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중국 엔터가 ‘규모’로 치고 들어오면 K팝은 무너진다?

이문원 / 2020-03-02 / 조회: 10,280

꽤 오래 전부터 나돌던 ‘경계의 목소리’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하나둘 한국 연예기획사들에 투자하거나 협업해 상품을 내놓던 10년 정도 전부터 꾸준히 이 같은 ‘경계의 목소리’가 때 되면 한 차례씩 신문지상을 쓸고 지나간다.


액면 그대론 틀린 얘기가 아니다. 분명 중국 엔터테인먼트산업 규모는 한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중국 투자전문 뉴스매체 ‘투자계’에 따르면, 2020년 중국 연예매니지먼트 시장규모는 1000억 위안(약 17조590억 원)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또한 향후 3~5년 내 중국서 회사가치가 200억 위안(약 3조4000억 원)을 넘는 초대형 연예기획사가 3~5개 정도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2019년 2월 현재 국내 연예기획사 중 최대 규모인 SM엔터테인먼트 시가총액이 6670억 원 정도니 상황을 알만 하다. 한국 3대 기획사 시가총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규모 기획사가 중국서 향후 몇 년 내 다수 생겨날 수 있단 얘기다.


더 있다. 한국의 3대 연예기획사가 SM, JYP, YG엔터테인먼트라면, 중국의 3대는 위에화, 화이브라더스, 화처미디어 등이다. 이중 가수 중심 기획사로 잘 알려진 위에화는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다. 위에화는 2009년 창립돼 2010년 K팝 보이그룹 슈퍼주니어를 탈퇴한 한경과 계약을 맺고 K팝 벤치마킹 상품들로 중국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다 2014년 YG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한중혼성그룹 유니크를 데뷔시키며 한국시장에도 진출했다. 이어 2016년엔 스타쉽엔터테인먼트와 협업해 걸그룹 우주소녀를 데뷔시켰다. 그리고 2019년엔 걸그룹 에버글로우를 독자적으로 한국서 데뷔시켰다.


물론 위에화가 대표적인 회사일 뿐 위에화뿐만은 아니다. 상황을 텐센트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한 기사가 매일경제 2019년 3월 1일자 ‘K팝 모방해 C팝 만들자...엔터시장 파고드는 텐센트’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대한 중국기업의 투자는 전 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FT아일랜드가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 2대 주주 쑤닝유니버설미디어 역시 중국기업으로, FNC엔터 지분 22%를 들고 있다. 걸그룹 EXID가 소속된 바나나컬쳐 대주주는 중국 상하이바나나계획문화발전회사다. (중략)

국내 엔터사와 중국자본이 충돌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JC그룹 한국지사 골드파이낸스코리아는 한국 연예기획사 판타지오 최대주주가 된 후 창업자 최고경영자(CEO)였던 나병준 씨를 2017년 이사회에서 해임하는 행위 등으로 도마에 오른 바 있다. 황선업 음악평론가는 “중국자본이 K팝 콘텐츠에서 기획력만 쏙 빼가고 나중에 합작기업은 내치는 행태에 대한 대비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한국 K팝 기업들과 협업 및 투자를 시작한 건 대략 2012년 정도부터다. 일본 K팝 한류가 일시적으로 소강됐던 2014년 즈음 돼선 업계에서도 “요즘 중국 돈 안 들어간 걸그룹 없다”는 얘기가 태연히 돌곤 했다. 그런 면에선 위와 같은 ‘경계의 목소리’들이 허랑한 것만은 아닌 셈이다. 그런데 꼭 위와 같은 식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단 점도 인지해둘 필요가 있다.


‘문화적 자유’는 자본과 노하우 뛰어넘는 문화예술 발전 근본동력


자 그럼 이제 가장 미스터리한 부분을 짚어보자. 언급했듯 위에화를 중심으로 중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이 한국서 ‘노하우’를 빼가기 시작한 건 대략 10년쯤 된 일이다. 그럼 지금쯤이면 그 ‘노하우’에 한국의 몇 배, 몇 십 배에 이르는 자본이 더해져 K팝에 필적할 만한 대항적 결과물들이 나왔어야 정상이다. 그럼 현실은 어떨까.


