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우유 많이 먹이자며 우유값 강제로 내렸더니
젖소 안 키우고 팔아 우유공급 부족… 가격 되레 폭등했죠"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는 자 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이 말은 로마 시대 부터 전해져 오는 유명한 서양 격언이다. 설령 좋은 의도로 시작했을지라도 그 일의 결 과는 의도와 반대로 나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역사상 좋은 의도로 시작했다 가 더 큰 비극을 불러온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 관된 경제에서 근시안적인 ‘선의’는 심각한 폐해를 입히기 일쑤이다.
로베스피에르의 좋은 의도
18세기 프랑스 혁명 직후에도 선의의 피해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 혁명을 이끌었던 로베스피에르는 “모든 프랑스 아이는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실제로 우유 가격을 내리도록 지시했다. 프랑스 국민을 위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성장기 아이들이 영양이 풍부한 우유를 양껏 먹을 수 있게 하려는 뜻이었다.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가격 인하는 순수한 선의에서 나왔고, 그것에 대해서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선의와 정반대로 나타났다.
물론 단기적인 효과는 있었다. 공포정치로 악명이 높았던 로베스피에르의 명령을 어길 만큼 간이 큰 우유 상인은 없었고, 우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서민 경제에 큰 도움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우유 가격 하락의 효과는 얼마 가지 못했다. 진짜 문제는 우유 가격보다 소고기 가격이 하락하면서 시작됐다. 혹자는 소고기 가격이 내리면 소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으니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가격 하락의 주인공은 육우가 아니라 젖소였고, 농민들이 우유의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젖소를 내다팔기 시작한 것이 바로 소고기 가격 하락의 전말이다. 이처럼 너도나도 젖소를 팔아치우다 보니 젖소의 개체 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당연히 우유의 공급량도 줄어들었다.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줄어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다, 가격이 폭등한다! 정말 우유 가격은 폭등했고, 로베스피에르가 우유 가격 인하를 명령하기 전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거래됐다.
시장 메커니즘을 몰랐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농민들이 젖소를 키우지 않으려는 이유가 바로 ‘건초’의 가격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소의 먹이로 사용되는 건초는 가격이 워낙 비싸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저렴한 가격으로 우유를 판매하면, 우유를 생산할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비싼 건초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차라리 젖소를 내다파는 쪽이 더 나았다.
이쯤이면 다들 눈치챘으리라. 로베스피에르가 그다음으로 명령한 것은 건초 가격의 인하였다. 로베스피에르는 건초 가격을 내리면 농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우유를 생산하여 판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과연 로베스피에르 생각대로 우유 가격이 안정화되고 프랑스 국민 누구나 마음껏 우유를 먹을 수 있게 되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안타깝게도 로베스피에르의 의도와는 전혀 반대로 우유는 귀족과 부르주아만이 먹을 수 있는 고가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 이유는 건초 가격을 내리라는 명령을 받은 건초 업자들이 건초를 모조리 불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손해를 볼 바에야 차라리 팔지 않겠다는 것이다. 손해를 보면서 우유를 생산할 바에야 차라리 젖소를 내다팔겠다는 농민들과 똑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우유가격이 더 올랐다
결국 우유 가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비싸졌다.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중산층조차 우유를 사 먹을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오죽하면 우유를 거래하는 암시장까지 생길 정도였다.
로베스피에르의 우유 가격 인하 정책의 실패는 선의의 정책이 어떻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만약 로베스피에르가 인위적인 가격 통제가 아니라 시장의 원리를 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적어도 당시 우유가 귀족이나 부르주아만이 먹을 수 있는 고가 음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억해주세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 이 말은 로마 시대부터 전해져 오는 유명한 서양 격언이다. 설령 좋은 의도로 시작했을 지라도 그 일의 결과는 의도와 반대로 나쁠 수도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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