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K팝은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이문원 / 2020-06-16 / 조회: 14,298

지금도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제목과 똑같은 얘길 한다. 비단 국내뿐 만도 아니다. 이미 미국 빌보드지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그대로 지면에 옮겨와 K팝의 글로벌 성공담을 설명하고 있고, 일본방송계 역시 여기서 단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는 주장을 지금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상당부분 왜 일본 J팝은 K팝처럼 글로벌화 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정신승리 격 면피로서 애용된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내수시장이 너무 커 굳이 해외로 진출할 필요를 못 느껴서란 해석이다.


지난 10여 년 간 이 같은 보편적 믿음에 반론을 제기하는 흐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차트 1위까지 차지하는 쾌거가 이뤄지면서 상황을 조금 다르게 읽으려 하는 분위기도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즈음부턴 이 같은 믿음을 바탕으로 정신승리 하던 일본에서조차 반론제기가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 예가 2019년 2월 일본주간지 주간겐다이에 게재된 칼럼 ‘K팝 시장은 정말 거대한가? 팩트로 분석하는 그들의 실력과 해외진출을 고집하는 이유’다. 일본 서브컬쳐 저널리스트 이이다 이치시가 썼다.


칼럼에서 이이다는 “K팝은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통념을 철저히 부정한다. 한국도 세계 6위 규모 음악시장을 갖고 있으며, “내수가 작아 해외로 진출한다”는 논리만으론 세계 1위 내수시장을 지닌 미국이 왜 세계 최대 콘텐츠 수출국이기도 한지 설명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결국 “내수 크기와 음악수출에 얼마나 적극적인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는 것.


이이다는 결국 “이수만이나 박진영이 투자자나 취재진 등 미디어를 납득시키기 위해 시장 크기를 거론한 것일 뿐, 사실은 “한국 밖에서도 인정받고 싶다”는, 아시아권이나 미국 등지에서 월드와이드로 활약하는 스타를 만들고 싶다는 그들의 “꿈”과 “인기와 명성에 대한 갈망”이 먼저였다는 것이 내 진단”이라고 밝히고 있다.


상황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비즈니스 레토릭에 가까웠던 ‘설(?)’


그럼 이제 실제 벌어졌던 상황을 시간 순으로 정렬해보자. 이이다 이치시의 설명처럼, “K팝은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 한국 측에서 처음 내민 것이다. 언론기사들을 찾아보면 그 최초 발언은 일본주간지 주간동양경제 2005년 9월 24일호 인터뷰기사 ‘“한류의 왕”이 고민하는 아시아 시장’에서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가 말한 내용이다.


“일본의 경우 세계 2위의 음악시장 규모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갈 필요도, 나와야 할 시장도 없다. 반면 한국은 시장이 좁아서 해외로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곱씹어 봐도 참 이상한 설명이다. 자국 내수시장이 크다고 해서 해외로 나가야할 필요가 없단 대목도 참 황당한 얘기지만, 내수시장이 작으면 왜 해외로 나가야만 하는지도 설명하기 참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같은 논리는 한동안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더는 등장하지 않다가, 6년 뒤인 2011년, 이번엔 훨씬 파급력 있는 일본 지상파방송을 통해 화려하게 재등장한다. 당시 같은 SM엔터테인먼트 대표(현재 총괄사장)을 맡고 있던 김영민의 입을 통해서다.


김영민 대표는 2011년 11월 4일 일본 니혼TV 버라이어티 방송 ‘도코로, 산마의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누구인가 회의’에 출연, K팝 아이돌그룹의 잇따른 일본진출 성공비결 등에 대해 웬만큼 한류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알만한 내용을 차곡차곡 설명하다가, 우익 성향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로부터 “일본 뮤지션들이 해외진출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는다.


이에 김 대표는 “일본이 해외로 진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일본은 내수가 너무 크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일본음악시장이 5000억 엔 규모라 하고 한국이 150억 엔 규모라 할 때, 일본 뮤지션들이 굳이 한국시장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20분의 1, 30분의 1인 한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매우 난센스다. 시장 차이가 너무 큰 것이 일본 뮤지션이 해외로 나가기 힘든 이유”라고 짚었다.


SM엔터테인먼트 측에서 모범답안을 미리 만들어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6년 전 이수만 총괄프로듀서 설명과 똑같은 내용이었지만, 이번엔 이 같은 내용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2011년 기점으로 모든 일본미디어가 마치 앵무새처럼 저 SM엔터테인먼트 측 설명을 그대로 옮겨 상황을 해석했고, 한국미디어에서 이 주장을 받아들인 것도 그 즈음부터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있다. 한국 K팝기업 측에선 이 같은 설명을 오직 일본미디어를 상대로만 반복해왔단 점이다. 정작 국내에선 이런 식의 설명을 하지 않았고, 사실 물어보는 이들도 없었다. 그리고 언급했듯, 애초 말이 안 되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이 주장이 2005년엔 일본서 무시당하다 2011년이 되자 물 만난 고기처럼 여기저기로 퍼져나간 이유가 있다. 일개 지면 전문주간지와 지상파방송의 전파력 차이도 있겠지만, 더 큰 원인은, 2005년의 K팝 한류는 ‘별 것’도 아니었지만, 2011년의 K팝 한류는 ‘명백한 위협’이 됐기 때문이다.


