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빈슨 크루소는 섬에서 혼자 자급자족한 것일 뿐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는 노동은 아니었죠"
로빈슨 크루소는 1719년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로빈슨 크루소』 속 주인공이다. 로빈슨은 남미와 아프리카를 오가며 중개무역을 하는 잘나가던 국제 상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폭풍우에 표류해 망망대해의 한 무인도에서 27년간이나 홀로 살게 된 것이다. 무인도에서 사는 동안 로빈슨은 혼자서 집도 짓고 작물도 재배하고 가축도 기르고 카누도 만드는 등 모든 일을 혼자서 해냈다. 농기구, 옷, 그릇 같은 생필품도 모두 스스로 만들어 썼다.
‘1인 경제 모델’로 자주 거론
그래서 로빈슨은 비록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이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낸 인물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반세기가량 홀로 고독을 안고 지냈지만 소설 속에서 외로움을 호소하는 장면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이런 로빈슨의 표류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작가 대니얼 디포는 어느 스코틀랜드 선원이 4년간 칠레 해안의 무인도에서 혼자 살아남은 생존담에서 영감을 얻어 썼다고 한다. 오늘날 칠레 정부는 이 섬의 이름을 ‘로빈슨 크루소 섬’으로 바꾸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로빈슨은 퍽 인기 있는 인물이다. 그가 전형적인 1인 경제 모델이기 때문이다. 로빈슨은 무인도에서 1인 생산, 1인 소비를 실행하는 가장 단순화된 경제를 만들었다. 그래서 복잡한 수식과 그래프가 난무하는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들을 단순화해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인 사례다. 경제학 교과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생산가능곡선이나 비교우위론을 설명할 때 이따금 로빈슨과 그의 흑인 친구 프라이데이가 등장하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로빈슨은 혼자서도 잘살았다지만, 본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타인과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노동은 교환돼야 진정한 노동
이와 비슷한 표현은 동양에도 있다. 바로 ‘인간(人間)’이란 한자어 자체다. 인간이란 한자에는 ‘사람(人)이란 사람들 사이(間)에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다. 고대부터 동서양 모두에서 인간은 다른 인간과 어울려 살아야 비로소 인간이라고 여겨졌다는 게 흥미롭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면 인간이 하는 행위는 사회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하는 노동도 그래서 사회적 행위다. 노동이란 타인이 가치 있게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예측해 제공하는 행위다. 로빈슨처럼 철저히 혼자서 자급자족하는 것은 노동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그런 행동은 동물의 세계에서도 흔히 보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동물도 스스로 먹이를 구하기 위해 활동하지만 그런 것을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인간이 하는 노동은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다시 말해 서로의 노동을 교환하기 위한 것이고, 이를 매개하기 위해 시장이라는 장치가 탄생했다.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는 18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지식인이자 언론인이었다. 18세기는 가내수공업이 종말을 고하고 근대적 공장제 공업으로 전환되던 시점이었다. 영국이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로빈슨 크루소』의 탄생이 그저 우연이었다고만 치부하기 곤란하다. 디포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혼자서도 척척 만들어내는 만능 재주꾼을 탄생시켰지만, 혼자서 하는 노동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로빈슨에게 귀국의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수십 년간 피땀 흘려 세운 자신의 왕국을 뒤로하고 주저없이 귀국을 선택한 것이다.
자급자족은 실패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사람이 혼자서도 잘 먹고 잘살았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결국 인간이 사는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간과 인간이 하는 노동은 서로가 서로를 도울 때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 『로빈슨 크루소』는 홀로 노동하던 전근대의 시공간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근대의 시공간으로 넘어오는 한 인간의 우화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기억해주세요
노동이란 타인이 가치 있게 필요로 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예측해 제공하는 행위다. 로빈슨처럼 철저히 혼자서 자급자족하는 것은 노동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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