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규제는 좋은 의도와 명분으로 출발하지만
도리어 부작용과 폐단 등 나쁜 결과를 가져와요
거북 한 마리가 느릿느릿한 속도로 걸어가고 있다. 멀찌감치 뒤에 있던 한 남자가 앞서가는 거북을 따라잡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다. 언제나 거북이 남자보다 조금 앞서 있었다.
제논의 역설
쉽게 설명하자면, 남자는 거북보다 100배나 빨리 달릴 수 있다. 맨 처음에 거북은 남자보다 100m 앞서 있었고, 사람이 100m를 달려오자 거북은 그동안 1m 앞서가고 있었다. 남자가 1m를 더 달리자 거북은 그새 0.01m를 앞서가 있다. 이런 식으로 남자가 거북의 위치까지 도착하면 거북은 또 조금씩 앞에 위치해 있게 된다. 그렇기에 남자는 영영 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엘리아의 제논(기원전 490년께∼기원전 430년께)이 주장한 ‘제논의 역설’ 가운데 ‘아킬레스와 거북의 역설’이다.
역설은 언뜻 일리 있게 들리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모순과 오류가 있다. ‘아킬레스와 거북의 역설’은 분명 틀렸다. 남자와 거북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은 동일한 거리를 갈 때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는 뜻이다. 남자와 거북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남자가 거북을 따라붙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마침내 0초가 되는 순간, 남자는 거북을 제치고 앞서 달리게 된다. 이처럼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는 논증에도 논리적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논리적 오류에 빠지지 않고 진실을 꿰뚫는 눈이다.
금주법과 백화점 셔틀버스 규제
이는 규제에도 마찬가지다. 규제는 항상 명분을 달고 있다. 실상이야 어떻든 모든 규제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다. 다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현실에서 곧이곧대로 통용되지는 않는다. 대개는 변질되고 악용된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규제가 도리어 부작용과 폐단을 낳는 상황, 이것이 바로 규제의 역설이다.
대표적으로 과거 미국의 금주법이 있다. 1919년 제정된 금주법은 주류의 양조·판매·운반·수출입을 규제하는 법이었다. 당시 금주법의 명분은 알코올 중독과 술로 인한 범죄의 감소였다. 하지만 막상 금주법을 시행하자 의도와 달리 온갖 편법과 범죄가 기승을 부리게 됐다. 불법 주류를 제조·유통하는 지하단체들이 생겨났고 불법으로 운영되는 술집이 많아졌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금주법 때문에 죽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다. 술을 구하기 힘들어지자 공업용 메틸알코올을 대신 먹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가운데는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었다. 결국 1933년, 미국의 금주법은 오랜 진통 끝에 폐지됐다.
한국에서는 2001년부터 시행된 ‘백화점 셔틀버스 규제’가 좋은 예다. 당시 규제의 명분은 ‘주변 재래시장 및 영세상인 보호와 대중교통 이용의 증대’였다. 의도는 그럴듯하다. 하지만 결과는 애초의 목적과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주변 재래시장의 매출은 규제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반면,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고객이 늘어나면서 백화점 주변의 교통체증은 심해졌다. 당초 의도는 실현하지 못한 채 백화점 이용 고객의 불편을 더하는 부작용만 생긴 꼴이었다.
보육료 상한제
보육의 질을 보장한다며 제정했던 ‘보육료 상한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보육의 질은 떨어뜨리면서, 유아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학부모들의 불평불만만 들끓게 되지 않았던가. 그뿐만 아니라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나 최저임금 규제는 오히려 비정규직과 저임금 근로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규제는 대부분 좋은 의도를 앞세워 만들어진다. 하지만 의도가 전부일 수도 없고, 만능 해법일 수도 없다. 오히려 현실의 순기능마저 망가뜨리고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많은 규제가 의도치 않게 지하경제 활성화, 부패의 주요 원인이 되지 않던가.
규제를 통해 통제한다는 관점보다 그 전에 보다 효율적이고 자생적인 시스템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규제의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 기억해주세요
모든 규제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다. 다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현실에서 곧이곧대로 통용되지는 않는다. 대개는 변질되고 악용된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규제가 도리어 부작용과 폐단을 낳는 상황, 이것이 바로 규제의 역설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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