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14일 '한국영화산업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이중 골자가 된 건 '독립․예술영화 유통지원센터’(가칭) 설립 건이다. 독립영화들이 충분한 상영기회를 갖도록 지원하는 센터로서, 독립영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공공․민간 상영관에 영화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나아가 독립영화들의 통합 예매시스템도 구축하고, 해외영화제에 해당 영화들이 출품되도록 지원하는 방향도 검토된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지금껏 어느 정권이건 문화체육관광부 차원에서 '독립영화 지원책’을 발표하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최소 지난 15년 정도는 그랬다. 그런데 이 '독립영화’란 게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에 대해 명확히 짚고 넘어가는 정권 또한 없었던 게 사실이다.
'독립영화.’ 뭔가 떠오르는 이미지는 있을 듯하다. 일단 저예산이어야 한다. 유명스타나 감독이 동원되는 것도 아니다. 어딘지 비상업적이고 예술성이 돋보인단 인상도 들 수 있다. 산뜻하고 깔끔한 느낌보단 뭔가 거칠고 투박할 것 같단 인상도 준다. 그게 지금껏 '독립영화’에 부여돼온 전반적 이미지다. 그런데 '그런 영화’에 대체 왜 국가세금으로 끝없이 지원해줘야 한다는 걸까. 여기서 '독립영화’의 일반적 규정을 알아보자.
일단, 독립영화는 미국영화계에서 나온 개념이다. 1930년대 중반 할리우드 스튜디오들 중 유독 규모가 커져 전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5대 스튜디오를 이른바 '메이저 스튜디오’라 불렀다. MGM,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워너브라더스, RKO 등이며, 이를 '빅 5’라고도 불렀다. 이들 대부분은 자사계열 극장체인도 갖고 있어 제작-배급-상영의 수직계열화 파워까지 갖췄었다. 지금은 여기에 디즈니, 유니버설, 콜럼비아 등이 더 들어간다. RKO는 1959년 도산했고, 20세기 폭스는 2019년 디즈니에 매각됐다.
그러다 1940년대가 되자 이들 '빅 5’ 스튜디오 시스템에 불만을 갖는 이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절대다수 영화들이 '빅 5’ 스튜디오 입김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그들 취향에 맞지 않는 영화는 제작되고 배급될 수 없는 상황을 비판했다. 그래서 SIMPP(Society of Independent Motion Picture Producers)란 단체가 설립되고, 자사체인 극장에 자사영화들만 걸어 특혜를 주는 파라마운트사를 주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그렇게 제작과 상영의 수직계열화를 막는 일명 '파라마운트법’이 1948년 공표되기에 이른다.
결국 '독립영화’의 시작은 단순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 수직계열화에 반대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었던 셈이다. '메이저 스튜디오 취향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걸 만들고 싶어 하던 영화제작자들이 만들어낸 개념. 즉 '독립영화’는 그저 '메이저 스튜디오로부터 독립’된 영화란 의미 정도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개념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특정 스튜디오 규모가 커져 '메이저’라 불릴 수준이 되면, 그곳에서 만들어내는 영화도 더 이상 '독립영화’가 아니게 된다. 그리고 그 레벨은 사실 정하기 나름이다. 이렇다 할 기준 자체가 없다. 1990년대 하비 와인스틴의 미라맥스사가 '펄프 픽션’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의 대히트로 '더 이상 독립영화 제작사라 불리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왔을 때도 회사 측에서 스스로 그런 포지셔닝을 고집해 독립영화사로 유지됐던(?) 사연도 존재한다. 본래 애매한 개념이란 얘기다.
그런데 이를 한국 사정으로 돌려놓고 생각해보면 한층 더 이상해진다.
'스타워즈’와 '터미네이터’도 세계적 기준으론 독립영화였다
한국서 '메이저 스튜디오’란 어딜 가리키는 걸까. 애초 독립영화 개념이 파라마운트법 관련으로 성립된 것이란 점에서 보면, 똑같이 제작-배급-상영 수직계열화를 돌리고 있는 두 회사, CJ엔터테인먼트와 롯데엔터테인먼트만이 이에 해당된다. 쇼박스 측은 이미 오래 전 메가박스 극장체인을 매각했으니 거기서 빠진다.
그런데 '그 나머지’도 한국선 독립제작사라 불리질 않는다. 이유도 명확히 알 수 없다. 심지어 CGV나 롯데시네마 등과 결탁(?)해 자기 영화들을 대형 배급시키고 큰 수익을 가져가니 독립영화사가 아니란 주장까지 존재한다. 그럼 독립영화라 불리는 영화들도 CGV나 롯데시네마 등에서 상영되면 더 이상 독립영화가 아니게 되는 걸까. 그렇지도 않다. CGV나 롯데시네마 등에서 상영돼 300만 이상 관객을 만난 '워낭소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등은 여전히 독립영화라 불린다.
