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고전은 많다. 딱 한 권만 내놓으라고 하면,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추천한다. 원제는 '여러 국민의 부의 성질과 원인에 관한 연구’이지만 줄여서 '국부론’이라고 부른다. 제목이 말해주듯 이 책은 나라가 부강해지는 원인을 여러 나라와 비교한 결과를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파헤치고, 그 나라와 국민의 번영을 위한 해법을 제시한다.
애덤 스미스는 어떻게 해야 더 잘 살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의 현실을 파악하고 그 원리를 경제라는 용어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경제적 사고방식이 무엇인지도 알게 된다. 경제성장을 위한 체계적인 경제정책의 방향이 드러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던 18세기 후반은 격동의 시기였다. 유럽과 미국 모두 변화의 기운이 꿈틀대고 있었다. 산업혁명이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고,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혁명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변혁이 일어나던 때다. 산업이 발달하고 풍족해지는 세상의 원리는 이 책은 중상주의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국부론은 자본주의 세계의 발전원리를 명쾌하게 설명하면서 새로운 신세계를 열었으며,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체계를 세웠다.
이 책은 1776년에 출판되어 조그마한 책방에서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초판은 4절판의 두툼한 책 두 권으로 구성되었으며, 가격은 1파운드 16실링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같은 해에 독일어 번역판이 나올 정도였다. 다음해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 세관위원에 임명되었으며, 국가의 여러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789년 제5판이 간행될 때까지 여러 차례 개정판이 나왔다.
'보이지 않는 손’이 경제원리의 중심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국민의 삶이 나아질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일찍이 그의 해법을 따른 나라들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못했다. 또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도 애덤 스미스의 경제원리와 거리를 두면서 다시 침체의 늪에 빠지기도 했다. 경제성장의 모범답안이 국부론에 나와 있음에도 정치적으로 이를 외면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애덤 스미스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며, 그 이기심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임을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가 작동하면서 시장에서의 경쟁은 세상을 발전시키는 에너지가 된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커지고, 상인들이 땅을 소유하면서 그 가치가 올라가며, 제조업이 발달하면서 개인들은 점차 자유를 확장해나갔다. 풍요를 향한 자연스런 변화의 압력은 특권을 지키려는 정치적 압력과 정부 정책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관철시킨다.
국부론이 세상에 끼친 영향은 크고도 놀랍다. 경제력의 확장은 진보를 가져왔으며, 문명의 수준은 거칠 것 없이 향상되었다. 이제 영미계 해양문명이 주도한 인류의 비약적인 발전에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한다. 한동안 칼 마르크스가 사회주의 건설을 내세웠다. 애덤 스미스가 설파한 시장의 발전과 개인의 선택영역 확대과정을 자본주의라고 명명하면서 그 타파를 외쳤다. 하지만 사회주의를 꿈꾸는 나라는 이제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졌다.
세상의 진보를 가져오는 발전원리는 이미 애덤 스미스가 충분히 설명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 원리를 따르지 않고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자유방임 원칙은 끊임없는 정부의 통제와 개입에 의해 훼손되고, 작은정부 원칙은 복지국가로 변질되며, 특권을 경계하는 경쟁과 개방의 원리는 기득권을 중시하는 폐쇄적 반세계화로 얼룩지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왜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일까? 반자본주의론자들은 자본주의가 한계에 부딪혔다느니,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느니, 기득권 세력의 힘이 너무 세다느니 하면서 대안을 찾는다. 여전히 칼 마르크스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위기와 실패들은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기본원리로 충실하게 돌아가야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비판론자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위기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를 계획주의와 정책실험에 빠뜨리곤 한다.
국부론의 모든 주장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지식의 발견이 더해져온 만큼 내용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애덤 스미스가 핵심으로 삼은 분업원리, 작은정부, 시장경쟁, 개방화를 뒤집는 주장을 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세계는 지금 유럽 재정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이 책의 현대적 의미는 분명하다. 정부의 규모를 키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작은정부론’의 재강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개입주의, 복지국가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이미 오래 전에 경고한 바 있다.
애덤 스미스는 자본주의를 꽃피운 선각자
애덤 스미스의 학문세계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다. 그의 사상은 홉스, 로크, 맨더빌, 흄으로 이어지는 도덕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그의 통찰은 경제학의 바탕을 튼실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있어 이기심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닌 그저 인간의 본성이다. 이기심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능력이나 성격 차이를 중요하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습관·교육·직업 등 후천적 환경을 더 중시했다. 인간을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로 본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능력은 분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설명한다.
애덤 스미스는 인간은 평등하지만, 현실에서 부·지위·명예의 차이가 존재함을 인정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고 보았다. 그는 부에 중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저 화폐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소비가 가능한가에서 진정한 부의 개념을 도출해내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생활필수품·편의품 등 생산물을 진정한 부로 본 것이다. 소비자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 생산과 유통이라는 관점에서 산업을 이해하고, 이를 어떻게 개선해나갈지를 고민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중상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만들어갈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되었다.
국부론은 자본축적에 대한 설명을 포함한다. 그에게 자본축적은 해마다 생산이 확대되는 과정이므로 개인과 사회의 낭비를 경계했다. 낭비는 자본을 탕진하고 생산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사람들이 풍요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다양한 이유를 통해 얻어진다. 그런 동력을 막고 있는 독점과 특권에 대해서 비판적인 자세를 가졌다. 특히 기득권을 가진 세력,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을 경계했다.
그는 자유로운 세상을 향한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른 풍요를 설파한 선지자다. 삶의 어려움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을 찾았고, 진보를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론을 제시했다. 기본철학은 자유방임 원칙이다. 정부의 통제와 개입으로부터의 자유를 근본 바탕으로 삼았다. 국가지출을 비생산적인 지출로 보았으며, 가장 바람직한 국가모델로 야경국가를 제시했다.
자본주의 발전에 대해 애덤 스미스는 낙관적이었다. 실제로 세상은 발전했고, 인류의 삶은 가난을 극복했다. 하지만 역사에서 보면 늘 발전하고 진보가 이루어지는 시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 침체하는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20세기에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물결이 세상을 퇴보시켰다. 수십 년 동안 계획주의 실험이 반복되었고 실패했다. 그 후유증으로 남은 것이 비대해진 정부다. 정부개입주의는 그대로 사회주의의 잔재로 남아 지속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선택 그리고 사회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가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이 복잡한 세상에 어떤 충고를 할까.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다시 강조할 것이다. 사실 정부의 통제와 개입은 정치적으로 부를 재분배하는 행위에 불과하며, 경제적으로 축적된 자본을 줄이고 낭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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