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길라잡이] 실패한 일본의 경기 부양책

최승노 / 2020-05-04 / 조회: 5,310

3600만명에게 1인당 2만엔씩 상품권 줬지만

국가 빚만 늘었을 뿐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죠


상품권을 주면 소비하겠지!


1998년 11월 일본 정부는 장기화되는 경제 침체를 만회해 보고자 긴급 경제대책을 발표했다. 당시로는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인 24조엔에 달하는 공적 자금 투입이었다. 하지만 경기 부양을 노린 이 어마어마한 금액의 긴급 경제대책에도 불구하고 도쿄 주식시장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긴급 경제대책 발표 다음날,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일본 국채의 신용 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등급 강등하기까지 했다. 그 밖에도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나 경기 부양을 시도했지만, 그 무엇도 효과를 보거나 시장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도리어 냉담한 반응과 비웃음까지 샀다.


참다못한 일본 정부는 1999년, 야심차게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상품권’이었다. 일본의 양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합의한 ‘상품권 배포’는 소비를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만 15세 이하 자녀를 둔 일본의 모든 세대와 노인복지연금 수령자 등 총 3590만 명을 대상으로 1인당 2만 엔의 상품권을 지급하기로 했다. 상품권 배포에 총 7000억엔이 사용됐다. 그런데 왜 하필 상품권이었을까? 일본 정부는 현금을 지급할 경우, 국민들이 그들이 의도한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해 버릴까 봐 염려했다. 또한 만성적 불황으로 고통받는 유통업계를 살리고자 하려는 의도도 포함됐다.


상품권 현금화해 저축


이처럼 정부가 상품권을 배포해 소비를 촉진하고 경기를 살리려고 한 시도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 정부의 상품권 아이디어는 일본 경제를 되살리기는커녕 참담한 결과를 낳으며 국제적 조롱거리가 됐다. 경제 활성화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했으며 국민 부담만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먼저 상품권을 받은 일본 국민들은 상품권을 할인해 판매해 버렸다. 할인된 가격으로 상품권을 팔아 현금화하고 저축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본 정부가 의도한 소비촉진 효과는 제로에 가까웠다. 그 대신 상품권 할인 거래를 주도한 사채업자와 야쿠자만 상품권 배포로 이득을 보았다. 상품권을 배포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고스란히 정부의 재정 부담이 됐고, 결국 일본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왔다. 막대한 재정 부담을 감수하고 일종의 복지 혜택이라 생각하고 상품권을 제공한 일본 정부는 깊은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


국가부채만 더 늘어나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의 국가부채는 1100조엔을 넘는다. 1100조엔은 원화로 계산하면 약 1경1897조원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숫자로 표현하면 11,897,000,000,000,000원이다. 이 정도면 각 숫자의 자릿수를 세어 단위를 가늠하기조차 생소한 수준이다.


일본이 이토록 어마어마한 국가 채무를 짊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기부양을 지향하는 경제정책 등을 통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있다. 정부가 계속해서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사용하면서 예산을 다 쓴 데다 세수가 부족해 적자 국채발행으로 재정 구멍을 메우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1100조엔이라는 일본의 국가 부채는 국민 1인당 부담금으로 환산하면 약 9400만원에 해당한다. 계속 일본의 국가 부채가 늘어난다면 결국 복지는 고사하고 모든 국민이 엄청난 경제적 고통과 시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재정지출로 경기 못살려


이웃 나라 일본은 우리의 거울과 같다는 말을 많이 한다. 세계 경제 2위로 대국의 위용을 자랑하던 일본은 옛말이 되었다. 성장을 멈춘 일본은 장기 침체의 고통에 허덕였다. 세계 최고의 기술과 인지도를 자랑하던 소니와 파나소닉까지 최고의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다. 일본 정부는 막대한 부채를 지면서 이전과 같은 복지정책을 유지하려 했지만 성장이 없는 경제에서 그에 맞는 재원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짐이 늘어났을 뿐이다. 이렇게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30년으로 이어졌다.


지금 일본은 다시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난 빚의 부담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결국 빚을 관리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고 있다. 정부가 상품권을 나눠주는 헛된 재정 지출에 매달리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 일본 국가부채의 교훈이다.


1998년 11월 일본 정부는 장기화되는 경제 침체를 만회해 보고자 긴급 경제대책을 발표했다. 당시로는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인 24조엔에 달하는 공적 자금 투입이었다. 하지만 경기 부양을 노린 이 어마어마한 금액의 긴급 경제대책에도 불구하고 도쿄 주식시장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긴급 경제대책 발표 다음날,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일본 국채의 신용 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등급 강등하기까지 했다.


■ 기억해주세요


2018년 일본의 국가부채는 1100조엔을 넘는다. 일본이 어마어마한 국가 채무를 짊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한 때문이다. 정부가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 예산을 다 쓴 데다 세수가 부족해 적자 국채 발행으로 재정 구멍을 메우다 보니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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