물론 위에화는 그동안에도 계속 K팝과 유사한 아이돌들을 내놨다. YHBOYS, NEX7, UNINE, 신폭풍, 데이라이트 등 숫자도 많다. 그런데 이들 이름을 아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중국 내에선 어느 정도 이름이 있지만, 그렇다고 K팝 아이돌 파이가 줄어드는 효과까진 못 내는 정도다.


엄밀히 아이돌 분야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영화도 방송도, 사실상 거의 대부분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다 마찬가지다. 한국기업에 투자하고, 한국기업에서 이런저런 노하우를 배워간 경우들은 상당히 많다. 그중 영화는 대략 20년 전부터, 방송 등도 15년 정도 전부턴 그랬다. 그럼 지금쯤이면 사실 그 꽃을 피우고 있어야 정상인 시점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 발끝에도 못 미치며, 여전히 한국 콘텐츠만 무한정 베껴대고 있다. 관련해 국내 비판기사만도 분기마다 한 번씩은 쏟아질 정도다. 왜 중국은 그토록 ‘독립’하지 못하고, 10~20년째 한국 베끼기에만 몰두하며 그저 한국에 투자만 지속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얼핏 이해가 안 갈 일이지만, 실체는 단순하다. 중국은 ‘중국’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국가, 전체주의적 통제국가다. ‘자유’가 없는 나라고, 당연히 ‘문화적 자유’도 존재하질 않는다. 그게 뭐 그리 중요하느냐는 의문을 가질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자유’는 사실상 자본과 노하우 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 많은 점에선 문화예술의 핵심동력이라고까지 할 만한 지점이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이 ‘문화적 자유’가 존재하지 않으면 어떤 일까지 벌어지는지에 대해서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2019년 3월의 ‘고한령’이다.


2019년 3월 25일자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홍콩명보 등 언론은 중국광전총국이 TV와 웹드라마 플랫폼, 극장 등에서 사극드라마 상영에 대해 일시 금지조치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2018년 광전총국은 허구가 일정부분 이상 가미될 수밖에 없는 사극드라마 형식을 놓고 “역사적 허무주의를 단호히 반대한다”며 “오락성을 위해 역사를 마음대로 희화하거나 왜곡해선 안 된다”고 권고한 바 있다. 해당조치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리란 판단이다.


이를 중국선 고장극(고전복장극=사극)에 대한 제한령으로서 ‘고한령(古限令)’이라 부르고 있다. 이 같은 고한령이 강한 반발을 불러오자 광전총국 측은 중국 3대 웹드라마 플랫폼 관계자들을 모아 부랴부랴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사극드라마 제작에 타격을 줄 정도는 맞단 후문이다. 한 마디로, 웹상에선 사극을 보는 게 가능해졌지만 기획부터 제작, 방영, 홍보까지 모든 과정을 광전총국 측에 미리 보고해 허가를 받아야 한단 식이다. 필연적으로 방영편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사극제작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당연히 중국 측 ‘문화적 자유’ 침해 및 통제는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대중음악계 역시 이런저런 검열사례들이 워낙 많다. 2015년엔 중국 문화행정부 측에서 ‘폭력적이고 범죄를 조장하며 사회적으로 해가 되는’ 120개 곡명을 공개하고 웹사이트에서 이들을 삭제하지 않으면 처벌을 단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그 해당경우들이 황당하다. 래퍼 장쩐위에 노래 ‘워아이타이메이’ 가사 중 “나는 중국여자는 싫어 대만소녀들이 좋아”란 부분, 노래 ‘팡피’ 가사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지”란 대목도 문제가 됐다. 심지어 단순히 가사 자체가 상스럽다고 금지시킨 경우들까지 존재한다. 2019년 4월엔 영화 <천녀유혼 2> 주제가 ‘인간도’ 중 “젊은이가 분노하니 천지의 귀신이 운다. 대지와 강산은 어이하여 피바다가 됐나. 옛 땅은 어찌하여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됐나”란 구절이 천안문 사태를 연상시킨다며 각종 플랫폼에서 금지시킨 바 있다.


