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가난으로 몰아넣은 호찌민과 마오쩌둥… 번영은 지도자 개인이 아니라 경제 체제가 만든다"
9세기 중반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 암울하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찌민이 태어났다. 그는 나중에 베트남의 영웅으로 존경받는다. 그 주된 이유는 오직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사리사욕을 탐하지 않았으며 청렴하고 도덕적인 지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평생을 바친 지도자 호찌민. 그런 그가 이끄는 베트남의 모습은 어땠을까?
청빈했던 호찌민 치하의 가난
호찌민이 이끄는 베트남의 경제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호찌민은 과감한 농지개혁과 외교활동을 펼쳤다.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중국, 소련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하지만 경제는 좋아지지 않았다. 호찌민은 공산주의 이념을 통해 베트남의 모든 국민이 잘살기를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호 아저씨’라는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베트남 국민에게 친근한 지도자였으며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풍요만큼은 죽을 때까지 이뤄내지 못했다. 2011년 베트남은 세계 경제 순위가 151위에 불과했다. 이는 단순히 지도자의 청렴결백함이 경제를 살리는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권력을 통해 그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은 호찌민. 자신의 일생을 조국과 함께한 호찌민. 이런 그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어린 시절 호찌민의 이웃 마을에는 베트남의 유명한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판보이쩌우가 살았다. 판보이쩌우는 베트남 역사에 심취한 호찌민에게 근대화된 일본에 대해 공부해볼 것을 권했다. 하지만 호찌민은 일본에 기대는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하고 거절했다. 만약 호찌민이 판보이쩌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베트남은 전혀 다른 역사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2500만명을 굶겨 죽인 마오쩌둥
마오쩌둥은 중국 내에서 절대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존경받는 지도자다. 20년간 입은 잠옷은 73곳이나 누더기로 덧댔을 만큼 청렴했다. 또한 혁명, 정치, 군사, 이론, 역사, 철학, 전략, 사상, 시, 서예 등에서 마오쩌둥은 최고의 위치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많은 정치운동을 벌이면서도 결코 정적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처럼 존경받는 지도자 마오쩌둥이 이끌던 시대로 다시 돌아가려는 중국인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지독한 가난과 혼란 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중국 경제를 암흑으로 몰고 간 ‘대약진운동’을 추진했다. 농공업의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경제부흥정책이었던 대약진운동은 2500만 명 이상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또한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을 일으켰다.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은 큰 혼란에 빠졌으며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문화대혁명은 자본주의를 배척하고 사회주의를 지키려는 마오쩌둥의 집념이 이끌어낸 최악의 결과물이었다. 공산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마오쩌둥이 중국을 근대적인 공산주의 사회로 만들려고 한 노력은 참혹한 결과만을 가져왔다. 특히 중국의 경제는 극도의 빈곤상태로 몰락했다.
시장경제에 눈뜬 베트남과 중국
반면 마오쩌둥과는 다른 길을 택해 중국을 경제적 번영의 반석에 올려놓은 지도자도 있다.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경제적 번영의 기반을 닦으며 제2의 건국자로 불린다. 마오쩌둥이 중국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라면, 덩샤오핑은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 지도자다. 덩샤오핑은 꽉 닫힌 중국 체제에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도입했다. 덩샤오핑의 개혁과 개방은 공산주의의 폐쇄된 경제체제로 침체돼 있던 중국 경제의 숨통을 틔워 주었다. 그리고 개방된 자본주의체제로의 변신은 중국을 새로운 성장의 시대로 이끌었다.
호찌민이나 마오쩌둥, 덩샤오핑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지도자의 자질과 청빈함만으로는 결코 국가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시장경제 친화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것만이 국가 경제의 앞날을 밝게 할 뿐이다.
■ 생각해봅시다
우리나라와 북한은 같은 문화, 같은 언어, 같은 조상, 비슷한 지력을 가졌다. 그런데도 남북한의 경제력은 46배나 차이가 난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람 차이가 아니라 어떤 제도와 어떤 가치체계를 갖추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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