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사회주의자였다가
획일적이고 처참한 스탈린의 소련 본 뒤 결별했죠"
“나는 똑같은 민중을 보았다. 그러나 같은 소련 민중인데 내가 받은 인상은 완전히 달랐다. 그때의 민중은 오히려 제정시대 러시아 민중과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앙드레 지드가 한 말이다. 지드는 1936년에 절친한 문우인 작가 막심 고리키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소련으로 갔다가 상상과 다른 소련의 실상에 경악하고 말았다.
“평등한 삶은 없었다”
“어느 집이나 모두 똑같이 초라한 가구들이 놓여 있었고, 스탈린의 초상이 걸려 있었으며, 그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아주 조그만 물건조차 없었고 사소한 기념품도 없었으니 각자의 주택은 얼마든지 맞바꿀 수 있을 것이다.”
지드는 숨막히리만치 획일적으로 통제된 소련 사회의 모습에 질겁했다. 적어도 소련은 그가 생각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아니었고, 민중의 삶도 예전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저 우두머리만 바뀌었을 뿐이지, 사회주의가 외치는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삶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국가가 통제하는 경제는 망한다
지드는 소련의 부자연스럽고도 인위적 평등에 몹시 실망했다. 직접 소련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열렬한 사회주의 지지자였던 터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지드는 “인간성은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인간을 외부적인 힘으로 단순화하거나 획일화 또는 축소화하려고 시도한다면 그 일은 언제나 파괴적이고 처참한 희극이 될 것이다”라며 소련, 아니 사회주의와의 영원한 결별을 선언했다.
1920∼1930년대 유럽은 지드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성인이 사회주의에 매혹돼 있었다. 그들은 사회주의가 노동자 스스로 자본가의 착취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행복을 이룩할 수 있는 체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하여 모두가 꿈꾸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이상세계로서 사회주의를 지지했다.
하지만 사회주의의 이념적 주장은 어디까지나 꿈처럼 덧없는 허상에 불과했다. 현실적으로 사회주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경제적 풍요도 평등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사회적 부와 명예, 온갖 특권은 새로운 지배층의 몫이었고, 민중은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곤궁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심지어 외부와 차단되고 통제된 사회에서 몰개성적이고 획일적인 평등이 강요된다는 점에서 사회주의는 이전의 왕정주의보다 더 지독하게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였다.
지드가 사회주의의 본질적 모순을 꿰뚫어 보았다면,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회주의의 존립 불가능을 증명해냈다. 미제스는 《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체제에서는 생산수단의 수요와 공급이 국가 기관에 의해 독점되기 때문에 화폐 가격이 객관적으로 성립될 수 없으며, 생산수단의 상대적 희귀성을 반영하는 화폐 가격 없이는 합리적 경제계산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체제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회주의 경제계산 불가능론’을 논리적으로 입증했다.
1991년 소련 해체와 붕괴
사회주의에서는 시장을 통한 가격 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경제계산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설령 국가에서 가격을 설정해 계산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합당하지도 않다.
미제스는 자본주의가 가장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경제시스템이라고 보았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에 비해 한정적인 자원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수많은 경제 주체에게 효율적으로 분배하므로 생산과 소비로 이어지는 경제시스템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자본주의만이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사회의 풍요와 번영, 그리고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유일무이한 체제라고 확신한 것이다.
미제스가 예언한 사회주의의 종말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1990년 독일은 마침내 자본주의 국가로 통일됐다. 1991년에는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던 소련까지 해체되면서 사실상 공산주의 진영은 완전히 붕괴했다. 결국 사회주의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체제라는 미제스의 주장은 옳았다.
■기억해주세요
현실적으로 사회주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경제적 풍요도 평등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사회적 부와 명예, 온갖 특권은 새로운 지배층의 몫이었고, 민중은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곤궁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야만 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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