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대충 다들 알고 있을 만한 얘긴데, 딱히 대중문화 분야에 이렇다 할 관심이 없는 이들로선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다. 어쩔 수가 없다. 언론미디어에선 온통 한류의 핵심으로 K팝, 그게 아니면 K드라마, 이제 아카데미상까지 수상한 K무비 등만 대서특필하며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규모와 글로벌 영향력 차원에서 가장 거대한 문화콘텐츠 한류 중심은 K팝도 K드라마도 K무비도 아니다. 그 앞에 'K’자가 아예 붙어본 적도 없는 장르, '게임’이다. 이 상황을 다룬 서울파이낸스 2020년 5월 19일자 기사 '콘텐츠산업 수출 첫 10조원 돌파...게임 비중 66.7%’를 보자.
“게임 산업이 이끈 연간 콘텐츠산업 수출액이 처음으로 10조 원을 넘어섰다. 1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9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도 국내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전년 대비 9.1% 증가한 96억1504만 달러(약 10조5000억 원)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 전 산업 수출액이 전년 대비 5.4%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높은 성장률이다.
수출액 규모는 게임산업이 64억1149만 달러로 가장 많았으며, 비중은 66.7%에 달했다. 또 게임산업 수출액은 2014년 29억7000만 달러에서 연평균 21.2% 증가했다. 게임에 이어 캐릭터(7억4514만 달러), 지식정보(6억3388만 달러), 음악(5억6424만 달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한류의 영향으로 콘텐츠산업 수출액은 5년간(2014∼2018년) 연평균 16.2%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했다. 2018년도 수입액은 전년 대비 1.3% 증가한 12억1977만 달러로, 무역수지는 83억9527만 달러(약 9조2300억 원) 흑자를 기록해 전년(76억1000만 달러)보다 증가했다. 국내 콘텐츠산업 매출액은 2018년에 119조6066억 원으로 집계돼 전년 대비 5.6% 증가했다.
매출액은 애니메이션 산업(-5.4%)을 제외한 모든 산업에서 증가했다. 특히 방송(9.5%), 만화(8.9%), 게임(8.7%) 부문이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매출액 규모는 출판산업이 20조9538억 원으로 가장 컸으며 이어 방송(19조7622억 원), 광고(17조2119억 원), 지식정보(16조2910억 원), 게임(14조2902억 원) 등 순으로 나타났다.”
보다시피, 문화콘텐츠 수출규모 차원에선 게임 비중이 가장 높다. 아니 사실상 압도적이다. 66.7% 비중이다. 그 뒤도 모두 예상 밖이다. 2위가 캐릭터산업, 3위가 지식정보산업, K팝을 중심으로 한 음악산업은 4위에 그친다. 그 규모도 게임산업의 1/10도 채 안 된다. 사실상 상대가 안 되는 것이다. 전체 매출액 차원에선 아예 5위권 내 들어가지도 못한다.
이쯤 되면 오히려 의아해질 수 있다. 게임이 이처럼 단순 효자상품 차원을 넘어 아예 문화콘텐츠 한류 자체를 견인하는 수준 규모로 급성장하고 있는데, 왜 그에 대한 언론보도는 그리 많이 이뤄지지 않고, 만날 K팝, K드라마, K무비 얘기만 반복해 나오느냐는 것이다. 그나마 위 수출액 기준으론 K드라마와 K무비 존재는 아예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여기서부터는 사실 좀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달리해볼 필요가 생긴다. 소위 국가브랜드 상승 차원에서 어떤 장르의 성과가, 그 전반적 산업규모나 수출액 규모와 관계없이,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사회와 문화, 사람이 보이는 콘텐츠여야 다른 효과들도 낼 수 있다
사실 대중문화의 힘이란 생각보다 크다. 그 자체로 한 국가의 브랜드가치를 높여주고, 전반적 신뢰도까지 상승시키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 여러 차례 각종 분석들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물론 그 기반이 되는 게 해당 국가의 경제력이긴 하지만, 일정수준 이상 경제력을 지닌 국가들 가운데선 확실히 대중문화가 글로벌한 위력을 발휘하는 국가 쪽 이미지나 신뢰도가 높고, 그에 따른 각종 파생산업들이 부흥하는 게 상례다.
그런데 그 핵심이 되는 요소는 사실, 대중문화상품을 통해 그 국가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느냐는 부분이다. 그 나라 사회분위기와 문화, 특히 '사람’에 대해 알고, 그를 통해 각종 신뢰와 호기심을 느끼게 되는 순서다.