반론사례는 또 있다. 미국처럼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독립영화 레이블’을 따로 갖고 있는 경우들이다. 거의 대부분 스튜디오가 다 이 같은 독립영화 레이블을 함께 돌린다. 소규모 배급을 꾀하는 저예산 영화들이 이쪽 레이블로 편성된다. 파라마운트엔 파라마운트 클래식, 콜럼비아를 소유한 소니에도 소니 클래식이 이 같은 독립영화 레이블들이다. 심지어 미니메이저 뉴라인에도 파인라인이란 독립영화 레이블이 따로 존재한다.
한국서도 만약 CJ에서 CJ 클래식, 롯데에서 롯데 클래식이란 독립영화 레이블을 따로 만든다면? 아마 그래도 독립영화로선 통용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독립영화계 측 주장으로 봤을 땐, 대기업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들이 독립영화이므로 그 역시도 해당이 안 된다고 주장될 가능성이 부단히 높다. 두산백과사전의 '독립영화’ 규정 역시 “기존 상업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란 정의가 붙는다.
그런데 그런 식의 입장이어도 문제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예컨대, 조지 루카스의 세계적 대히트 프랜차이즈 '스타워즈’ 사례가 있다. 1977년작 '스타워즈’ 1편은 메이저 스튜디오 20세기 폭스 자본으로 만들어졌지만, 1980년의 2편 '제국의 역습’과 1983년의 3편 '제다이의 귀환’은 1편을 통해 신뢰를 얻은 조지 루카스 본인 제작사 루카스필름에서 직접 은행권으로부터 제작비 전액을 융자받아 완성됐다. '기존 상업자본’이 아니니 그야말로 독립영화의 전형인 셈이다. 무엇보다 영화의 감독이자 제작자이며 각본가이기도 한 루카스 본인이 직접 돈을 빌려 만들었으니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에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생각해보면 이런 경우는 의외로 많다. 예컨대 1980~1990년대 상업영화 전형을 완성시킨 '터미네이터’ 1, 2편도 사실상 독립영화가 맞다. '스타워즈’와 매우 유사한 맥락에서다. 그런데 '스타워즈’가, 또 '터미네이터’가, 최소한도 한국의 독립영화계 측으로부터 독립영화로서 분류되고 언급될 일은 전혀 없다. 과거에도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술이기에 지원한다’ 그런데 대체 무엇을 예술이라 규정하는 걸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답이 나올 것이다. “'스타워즈’는 돈을 바라고 만든 영화지 '예술성’을 추구하는 영화는 아니지 않느냐”고. 아닌 게 아니라 한국서 만들어진 한국 특화형 독립영화 규정도 그런 식이다. 2004년 출간된 '영화사전’에도 그런 설명이 있다.
“상업영화가 제작비 회수는 물론 초과이익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마케팅 관점에서 유리한 영화내용을 전개시키는 데 반해 독립영화는 제작자나 감독의 주제의식을 표출하기 위한 대안적인 내용과 형식을 담아내는 특성이 있다.”
일단 “마케팅 관점에서 유리한 영화내용”이란 게 뭘 가리키는지도 애매하다. 기존 성공사례를 답습하는 내용 전개? 그럼 독창적인 내용 전개를 꾀하는 상업영화 경우는 어떤가? 제작자나 감독의 주제의식을 표출하기 위한 대안적인 내용과 형식을 담아낸단 점도 상당히 애매한 규정이다. 일단 '대안’이란 개념 자체가 예술 장르에서 어떤 식으로 해석돼야 할지부터가 논쟁의 대상이다.
그래서 한국선 독립영화에 '예술영화’란 개념을 덧씌운다.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영화산업발전계획’에 등장하는 새 기구 이름도 그래서 '독립․예술영화 유통지원센터’가 됐다. 독립영화=예술영화이며, 그렇기에 세금 지원할 가치가 생긴단 논리다. 그런데 대체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대체 어떻게 판가름한단 말인가. 더 중요한 건, '누가’ 한단 말인가.
대표적 반론사례가 있다. 1932년 창간된 영국의 세계적 영화지 사이트 앤 사운드에서 1952년부터 매 10년마다 전 세계 영화비평가와 관련 예술가들 투표를 받아 행하는 '역대 영화 베스트’ 투표다. 가장 최근인 2012년 투표에선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1958년작 '현기증’이 1위를 차지했다. 그런데 '현기증’은 1958년 당시 그 어떤 의미에서건 '예술영화’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저 '실패한 상업영화’란 평가가 절대다수였다. 이를 1960~1970년대 걸쳐 주로 프랑스 비평계에서 재조명해 지금의 위치까지 이어진 셈이다.
나머지도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지금 희대의 클래식이자 예술의 극치로 평가받는 영화들 중 상당수는 당대엔 '예술’의 '예’자도 거론 안 되던 영화들이다. 반대로 당대 뛰어난 예술로서 평가받은 영화들 중 상당수는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아 거론조차 되지 않는 형편없는 결과물로 인식되기 일쑤다. 무엇이 예술적 가치가 있고 없고는 '시대’와 그 시대에 따른 '관점’마다 달라지며, 그를 의도하고 만들 수도, 의도한 대로 반응이 나올 수도 없는 일이다.
