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한국은행의 대학생 선발 방식 제안? 본업에 충실하길...

권혁철 / 2024-08-28 / 조회: 810

한국은행이 대학생 선발 방식을 제안했다고 한다. 관련된 한 신문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금수저’ 서울대생 속출에...“지역 비례로 뽑자” 한은 파격 제안」. 잘 사는 집, 특히 강남 출신 학생들이 서울대 등 이른바 명문대와 의대 합격률이 이례적으로 높다는 것, 즉,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 지역에 크게 좌우된다는 것, 이에 따라 잠재력 있는 지방의 인재들이 선발되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들 대학의 신입생을 지역별 입시생 수에 비례해서 선발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말하자면, 서울대 입학정원이 3522명인데, 이 숫자를 지역별 만 17세 인구 비중에 따라 나누어 서울은 16.1%인 약 567명, 부산은 5.5%인 193명, 광주는 3.2%인 113명을 뽑자는 것이다. 한국은행 측의 말에 따르면, “입시경쟁이 과열되면서 사교육 부담이 심화되고 있고, 저출산 등 구조적 사회문제를 유발하고 있다...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통해 이를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보며 참으로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어사전을 보면, 뜬금없다’라는 표현은 ‘갑작스럽고도 엉뚱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은행이 대학 신입생 선발 방식에 대해서 제안을 하다니! 이것이 ‘갑작스럽고도 엉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한국은행법’ 제1조 목적을 보자.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라는 것이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이고, 이것이 한국은행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여기 어디에 교육 관련 업무가 있으며, 대학 신입생 선발 방식에 대해 제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가.


한국은행의 설립 목적인 ‘물가안정’의 도모는 결코 가벼운 임무가 아니다. 어쩌면 경제와 관련하여 가장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독일 라인강의 기적의 토대를 닦은 것으로 평가되는 질서경제학자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은 ‘경제정책의 7대 근본원칙’을 천명하면서,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고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통화가치의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데 중요한 것이 바로 한국은행을 비롯한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중앙은행의 의사결정이 정치권 등 외부로부터의 입김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정권을 차지한 권력자들, 강력한 이익단체들의 입맛에 따라 통화정책이 좌지우지된다면, 물가안정은 물건너가기 십상이고, 이는 곧 국민경제 전체에 엄청난 혼란과 부작용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도 한국은행법 제3조 ‘한국은행의 중립성’에 “한국은행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어야 하며,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 왜 굳이 한국은행 스스로 ‘입시경쟁 과열’, ‘사교육 열풍’이니 ‘저출산 문제’니 하는 것들을 거론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대학 신입생 선발 제도까지 언급한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만약 정부나 정치권이 이런 이유 등을 내세우면서 한국은행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더라도, 그것은 한국은행의 역할이 아니며 한국은행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반박해도 모자를 사안 아닌가. 그런데, 한국은행 스스로 뛰어들고 있으니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로 뜬금없는 한국은행의 행보이다. 공공기관이 본래의 업무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몸집을 불리거나 새로운 업무를 추가하려는 경향이 있음은 익히 알려진 현상이다. 이번의 행보도 그런 것인가. 현재 한국의 물가를 보면, 한국은행이 본래의 업무, 즉 본업인 물가안정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한국은행의 실패’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수십 퍼센트에서 백 퍼센트 이상에 이르기까지 가격이 치솟은 고물가에 온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불안해하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쳐서 일어난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어쨌든 물가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인 한국은행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모 경제력이 대입 좌우...서울대생 지역별 비례로 뽑자”. 뜬금없이 이런 데 신경 쓸 시간에 본업인 물가안정에 충실하길...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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