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에 대한 단상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판결에 대해 일본정부가 경제보복(반도체생산 필수소재의 수출규제 강화 등)을 하면서 시작된 한일 갈등이 한국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폐기 조치, 일본정부의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제외 등 군사·안보 갈등으로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는 일본의 정치적 의도가 담겨져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일제 강제징용 문제는 그동안 한일 간 명시적·묵시적으로 예민한 갈등요인이었다. 이를 명분으로 한국 무역액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본의 필수소재 수출규제 강화는 한국의 수출경쟁력을 견제해서 한국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하는 것으로 작용하고 있다. 좀 더 확대해석하자면 동북아 정치 역학관계에서 한국정부의 외교적 영향력을 약화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겨져 있지 않다고 볼 수 없다.
지난해 한국 수출액은 6,055억 달러, 수입액은 5,350억 달러로 전체 무역규모가 1조1,405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등 주요 품목 수출이 선전한 결과이다. 한국의 무역액은 세계적으로 상위 10위 안에 드는 규모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의 무역액은 4조2,717억 엔이다. 이 가운데 한국의 수출은 1조6,629억 엔이고 수입은 2조6,088억 엔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역액 수치에 비해 한국 수출에 필요한 부품 소재의 의존도 영향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세계경제는 다국적 기업 활동의 영향력이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보다 낮은 생산비용과 글로벌 마케팅을 위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규모의 경제를 활용하고 있다. 실제 양국의 수출이나 수입의 상당부분이 이러한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갈등에 따른 글로벌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약화는 기업들의 활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올해 들어 한국의 수출액은 7개월째 감소하고 있고 8월(8월1일-20일)도 전년 동기 대비 수출이 13.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본으로의 수출은 13.1%감소하고 일본으로부터의 수입도 8.3% 감소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조치에 뿔 난 국내소비자들이 일본제품 불매와 더불어 일본여행을 취소하거나 자제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아직 일본 내에서 한국제품에 대한 대대적인 불매움직임이나 한국여행 취소변경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모두 무역에 대한 의존도가 비교적 큰 국가인데 한일 갈등에 따라 자유로운 직접 무역거래가 저해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이 결코 적지 않다, 한국기업과 일본기업과 글로벌공급사슬로 맺어져 있는 기업의 생산과 판매에도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 외 타국의 기업과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즉, 전 세계적으로 보다 저렴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 생산 및 소비가 어려워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일 갈등으로 인해 일본의 정부 및 여당은 국민들의 응집력과 지지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 정치적 편익을 추구할 수 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마치 미중무역전쟁으로 인한 편익은 양국 수장들이 누리고 양국 기업들과 소비자들이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 같은 국가 간 갈등이 지속됨에 따라 양국 경제부문의 손해는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가운데 양국 소비자들의 감정적 대응에 따른 비합리적인 소비활동은 문제해결에 근본적 도움이 되기 어렵다. 감정적 대응은 일시적으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지 모르지만 오히려 장기적인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문제로 양국 정부가 평행선을 달리다가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선택을 지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일 갈등 이슈화로 양국 정치권이 편익을 누리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정부의 지소미아 재연장 불가와 일본정부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 등 점층적으로 진행되는 상호 보복조치는 종국적으로 서로에게 폐해만 초래할 뿐이다.
그렇다면 작금의 한일 갈등 심화는 언제쯤 완화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양국 정부가 정치적 편익이 사라지고 대신 경제적 부담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는 때일 것이다. 소비자들이자 유권자들의 영향이 시장과 선거에서 실제적으로 작용하는 때일 것이다.
국익은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 일반국민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지 특정 이익집단이나 정치인들의 편익추구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한 판단과 선택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김영신 계명대학교 국제통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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