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가, 지정학적 환경이 낳은 사상
중국의 백년 역사를 보려면 상해에 가고 5백년 역사를 보려면 북경에, 3천년 역사를 보려면 시안에 가야한다. 그리고 5천년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하남에 가야한다고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땅에서 역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5천년 전에 하남에서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역사가 시작된 그 땅은 중원으로 불렸다. 중원하면 본래 중국 전체가 아니라 황하 중류 지역을 뜻하는데 그 땅에게는 운명이 있었다. 바로 고난이라는 운명. 문명이 시작된 곳이다. 그리고 천하의 중심이다. 자연히 많은 강자들이 그 땅을 탐내고 선망할 수밖에 없었다. 선망의 땅은 힘들이 맞부딪치는 땅이 되었고 각축장이 되었는데 춘추시대 때 정(鄭)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북방의 진(晉), 남방의 초(楚). 서방의 진(秦). 동방의 제(齊), 이런 강자들의 힘들이 늘 중원에서 부딪쳤고, 그러다보니 나라는 늘 외세의 직·간접적인 지배와 침탈에 시달렸는데 이 고난의 땅은 외교의 전문가, 법치를 주장한 사상가들을 만들어냈다. 종횡가와 법가의 고향이 바로 중원이다. 중원에 선 나라와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고난의 땅에서 추상적인 이야기, 담론을 위한 담론, 이론을 위한 이론이 나올 수 있겠는가? 어떻게든 생존을 도모해야했기에 땅에서는 명확한 법치와 능란한 외교만이 살길이었을 것이다.
소진과 장의 종횡가들이 중원에서 나왔다. 법가사상가인 정자산, 오기, 상앙, 이사, 한비자. 모두 중원출신이다. 고난의 땅은 이렇게 세치 혀로 천하를 들었다 놓았다하고 개혁을 강행하고, 변법으로 나라를 강하게 법치로 국력을 조직해내는 법가사상가들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래서일까. 한비자의 텍스트 '한비자’와 상앙의 텍스트 '상군서’를 읽다보면 반드시 필(必)이라는 글자가 많이도 등장한다.
반드시! 나라가 강해지게 반드시! 나라가 부유해지게 반드시! 나라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방법론과 정책들을 늘어놓았다. 그들의 책에서 필(必)이 등장하는 빈도수, 그 필이 포함된 문장들에 담긴 내용들만 보아도 그들이 절박했음을 느낄 수 있다.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 경직된 명분과 감성을 배제하고 과학적인 정치의 기술에 천착 할 수밖에 없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데 이렇게 지정학적 환경이 낳은 산물이 바로 법가이다.
탈냉전에서 신냉전시대로
법가 사상을 이해하는데 이렇게 지정학적 환경이 중요한데 법가사상을 공부할수록 우리 한국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한국의 지정학적 환경 역시 험난함 그 자체 아닌가. 한비자의 조국 한(韓)과 국호가 같아서일까? 한반도에 터잡아 살아온 우리 한국도 고난의 운명 속에서 생존과 부강을 도모했어야 했는데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우리를 둘러싼 4강들이 있다. 강력한 외세 4강이 우리를 둘러싼 채 압박해왔는데 이제 거기에 북한까지 포함해서 5강으로 되는 형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참 안타깝다. 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이고 중국에게는 무시 받는다. 미국에게는 의심 받는다. 그래서일까. 러시아 초계기기가 심심치 않게 우리 영공을 침범하며 드나들고 있다. 심상치 않다. 중국의 추궈홍 대사, 왕이 정치외교부장은 중거리미사일과 사드 관련해서 직접적인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중거리 미사일 설치와 관련해 중국과 미국, 러시아와 미국이 갈등하고 있는데 중앙일보 김민석 기자의 기사를 읽어보면 누구든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민석 기자에 의하면 유럽에서 시작한 중거리 미사일(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불똥이 드디어 동아시아로 튀었다고 한다. 불가피한, 마냥 외면할 수 없는 위험이 다가온다고 하는데 마침 미국과 일본은 중거리 미사일 배치 관련해서 협의를 시작했고 미국은 일본만이 아니라 호주와도 협상하며 중거리 재래식 미사일 배치를 태평양 지역에 다수 배치하고자 하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한다. 당연히 이에 중국과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미사일 각축전에는 시동이 걸린 게 현실이다.
중국 공산당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환구시보는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총알받이가 되어서도 안 되고 중국의 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발언했는데 러시아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는 나라는 적으로 간주하겠다고, 핵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까지 했다.
사실 시작과 도발은 러시아와 중국이 먼저 했다. 특히 중국은 한반도 공격을 위한 미사일, 유사시 한국 구원을 위해 오는 항공모함 저격을 위한 미사일을 배치했고, 중국의 미사일은 한국과 일본이 생명선으로 여기는, 자원과 에너지가 들어오고 무역이 오가는 필리핀에서 이어도로 이어지는 수송선까지 타겟으로 하는 실정이다. 이에 미국은 당연히 좌시할 수 없는 일인지라 이른바 인도태평양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인데 이 땅이 구한말처럼 힘의 각축장이 될 것인가?
다들 탈냉전 시대에서 신냉전 시대로 돌입했다고들 하는데 우리나라는 외교에서 난맥상을 보이고 외교의 방향성에서는 동맹들의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미·일의 해양문명세력에서 이탈해 북한, 중국, 러시아의 대륙세력으로 편입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안팎에서 많이도 받고 있는데 경제발전과 번영의 토대와 안전망이 되었던 울타리와 펜스를 국민적 합의도 없이 버리고 중국적 질서에 편입하고 굴종할 것인가? 참으로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고난의 땅 한반도에서 단순히 생존만을 해낸 것이 아니라 번영까지 만들어냈다. 압축성장에 성공했고 중진국 함정에서 이르게 탈출해 선진국의 말석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현재 그 번영이 얼마나 오래 갈지 그 영속성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불안한 눈치다. 중국의 굴기와 미사일 문제라는 변수 말고도 셰일가스 붐으로 인한 국제 질서의 재편도 이야기되고 있다. 국제환경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미국이 예전처럼 중동의 석유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고 에너지를 수출할 형편이 되었다. 그로 인해 급격히 국제사회가 시계제로의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우리에게 법가사상과 한비자의 현실주의와 객관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추상적인 이야기, 공리공담,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법가의 실리실담, 실사구시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냉전 시대에 생존을 위해서 중국이 우리를 향해 투사하는 에너지에 대응하기 위해서 고민을 하고 새롭게 정신적 무장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고난의 땅에서 만들어진 법가가 필요한 이유다. 신냉전 시대, 다시 다가오는 듯한 고난이라는 운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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