2005년이라 봤자 겨우 여성 솔로 보아 한 명이 일본 내에서 메인스트림 성공을 거둔 경우였고, 보이그룹 동방신기는 이제 막 일본서 출사표를 던졌던 시점이다. 그러나 2011년은 다르다. 그 즈음 동방신기는 이미 일본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캐시카우 보이그룹이 돼있었고, 막 소녀시대, 카라, 포미닛 등 2세대 K팝 걸그룹들이 일본에 상륙해 상상을 초월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에 일본미디어에선 ‘K팝 흑선(黒船)’이란 표현까지 사용하곤 했다. 흑선(黒船)은 다들 알다시피 19세기 미국 페리제독이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며 몰고 온 군함을 가리킨다. 1960년대 비틀즈를 위시로 한 영국 뮤지션들이 일제히 미국 대중음악시장을 공략할 때 미국미디어에서 내건 표현,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과 동일한 충격이었단 점을 보여준다.


결국 “K팝은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 “J팝은 내수가 너무 크기에 해외진출 할 필요가 없어 안 하는 것”이란 SM엔터테인먼트 측 일관된 주장은 사실상 시장을 침략(?)당한 일본인들 충격을 완화시키고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한 방책, 거부감 없이 K팝 상품들을 세계 2위 규모 시장에 안착시키기 위한 가히 외교관급 논리였던 셈이다. 상황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말 그대로 비즈니스 레토릭에 가까웠단 얘기다.


사실 해외서 돈 벌기 위해 해외진출에 몰두한 건 아니었다는 진기한 사연


그럼 K팝이 다소 이른 시점부터 해외진출에 그토록 몰두한 진짜 이유는 뭘까. 사실 참 대단한 우문(愚問)이긴 하다. 돈 벌기 위해 해외 진출하겠다는 데 무슨 다른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니 말이다. 그런데 위 이이다 이치시는 이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SM의 중국시장, JYP의 미국시장에 대한 집착을 보면, K팝의 세계전개는 경제적인 이유만으론 설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SM이 일본뿐 아니라 중국진출에도 적극적이란 점이다. 그것도 중국의 경제적인 거대성을 누구라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 2010년대부터가 아닌 1990년대 말부터 줄곧 적극적이었다. 일본진출에 대해선 CD 단가가 한국보다 높고 앨범 판매량도 높기 때문에 수익화를 위해 일본에 진출한단 설명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2000년대까지 해적판이 난무했고, 국제레코드비디오제작자연맹(IFPI) 조사에서 2017년 중국음악시장 규모는 한국의 494.4억 엔보다 적은 259.4억 엔으로 음반, 음원, 공연시장이 활성화돼있지 못한 편이다.”


동시에 이이다는 걸그룹 원더걸스를 필두로 한 JYP엔터테인먼트의 미국진출 전략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한다. 미리 밑밥을 깔아놓는 수준으로 시장진출을 모색하기엔 둘 다 그만한 여력이 있는 대기업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SM엔터테인먼트가 중국서 실제 유의미한 수익을 얻어낼 수 있었던 건 진출 시도로부터 15년도 더 뒤, JYP엔터테인먼트는 결국 미국서 돈만 날리고(?) 돌아온 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나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방탄소년단을 통해서야 비로소 수익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


이런 무모하고 소모적인 진출 전략이 과연 민간기업으로서 상식적인 것이 맞았는지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이다의 결론은,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K팝의 해외진출은 그저 ““한국 밖에서도 인정받고 싶다”는, 아시아권이나 미국 등지에서 월드와이드로 활약하는 스타를 만들고 싶다는 그들의 “꿈”과 “인기와 명성에 대한 갈망””이란 다소 낭만적인 원인밖에 없었단 식으로 치닫게 된다. 결국 엄밀한 상업적 계산이 아니라 지극히 낭만적인 ‘문화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무모한 발상들이 오히려 대중문화산업 특유의 트렌디 성질과 맞아떨어져 좋은 효과를 내게 됐다는 것.


그럼 이 같은 아리송한 논리는 과연 설득력 있는 걸까. 대략 절반만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정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한국대중음악산업에서 해외진출 코드를 맹렬히 가동하기 시작한 1세대 아이돌 태동기, 1990년대 후반 분위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세대 아이돌은 대략 1996~1999년에 데뷔한 아이돌들을 가리킨다.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이 해당된다. 이들 1세대 대표팀 4팀 중 H.O.T.는 중국에서 음반을 내며 처음으로 중국진출에 나섰고, S.E.S.는 일본진출에 나선 바 있다. H.O.T.는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거뒀지만, S.E.S.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한국 아이돌들의 해외진출은 끊이질 않았다. 되든 안 되든 기회만 닿았다 하면 해외진출에 나섰다.


