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간에 정치인들을 빗대 하는 여러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도 있다. '여의도에 가 보면 자신이 나서면 대통령에 반드시 당선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적어도 500명 정도는 있다’는 것이다. 현실이 어떤지,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채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사정을 착각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빗대어 하는 말일게다. 그런데, 이보다도 더 심각한 착각은 아마도 시장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닐까.
시장과 경제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관리할 수 있다는 착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경제사상사를 들여다보면, 고대부터 중세 및 근대 초기까지도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했던 끈질긴 역사를 볼 수 있다. 이자를 받는 것을 갖가지 이유를 붙여 소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서 금지했다. 경제사상사에는 터무니없는 이자 금지 이유에 대해 비판하고, 이자 금지 조치를 풀기 위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어 왔다는 것 또한 볼 수 있다. 현재 이자 금지 조치는 없지만, 이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몇 퍼센트 이상의 '고리(高利)’를 금지하는 '이자제한법’은 그것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은행이 '이자 장사’로 돈을 번다고 비난하고 사회에 환원하라는 요구가 종종 나오는 이유도 이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이자 수취와 마찬가지로 '공공의 적’이 되어 있는 것은 단연 부동산이다. 그리고, 이 부동산 시장을 관리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고대 이래 정치인들이 보여온 행태 그대로다. 지난 문재인 정부 때는 삼십여 차례 가깝게 부동산 규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 결과도 이자 금지 조치와 마찬가지로 '정부 실패’로 끝났다. 부동산 가격과 전월세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던 경험을 했다.
앞서 언급했던 이자 금지 조치가 공식적으로 철폐될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정치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일이 흔치 않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준다. 그런데, 설령 그런 착각을 벗어버린다고 해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에는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민주제도 하에서의 정치인이라면 여론의 향배, 표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론과 표심에 끌려다니면 정치꾼일 뿐이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 것이 진정한 훌륭한 정치가라는 말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면에서, 얼마 전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문재인 정부 시절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면서 한 말은 신선한 충격이다. 문재인 정부에 중요 인사로 참여했던 고민정 최고위원은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자고 공개 제안하면서, “정권 재창출 실패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아무래도 부동산이 컸다...집을 갖고 싶은 마음을 욕망으로 치부해 버렸다는 건 큰 잘못”이라고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착각에서 깨어난 것이든 아니면 득표 전략의 수정이든 그 이유야 어떻든 본인이 참여했던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하고 반성하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정치인으로서 대단한 용기를 보여주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제를 손보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제까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여론의 눈치만 살피던 현 정부와 여당은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꼴이다. 지난 해에도 다주택자의 취득세,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중과 등 이른바 '다주택자 규제 3종 세트’를 풀겠다고 약속했었지만, 현실화된 것은 종부세 중과 완화뿐이다. 그 이외에는 달라진 것도 없고, 또 바꾸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의 최고위원이 종부세 폐지를 주장하고, 또 야당의 원내대표도 '실거주 1주택 종부세 폐지’를 언급하고 나섰으니, 모양이 그다지 좋지는 않게 되었다. 다행히도, 정부도 종합부동산세 폐지 검토에 이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취득세 중과를 대폭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부분에서는 의견이 나뉘고 있기는 하지만, 모처럼 정부와 여당, 야당이 부동산 관련 중과세를 폐지 내지 완화하는 방향으로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시장을 꽁꽁 얽어매고 있는 중과세와 각종 규제를 철폐하기에 이런 우호적인 환경이 다시 형성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권혁철 자유시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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