여기서 '예술영화로서의 독립영화’ 개념도 깨질 수밖에 없다. 그를 토대로 한 지원논리도 마찬가지다. '예술영화 같기에’ 세금으로 지원해 만들어진 독립영화가 혹평을 받고 거론조차 안 되는 경우들로 거듭난다면 이제 그건 '세금의 오용’으로 봐도 좋은 건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공적개념에의 종속이 '한국형 독립영화’ 본질
이제 점점 더 독립영화계 및 그를 지원하는 공적개념 측에서 규정하는 '독립영화’란 대체 뭘 말하는지 애매해진다. 그냥 저예산영화여서도 안 되고, '예술영화’란 희한한 딱지를 붙이곤 나오는데 그를 규정하기도 어렵다. 그럼 뭘까. 여기서 독립영화계 스스로 의견이 상당부분 들어가 있을 각종 매체들 용어규정에서 반복되는 특이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작비를 상회하는 수익을 목표로 하는 영화 자본과는 별도로 감독의 자체 제작 혹은 비상업적 자본에 의해 제작되는 것을 말한다. 제작비는 개인적으로 조달되거나 정부나 단체에서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영화사전)
“대부분 그 결과가 상업적인 목적과는 관계가 없기 때문에” (만화애니메이션사전)
“대부분 저예산이거나, 개인적으로 재원을 조달한다. 정부 지원이나 펀드 등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다.” (영상 콘텐츠 제작 사전)
몇 가지 코드들이 보인다. 돈을 벌건 안 벌건 상관이 없고, 아예 돈을 잃어도 괜찮다는 조건. 그리고 그 제작비는 공적개념 중심으로 제공된다는 개념. 사실상 미국 등 세계 절대다수 국가들의 '독립영화’ 개념엔 있지도 않은 내용들이다. '한국 특화’ 독립영화 개념이라고 볼 만하다. 나무위키 항목을 보면 상황이 좀 더 솔직하고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독립영화의 의의는 상업영화 제작에 반드시 따르는 제작비 회수 및 이윤창출을 위한 자본의 압력을 배제하고 다양한 예술적 시도들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영화제작에는 여전히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경우는 내 돈으로 내 맘대로 만드는 경우, 그리고 안 갚아도 되는 남의 돈으로 만드는 경우(영화진흥기금 같은 독립영화 지원사업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그렇다. 독립영화계 측이 주장하는 대로, 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사실상 하나밖에 없다. 공적개념의 각종 기금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물론 그 전제로서, 해당기금이 '회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 마련돼야 한다.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독립영화, '한국 특화형 독립영화’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얘길까. 해외 어딜 가건 독립영화들은 그저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좌지우지하는 '흥행공식’에서 해방될 수 있단 차원 '독립’일 뿐, 무작정 계속 돈을 잃어도 무방하단 논리는 나올 수가 없다. 아니 그런 식으로 용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단 한 군데도 없다. 모두 '나름의 시장’, 아직 제대로 실험되고 개발돼본 적 없는 신(新)시장을 '개척’하겠단 취지에서 독립영화를 선포한다.
결국 한국의 독립영화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민간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를 가리키며, 반대로 '공적자본엔 종속’된 영화를 가리킨다 볼 수 있다. 그게 한국형 독립영화의 한계다. '조건 없이’ 주어지는 공적자본이란 개념 자체가 허상이기 때문이다. 공적개념은 뭘 어떻게 하든, 결국 다른 모든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공적개념 특유의 한계와 속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공적개념 자본을 얻어내야 할 입장에서, 그 공적개념을 한시적으로나마 컨트롤하고 있는 '현 정부’를 철저히 비판하는 영화 기획안을 내밀었다고 치자. 과연 그 기획안은 공적개념으로부터 조건 없는 자본을 얻어낼 수 있을까. 아니, 지금껏 받아본 사례가 이번 정권 내에서 있기라도 했나? 바로 그 점이 가장 치명적인 '조건’이 된다.
여기서 '독립영화작가들은 모두가 다 이번 정권을 지지하기에 그런 경우는 생각해볼 가치도 없다’는 입장이라면, 이미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헷갈려지는 상황이라 볼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전형적인 전체주의 파시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한국서 특화된 독립영화 개념은, 좀 더 구체적으로, '민간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영화’이자 '공적자본에 종속된 영화’라고 규정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후자 쪽이 세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봤을 때 좀 더 강한 특성이다. 결국 '독립영화’란 표현보단 '종속영화’란 표현이 좀 더 적합하다. 물론 해외에도 공적자본에 종속된 영화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시(戰時)에 제작된 프로파간다 영화들이 있긴 했다. 물론 그걸 어디로부터건 '독립’됐다 여긴 이들은 아무도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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