왜 그랬을까. 잘 생각해보면 이 1996~1999년 시기는 한국서 곧 IMF 외환위기 시기이기도 했다. 온 국민이 극단적 현실에 고통 받으며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위안 받고자 하던 시절. 그리고 이 시기 대중에 가장 큰 위안을 안겨준 대표적 이들은 둘,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야구선수 박찬호와 LPGA 스타로 거듭난 골프선수 박세리였다.


과연 ‘수출신앙’의 국민들인 셈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한국인이 해외에 나가 분전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고 자랑스러워하며 위안으로 삼는다. 그렇게 박찬호와 박세리는 이 시기 가히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으며, 국내에서 수없는 CF출연 수익을 얻게 된다.


이런 흐름을 K팝산업에서 놓칠 리 없다. 1990년대 말엽~2000년대 초엽은 기존 피지컬 음반시장이 초토화되고 디지털음원 시대로 접어들면서 불법음원이 기승을 부리던 때다. 일시적으로 ‘음악만으론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었던’ 시점이다. 그러니 CF나 방송 및 각종 행사 출연에만 힘쓰게 됐고, 그에 성공하기 위해선 ‘해외진출’ 코드를 통한 아티스트 위상 상승이 필요하게 됐다. 기회만 닿으면 일단 일본이나 중국, 대만 등지로 진출하고 보는 흐름이 그렇게 생겨났다. 잘 되면 좋고, 안 돼도 이런저런 언론플레이를 통해 그 해외성과를 부풀려 얼마든지 국내 위상 상승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해외진출에 목을 매단 게 아니라, 국내 분위기를 고조시켜 국내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해외진출을 꾀하던 흐름’이 바로 이이다 이치시가 그리도 궁금해 하던 ‘경제적 이유라 보기 힘든 K팝 해외진출’ 시작점이었던 셈이다.


‘수출신앙’ 속 영웅, 수출 ‘역군(役軍)’들이 만들어놓은 한국 문화산업 흐름 


사실 이 같은 특이한 흐름은 일본 저널리스트가 쉽게 감지하기 어려운 부분이긴 하다. 일본선 아티스트가 해외서 성과를 거둬왔다 해서 국내 위상이 올라간다든가 인기가 유지되는 흐름은 최소 1970년대 이후론 없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 현상적 인기를 누린 여성듀오 핑크레이디 경우가 있다. 핑크레이디가 미국시장에 진출해 일본사상 두 번째로 빌보드차트 100위 내 입성했어도 정작 일본선 아무런 반향도 없었고, 미국 활동 후 일본으로 돌아오자 그 공백기 탓에 오히려 인기가 떨어져 급속히 해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그러나 한국은 분위기가 늘 달랐다. 언급했듯, ‘수출신앙’이 존재해온 나라다. 1960년대 수출입국 천명 이래 수출기업들엔 수출 ‘역군(役軍)’이란 칭호까지 붙었다.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지켜낼 군대와도 같단 의미다. 세상이 온통 이런 분위기니 문화예술 분야 역시 그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다못해 나이트클럽 밤무대 가수들에도 레토릭처럼 붙는 과장(혹은 허위)홍보멘트가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과는 분위기 차이가 크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국무역협회와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인 무역의존도는 2017년 기준 한국이 68.8%로, 일본 28.1%의 2.3배로 드러나고 있다. 수출의존도 역시 한국은 37.5%로 G20 중 3번째로 높은 수치인 반면, 일본은 14.3%로 한국의 1/3에 불과하다. 그만큼 한국은 사회문화 곳곳에서 ‘해외’에 대한 입장이 더 민감하고 뼈저리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대중문화 차원에선 일본처럼 ‘해외서 좋아하는 일본문화가 있고, 일본서 좋아하는 일본문화는 또 따로 있다’는 식 분위기가 형성되질 않는다.


물론 이런 한국사회 분위기가 한국대중문화산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부분도 크다. 그만큼 문화적으로 해외트렌드에 더없이 민감한 체질이 됐기 때문이다. 애초 대중 자체가 해외트렌드에 관심이 많고, 그를 따라가려는 국내 콘텐츠에 열렬히 반응한다. 그러다보니 K팝, K무비 등 산업은 꾸준히 미국 등 대중문화 선진국에서 시도되는 실험에 거의 실시간으로 대처하는 체질로 변화했다. 그렇게 노하우가 쌓이면서 해외무대 어디에 나가도 거의 동일한 호흡으로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결국 “K팝은 내수시장이 작아 해외로 진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틀린 얘기지만,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은 나라라 해외로도 진출할 수 있었다”는 정도론 설명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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