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의 무엇이 문제인가?

권혁철 / 2024-07-11 / 조회: 1,087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의 정책이나 주장의 명분 또는 근거로 이용되는 용어로 '저출생’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수준의 저출생이 사회적, 경제적 문제를 야기하며, 따라서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정책이나 주장의 골자이다. 혹자들은 저출생을 '집단 자살’ 또는 '국가 소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저출생이 우리 사회 모든 일의 원인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복지 정책과 경제 및 사회에 대한 각종 규제 조치의 정당화 근거로 거의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된 지는 꽤 되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세우고 이 명목으로 예산을 투입하기 시작한 이래 20여 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투입되는 예산도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출산장려정책 명목으로 추진되는 사업도 매년 증가했지만, 합계출산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8년 처음으로 1명 이하로 떨어지고, 2022년 0.78명, 그리고 2023년에는 0.72명을 기록할 정도로 성과는 참담하다. 급기야 며칠 전 대통령은 저출생을 '국가비상사태’로까지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여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총력 대응의 내용은,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새로운 정부 부서의 신설과 공무원 증원, 예산 증액, 그리고 복지의 확대 및 신설, 경제와 시장에 대한 규제와 개입 강화다. 지자체도 앞다퉈 출산 장려 명목으로 '퍼주기 경쟁’에 나섰다. 이제 출산하면 1억 원을 주겠다는 지자체도 나왔다.


시계의 바늘을 잠시 거꾸로 돌려 보면 지금과는 완전히 정반대되는 그림들이 펼쳐진다. 당시의 대표적인 구호 내지 표어만 보더라도 사정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에서 시작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거쳐 출산율이 2명대에 진입한 80년대에도 구호는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었다. 1990년대 후반 출산율이 1명대로 떨어졌고, 산아제한정책은 공식적으로 폐기됐다. 


그 후로 10년밖에 지나지 않아 이젠 정반대로 아이를 너무 적게 나서 문제라며 출산장려정책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아이를 적게 낳는 것이 '애국자’였는데, 지금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자’가 되었다. 산아제한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할 때 귀가 따갑게 들었던 통계는 '인구 밀도’였다. 대한민국의 인구 밀도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인구 밀도가 너무 높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할 때 대한민국의 인구는 4천만 명을 넘어서고 있을 때다. 지금은 인구가 5천만 명선을 넘겼는데도 정부든 미디어든 인구 밀도에 관해 어느 한 사람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 대신 '합계출산율’ 통계만 귀가 따갑게 듣는다. 정부와 정치권 및 미디어의 입맛에 맞는 통계만 내세우기 때문이리라. 


이런 사정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저출생 및 이로 인한 인구 감소가 심각한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가 갸웃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정보의 문제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미래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고 대처할 수 있다는 오만을 부리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런 지적인 오만의 결과가 총력을 기울여 '산아제한’, 갑자기 180도 방향 바꿔 총력을 기울여 '출산 장려’ 아닌가. 국가 능력을 총동원시켜 어느 한쪽 방향으로 몰고 갈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른 것을 쳐다볼 여지도 없이 한쪽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문제를 확대하고 그 폐해도 확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오히려, 사회 각 부문, 각 계층, 그리고 각자가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여 유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대처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 인위적 종자 개량으로 동일한 유전자를 갖게 된 양계장의 닭은 조류독감이 퍼지면 집단으로 폐사하지만, 다양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철새들은 일부는 죽지만 나머지는 살아남는 이치와 같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저출생 및 인구 감소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인류는 이미 심각한 인구 감소 사태를 겪었던 경험이 있고, 그것이 무조건 부정적이지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약 30~60%가 사망했었다. 그러자 농업 및 여타 부문에서 노동력이 극도로 부족해졌고, 그 결과 노동력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이에 따라 임금도 급격히 상승했다. 노동자들의 입지가 크게 강화되고 노동 조건이 개선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산업의 구조도 노동력이 덜 들어가는 부문으로 전환되었고, 생산성 증대를 위한 여러 혁신들이 등장한다. 도시화가 촉진되고 다양한 경제활동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로써, 새로운 시대로 도약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설령 저출생과 인구 감소가 실제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인정하더라도, 그에 대응하는 정책의 실효성과 방향에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보았듯이, 그동안 수백조 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합계출산율은 계속해서 낮아졌다. 명백한 정책 및 정부 실패다. 변화의 흐름을 거슬러 막아보려는 정책이기에 실패는 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보았던 흑사병의 경우에도 유럽의 정부들은 변화의 흐름을 막아보려고 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경우에는 '노동자 조례’를 통해 임금을 흑사병 이전 수준으로 동결하고 노동자의 이동을 제한하려 했다. 물론, 실패했다. 오컨대, 시대와 사회의 변화의 흐름을 막아보려는 혹은 거꾸로 돌리려는 정책이 아니라,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과 사회의 능력을 제고하고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단순히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기술 및 경영 혁신과 교육, 노동 시장의 유연성 제고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다양한 문제들에 창의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되어야 한다.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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