공적개념이 통제하는 문화산업은 필연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위축된다


다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한 마디로 불온한(?) ‘메시지’만 검열하겠다는 건데, 아이돌 노래에 무슨 메시지가 대단한 게 있다고 위축되느냐는 의문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특정음악 장르를 다루는 데 있어 그 영향력이 막강한 해외 아티스트가 한 번이라도 티베트 문제 등을 거론한 적 있다면 그의 모든 영향이 부정되기도 한다. 그 비슷한 장르를 하는 것 자체가 문제시 된다. 심지어 시진핑이 ‘곰돌이 푸우’를 닮았다고 인터넷상에서 놀림 당하자 ‘곰돌이 푸우’ 관련 모든 언급과 사진 삽입을 금지시키는 환경이니 말 다했다.


이런 식으로 ‘어디까진 되고 어디서부턴 안 되는지’ 본인들조차 확신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크리에이티브 분야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나 중국처럼 그 검열기준이 사실상 매년마다 바뀌는 환경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렇다 할 창작적 모험은커녕 그저 ‘하고 싶은 것’조차 해보는 걸 꺼리게 되고, 오직 중앙정부 눈치만 보며 그에 맞춰 모든 것을 진행하려 한다.


여기서 가장 손쉬운 현실적 돌파구가 바로 해외 콘텐츠 베끼기다. 언급했듯 ‘어디까진 되고 어디서부턴 안 되는지’ 본인들조차 알 수 없으니(심지어 정부당국자들조차 몇 개월 뒤 일은 확신할 수 없다고 하니), 일단 한국 등지 음악이나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을 값싸게 들여와 한 번 틀어보고, 거기까진 넘어가는 듯하면 그 비슷한 것만 만들어내는 식이다. 반대로 한국 콘텐츠를 사와서 틀었더니 문제가 됐다면, 그저 해당 콘텐츠를 사온 비용만 날린 셈이 되니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팔았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드는 총체적 비용보다 낭비가 훨씬 덜하게 된다. 그러니 해외 것만 줄기차게 베껴대고 있는 것이다.


언급했던 중국 아이돌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서 등장해 중국에 수입해서 문제가 안 됐던 콘셉트들만 줄기차게 베끼고 있다. 그렇게 크리에이티브 영역이 위축되다 못해 사실상 죽어버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실제적으로 ‘베끼는 것도 제대로 못하게’ 된다. 아무리 자본을 쏟아 부어도 마찬가지다. 잘해야 K팝의 아류 정도가 되고, 대부분은 그보다도 못한 정체불명의 잡탕 콘텐츠가 된다. 당연히 드라마나 예능 등 다른 분야들도 마찬가지다.


왜 중국이 그 막강한 내수시장과 자본력에도 아직까지 아시아 엔터테인먼트를 제패하지 못하는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대목이다. 흔히 거대한 시장, 막대한 자본력이야말로 문화발전 및 그 경쟁력 강화의 절대 배경인 듯 여겨지고 있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부분이 바로 문화적 자유의 확보란 얘기다. 우리 입장에선 최소 지난 사반세기 동안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던 일이기에 체감이 잘 안 됐을 뿐이다.


공적개념이 통제하는 문화산업은 필연적으로 성장을 멈추고 위축된다. 문화적 상상력과 도전정신 자체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정치사회적 메시지와 무관한 상품들에서조차 그렇다. 언제 어떻게 ‘거기까지’ 제한이 들어올 진 아무도 몰라서다.


