하기 위해 신청하는 러닝 클래스가 곳곳에서 일반 시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러닝 크루나 러닝 클래스에서 나온 수십 명의 사람이 운동장 트랙을 점거하면서 일반 시민들이 이용에 불편함을 겪는다. 한강 산책로를 막고 뛰는 바람에 자전거 도로로 비켜 다니는 사람들과 자전거 이용자 사이에 혼잡이 일어나기도 한다. 러닝을 즐겨 하는 필자의 경험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사례이다.


 이러한 불편함은 운동장 트랙과 공원 산책로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공유재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배재성을 갖지만, 한 사람의 이용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경합성을 갖는다. 운동장 트랙과 공원 산책로는 입장료를 받지 않아 누구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길이 붐비고 원활한 사용이 어려우므로 공유재의 특성을 갖는다.


 공유재는 적정 수준보다 과다하게 이용되어 결국 고갈된다.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이를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고 표현하였다. 천연자원이나 공동 목초지와 같이 자원이 고갈되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항상 과다하게 이용되어 만족스러운 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운동장 트랙과 공원 산책로도 공유지의 비극 상황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다.


 지자체는 러닝 크루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나섰다. 서초구는 반포종합운동장에서 5인 이상 단체달리기를 제한하는 이용규칙을 만들어 지난 10월 1일부터 시행하였고, 송파구는 석촌호수 산책로에 3인 이상 러닝 자제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게시하였다. 화성시는 동탄호수공원 산책로에 러닝 크루 출입 자제를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강제적인 규제가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원에서 축구장, 농구코트, 배드민턴 코트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단체로 달릴 수 있는 공간은 사실상 없어지게 되었다. 3인 이상, 5인 이상 달리기를 제한하면 친구들과 가볍게 모여서 달릴 수도 없고, 러닝 크루와 일회성의 러닝 소모임을 구별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혼자서 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지자체의 대응 방식에 비추어볼 때 러닝을 하지 않는 일반 시민의 편의를 우선시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효성 있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한 가지 방법은 이용요금 부과이다. 운동장 트랙과 공원 산책로 이용이 유발하는 사회적 비용을 이용요금으로 부과하면 최적 수준의 이용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공중의 이용에 제공되어 시민의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시설의 취지에 어긋난다. 재화평등주의 관점에서도 저소득층의 이용을 배제하는 문제가 생긴다.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은 공유지의 비극을 해결할 방법으로 자율규칙을 제시하였다. 자율규칙은 그 영향을 받는 사람이 규칙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일반 시민과 러너가 공동으로 모여 운동장 트랙과 공원 산책로의 이용규칙을 만든다면, 양자의 생각을 반영했기 때문에 더 현실적인 내용이 될 것이고 규칙이 지켜질 가능성도 더 클 것이다.


 반가운 러닝 붐을 갈등과 혐오에 빠져 사그라들게 두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자율규칙을 통해 시민과 러너가 반갑게 인사 나누는 공원 산책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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