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원하지 않는 맹목적인 '스펙'은 도움 안 돼요
야구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무관심 도루'가 있듯
야구에는 ‘무관심 도루’라는 흥미로운 상황이 있다. 주자가 도루를 하는데 상대 팀 투수나 포수 가 견제하지 않는 것이다. 말 그대로 도루에 무관심한 상황인데, 대개 양 팀 간 점수 차가 많이 벌어진 경기 후반부에 일어난다. 도루를 막아 봐야 경기의 향방을 바꿀 수 없기에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는 도루는 상대 팀을 배려하지 않고 선수가 자기 기록만 관리한 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비신사적인 행위로 보기도 한다.
승리 기여도 큰 안타가 중요
‘무관심 도루’는 상대 팀은 물론 심판에게조차 냉대받는다. 경기 기록원이 무관심 도루로 판정하면 도루에 성공해도 해당 선수의 도루 기록에 가산되지 않는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타자에게는 타율, 홈런, 타점이 중요한 기록이며 투수에게는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리 횟수 등이 중요한 기록이다. 이런 기록을 야구계에서는 흔히 스탯이라고 부른다. ‘statistics’의 약자로 통계 자료를 뜻한다. 시즌이 끝난 뒤 각종 시상식에서 개인상을 노리거나 다음 시즌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면 선수들로선 스탯이 중요하다.
신입사원 자질 평가는?
‘스탯을 위한 스탯’도 있다. 안타를 치면 올라가는 타율을 생각해 보자. 한두 점 차로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나기 직전의 상황에서 치는 안타와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이미 승패가 갈린 상황에서 치는 안타의 가치가 같을 수 있을까? 후자는 영양가 없는 안타일 것이다.
타율은 높지만 영양가 없는 안타가 많은 선수는 타율에 비해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타율은 다소 낮지만 승부처에서 강한 선수가 팀과 팬에게는 더 나은 선수일 수 있다. 예컨대 이승엽은 단순히 홈런이 많아 인기 있는 게 아니다. 올림픽이나 한국시리즈와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기에 인기가 많고 좋은 선수라는 평을 듣는 것이다. 스탯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야구 선수들에게 스탯이 있다면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스펙’이 있다. ‘specification’의 줄임말이다. 학점, 어학 성적, 각종 자격증, 봉사 실적, 인턴 경험 등 야구 선수의 스탯만큼 스펙도 종류가 다양하다. 스펙을 잘 만들어야 입사 시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좋은 스펙을 위해 청년들이 쏟아붓는 돈과 시간,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할 정도다.
신입 사원이 되기 위해 쏟는 투자의 양을 생각하면 우리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신입 사원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스펙 경쟁이 신입 사원의 자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자기 계발이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계발이 아니라 단지 취업용에 머물고 있다는 게 문제다.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어학 점수가 그런 예이다. 어학 점수를 위해 학원에서 교습받는 건 기본이고 해외 연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연수에 들어가는 돈은 엄청나다. 하지만 어학 점수가 업무 능력 향상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더구나 필요하지 않은 자격증을 단지 서류 심사에서 가산점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가치를 창출하는 스펙
소모적인 취업 경쟁은 청년들이 ‘무엇을’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지 ‘어디에서’ 일할지에만 매몰된 결과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계발은 자기 한계와의 절대적 싸움이며 타인과의 상대적 싸움이 아니다. 어떤 노동을 하며 세상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생각 없이 단지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면 올바른 자기 계발이 가능할 리 없다.
‘무관심 도루’가 외면받는 건 더 좋은 경기라는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면서 단지 개인 기록만 좋게 보이려는 시도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스펙이 좋다는 신입 사원들이 있는데도 기업들이 더 이상 고용을 늘릴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의 입장에서는 승부처에서 전혀 실력 발휘를 못하는 3할 타자만 득실거리는 팀의 감독이 된 기분 아닐까?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무관심 도루’는 이제 그만할 때다.
■기억해주세요
소모적인 취업 경쟁은 청년들이 ‘무엇을’ ‘왜’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단지 ‘어디에서’ 일할지에만 매몰된 결과다. 진정한 의미의 자기 계발은 자기 한계와의 절대적 싸움이며 타인과의 상대적 싸움이 아니다. 어떤 노동을 하며 세상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겠다는 생각 없이 단지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면 올바른 자기 계발이 가능할 리 없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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