그런데 게임으론 이런 것들이 무엇 하나 보이질 않는다. 그저 게임 재밌게 잘 만드는 나라 정도 인식 외엔 더 이상 들어서지 않고, 사실상 그 어떤 다른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한다. 이런저런 사회문화적 신뢰도가 상승하지도 않는다. 그 나라 게임을 즐겨 했다고 그 나라에 가보고 싶지도 않고, 그 나라 다른 상품들에 대한 신뢰가 생기지도 않는다.
그밖에 다른 분야들도 이처럼 부가적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게 많다. 예컨대 애니메이션도 비슷하다. 게임보다야 좀 낫다곤 하지만,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웬만해선 그 나라 문화와 사회, '사람’이 보이질 않는다. 현대도시를 무대로 삼는다 해도 그렇다. 실재감은 극히 떨어지고, 저 나라를 이해했단 생각은 잘 안 든다. 그 외 여타 SF나 판타지적 세계관을 지닌 애니메이션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게임이나 비슷한 효과 정도밖에 더 내지 못한다.
그러나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는 다르다. 음악은 1980년대 MTV 혁명 이후 그 자체로서만 전달되는 장르가 아니다. 그 실연자를 명백히 드러내는 뮤직비디오 형태로 전달된다. 지금 같은 유튜브 전성시대라면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내미는 K팝은 아이돌 중심 음악종합상품 형태다. 뮤직비디오뿐 아니라 각종 브이로그, 게임쇼, 토크쇼 등을 통해 한국이란 나라의 문화와 사회분위기까지 한꺼번에 전달된다.
드라마나 영화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늘 서울 등 한국 대도시가 배경이고, 그 발달된 도시상을 한껏 지켜볼 수 있다. 각종 한국사회 분위기 및 한국이 어떤 종류의 윤리도덕관을 갖고 있는지도 빤히 알 수 있게 된다. 실제로 해외 K드라마 팬들이 가장 의아해하던 것들 중 하나가, 왜 한국에서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밖에서 누가 부르면 자기 짐을 챙기지도 않고 그대로 가게 밖으로 나가느냐는 점이다. 한국은 그렇게 해도 '물건을 훔쳐가지 않는 사회’란 점을 이해하곤 다소간 충격 받는 모습들이다.
바로 이 같은 배경 탓에 한국 언론들에선 실제적으로 수출규모 차원에서 2/3 이상을 차지하는 문화콘텐츠 한류 절대중심 게임 대신, 그보다 수출규모는 작아도 확실하게 국가브랜드 상승효과를 내는 K팝, K드라마, K무비 등에 역점을 두고 그 해외성과들을 보도하는 것이다. 당장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는 각종 여행브이로그만 봐도 K팝 등 탓에 해외 현지인들로부터 한국관광객이 환영받는 모습은 숱하게 볼 수 있어도, 게임 재밌게 했단 얘기를 거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그 게임이 어느 나라에서 온 것인지도 모를 수 있다. 그러나 K팝, K드라마, K무비 등은 그저 보기도 해도 어느 나라 상품인지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그 차이다.
2019년 수출 규제 이후 한국과 일본 간 관광객 수의 기묘한 변화
또 다른 측면들도 존재한다. 전반적 국가브랜드 상승효과는 차치하고서라도, 문화콘텐츠 해외성과와 직결되는 여타 산업들 부흥 차원 문제다. 예컨대 게임산업이 해외에서 성공했을 때 다른 분야가 무슨 효과를 볼지 말이다. 엄밀히 게임 재밌었다고 그 게임을 하는 컴퓨터조차 한국 것을 써야겠단 생각은 잘 안 든다.
애니메이션은 그나마 좀 낫다. 최소한 그 캐릭터상품이라도 팔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로키티 등 글로벌 캐릭터상품 강자들이 사실상 애니메이션에 기반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유행을 타기 쉬운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은 확실히 그 지속성에 한계가 있다. 오직 폭발적 할리우드 식 흥행전략을 동원한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상품들만 안정적 인기를 구가한단 점으로도 잘 알 수 있다.
반면 K팝, K드라마, K무비 등은 다르다. 실제 '사람’이 중심이기에 일단 그 가수나 배우들의 출중한 외모를 통해 코스메틱산업 부흥으로 이어질 수 있고, 실제로 현재 한국 코스메틱업계는 K뷰티란 단어가 등장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큰 인기다. 당장 일본 내에도 에뛰드 등 각종 다양한 K뷰티 브랜드들이 중심가에 로드샵을 꾸리고 있다.