아무리 ‘중국식 개혁개방’을 내걸곤 있어도 중국은 어디까지나 공산주의 국가다. 그리고 공산주의 등 인간본성에 반하는 모든 종류의 이데올로기 체제가 그렇듯, ‘통제’는 그 부작용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돌리는 근본동력이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러니 최소한도 지금 같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통제 역시 앞으로도 수그러들 일이 없다. 오히려 강화될 소지만 남아있다.


점차 확산되는 대중독재 분위기, 공적개념이 해야만 통제이자 억압인 건 아니다


흔히 아시아에서 글로벌 문화트렌드 패권 이동경로는 일본=>홍콩=>한국이라고들 일컬어진다. 대략 일본이 1950~1960년대 동안 영화와 음악을 중심으로 글로벌 트렌드 중심에 있었다면, 홍콩은 주로 영화 장르를 통해 1970~1980년대를 휩쓸었다. 그리고 한국이 2000년대부터 사실상 장기집권 분위기로 가는 중이다.


위 흐름에 대한 일반적 해석은 ‘경제가 성장한 순서’란 점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 박차고 나왔고, 홍콩도 자유무역항으로서 동력을 얻어 치고 나간 뒤, 한국이 뒤늦게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경우다. 그러니 아주 틀린 얘긴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중국 사례에서 언제나 깨지고 만다. 절대다수 나라들에선 경제력이 성장한 만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자유’도 함께 쟁취되는 패턴을 그리고 있기에 그렇게 된단 점이 늘 망각되곤 한다. 중국이 너무나도 특이한 경우라 오히려 온전한 논리가 완성된다. 근본적으로 문화예술 발전은 그만한 시장을 갖추게 되는 경제력과 함께 ‘문화적 자유’ 확보도 동시에 따라줘야 한단 복합적 논리다.


중국에 가려져 잘 눈에 띄진 않았지만, 사실 대만도 아주 다른 경우는 아니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잘 사는 나라’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럼에도 문화예술 분야가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문화가 주류로 정착하게 된 이유 역시 ‘문화적 자유’ 문제가 컸다.


대만은 초대 총통 장제스가 1948년 계엄을 선언한 이래 무려 40년 간 계엄체제가 지속된 나라다. 1987년 7월 계엄은 해제됐고, 엄밀히 한국과 ‘문화적 자유’가 확충되기 시작한 시점은 엇비슷했지만, 대만의 경우 인력유출이 너무 손쉬웠던 환경이란 점이 악재로 작용했다. 1990년대 직전까지 ‘문화적 자유’를 추구하던 대다수 문화예술계 크리에이티브 인력들이 홍콩으로 빠져나가버리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그나마 ‘달리 갈 곳이 없었기에’ 상황에 적응하려는 분위기라도 있었지만, 대만처럼 같은 중화권이란 차원에서 선택지가 또 있었던 경우는 인력유출 차원 타격이 심했다.


반면 수십 년 간 대만으로부터 양질의 크리에이티브 인력을 흡수할 수 있었던 홍콩은 1997년 홍콩반환 직전까지 ‘아시아의 할리우드’ 소릴 들으며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이외에 싱가포르 등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잘 사는’ 이미지가 있었던 몇몇 나라들 문화산업 현실 역시 근본적으론 비슷한 원인이 작동한 사례들이라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이라고 이대로 승승장구만 기대할 수 있는 분위기인 건 또 아니다. 공적개념으로부터 통제는 상당부분 사그라들었지만, 몇몇 정치적 선동세력들에 의한 문화예술 분야 대중독재 분위기가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자유롭게 시장에서 심판받기 이전, 마음에 안 드는 콘텐츠는 아예 제작 자체를 막아버리려는 흐름이 여러 군데서 포착된다.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지닌 크리에이티브 인력들 ‘입’을 막아버리겠단 의도다. 이 역시 ‘문화적 자유’ 침해인 건 마찬가지다. 꼭 공적개념이 해야만 통제이자 억압은 아닌 것이다. 현 시점 한국대중문화산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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