관광 상품으로도 바로 이어질 수 있다. 언급했듯, K드라마나 K무비에선 그 사회와 문화 분위기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의 방한 외래 관광객 숫자만 해도 정확히 K팝 등 사람과 사회, 문화가 보이는 한류상품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시점과 그 증가폭이 사실상 일치한다. 2010년 879만8000여명에서 2019년 1750만3000여명까지 이어지는 기적적 2배 흐름은 그런 식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이밖에 아이돌이나 드라마 배우들이 콘텐츠에서 먹은 음식들 중심으로 K푸드 열풍 역시 무시할 수 없고, 각종 패션상품들도 마찬가지다. 그 파생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이제 일본 사례를 비교해 생각해보자. 일본도 잘 나가는 문화상품들이 분명 존재한다.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은 해외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지만, 게임산업은 여전히 대단한 강세고, 당장 올해도 '동물의 숲’ 등 현상적 인기를 누린 콘텐츠가 많다. 나아가 애니메이션 산업은 지금도 계속 성장 중이다. 한겨레 2019년 12월 16일자 기사 ''10조원 돌파’ 일본 애니메이션, 국외시장 매출 절반 육박’을 보자.
“지난해 일본 애니메이션 전체 시장 규모는 2017년보다 190억 엔 늘어난 2조1814억 엔(23조3643억 원)으로 6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국내 시장 규모가 2014년 1조3908억 엔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 시장 확대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 성장을 이끄는 셈이다.”
그런데 이를 통한 여타 산업 효과는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관광객 수조차 연간 3000만 명대에서 제자리걸음 내지 매우 완만한 상향곡선을 그린다. 분명 애니메이션은 예전보다도 더 급속도로 성장 중인데 거기서 끝인 것이다. 나아가 한국이나 중국 등 여타 동아시아국가들과 정치·외교적 분쟁이 생기면 그마저도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그렇지가 않다.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가 벌어진 후 한일 간 관광 상황을 다룬 한국경제 2019년 9월 27일자 기사 '한국인은 일본 안 가는데...8월 방한 일본인 증가 '역대급’’을 보자.
“27일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인 순 출국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4% 감소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무역 보복 영향으로 단일 비중이 가장 큰 일본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와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각각 발표한 '외국인 방문객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달 방일 한국인은 30만8700명으로 48% 감소했다.
반면 지난달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오히려 5% 증가한 33만 명을 기록했다. 월간 기준으로는 1995년 8월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방한 일본인 누적통계도 225만8168명으로 전년 동기 185만1713명에 비해 22% 증가했다.
여행업계는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 주류가 20~30대와 같은 젊은 층과 모녀 관광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른바 '신(新)한류' 바람을 타고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일본인을 대상으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A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일본 내에서 케이팝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일본인들이 한국 내 일본 불매 운동으로 우려를 나타내기는 하지만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를 필두로 여전히 높은 관심이 유지되고 있고 한국 드라마 수요도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콘텐츠 자체가 인기 없기에 같은 비교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올 수 있지만, 실제는 전혀 다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도 인기 있다. 당장 2017년 공개된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만 해도 국내에서 무려 373만2561명을 동원하며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급 일대흥행을 기록했고, 어마어마한 인기에 힘입어 2018년 재상영까지 들어간 바 있다. 일본게임에 있어서라면, 당장 올해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숲’을 사기 위해 긴 행렬이 늘어섰던 충격적 상황으로도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같은 문화콘텐츠 인기라도 '그것’과 '이것’은 효과가 전혀 다르단 얘기다.
언론의 편향된 태도엔 '이유’가 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다 콘텐츠 자체 성공 그 이상의 효과를 내주는 K팝, K드라마, K무비 등에만 관심이 쏠리고 그쪽 보도만 이뤄지다보니, 여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이뤄져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그 이상의 진전이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11년 작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 예다. 당시 국내 극장용 애니메이션 사상 최대 흥행수치인 220만4374명을 동원하며 해외수출에도 대단한 호조를 보였지만, 애니메이션으로선 '한국’과 '한국인’을 팔 수 없다는 판단 탓인지 이런저런 언론보도도 열렬하게 이뤄지지 않고, 그런 탓에 금세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그 탓에 '제2의 마당을 나온 암탉’은 아직까지도 나오지 못하는 추세다.
그러나 어찌됐건, 잘못된 인식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문화콘텐츠 한류를 이끄는 건 그 수출규모에서 압도적인 게임이다. 그럼에도 언론미디어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인 K팝과 K드라마, K무비 등에 관심이 편중돼있는 건 '이유’가 있다. 물론 그 편중이 좀 과도한 것도 사실이다. 풀어야 할 숙제지만, 일단 정보부터 제대로 바로잡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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