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가 모여 있어야 고객이 많이 와요… 경쟁의 선순환으로 전체 파이가 커지는 거죠"
박중훈은 누구나 다 아는 국민배우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력이 있다는 건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2013년 영화 ‘톱스타’의 연출을 맡으며 영화감독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영화 내용이 톱스타의 자리에 있다가 좌절을 겪고 다시 재기에 성공하는 박중훈 본인의 인생사와도 비슷해 세간의 화제가 됐다.
박중훈과 하정우
재미있는 건 ‘톱스타’가 발표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영화배우 하정우가 연출한 영화 ‘롤러코스터’도 개봉했다는 것이다. 두 정상급 톱스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이유 때문에 두 영화는 자연스레 비교 대상이 됐다.
영화 홍보를 위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박중훈에게 기자가 그런 비슷한 질문을 던진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톱스타’와 ‘롤러코스터’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둘 다 초청받았다. 두 영화를 비교하는 질문이 안 나올 수 없는 터에 데뷔한 지 30년에 가까운 노련한 베테랑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하정우는 재능 있는 친구인데 영화 ‘롤러코스터’에서 그 재능이 과연 없어졌을까요? 저와 하정우가 감독을 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는데 똑같은 처지에 있는 분이 있으니 더 좋습니다. 영화라는 건 제로섬 게임이 아닙니다. 관객들은 영화가 둘 다 좋으면 둘 다 보고 둘 다 나쁘면 둘 다 보지 않으니까요. 멋진 후배 하정우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박중훈의 말처럼 영화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관객들은 좋은 영화가 많으면 많이 보고 별로다 싶으면 보지 않는다. 영화 대신 연극이나 뮤지컬을 볼 수 있고 책을 볼 수도 있다. 여행을 가거나 친구와 술을 마실 수도 있다.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정 할 게 없으면 집에서 뒹굴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을 자면 그만이다.
1000만 영화 나오면?
블록버스터급 영화가 한 편 개봉했다고 해서 다른 영화의 흥행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치게 셈법이 단순한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히트한 영화 덕에 다른 영화의 흥행까지 잘되는 경우도 있다. 히트한 영화가 꼭 다른 영화의 흥행을 가로막는 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애초 영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영화시장 전체 파이가 커지는 것이다. 이른바 쌍끌이 흥행이다. 2004년 ‘실미도’가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달성했을 때 같은 해 ‘태극기 휘날리며’가 바로 나와 그 기록을 경신한 것이 좋은 예다. 두 영화의 흥행 대박은 평소 극장에 잘 가지 않던 40∼50대 중년 남성층을 공략한 결과라는 분석이 많았다.
경쟁의 선순환 현상은 영화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일 업종 상인들이 한데 모여 배우고 경쟁하며 전체 매출을 증가시키는 건 현실 경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서울 동대문 근처에 엄청나게 밀집해 있는 의류 상가를 생각해보자. 주변에 다른 옷가게가 많아 상인들이 서로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끼리끼리 붙어 있을 리 없다. 만약 손해 본다고 생각한다면 패션몰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조용한 동네의 한적한 구석에 옷가게를 차릴 것이다. 지역마다, 도시마다 하나씩 있는 먹자골목이 한데 모여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전체 파이를 키워라
소비자로서도 원하는 물건 한 가지만 살 계획으로 간다고 해도 비슷한 가게와 물건이 잔뜩 모여 있으면 두세 개 사는 등 의도치 않게 소비를 늘리는 경우가 많다. 극장이 멀티플렉스 체제로 전환되면서 관객들은 여러 영화를 한자리에서 골라 보게 됐고 그만큼 영화 소비도 늘어났다. 경제는 이렇듯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경쟁은 언제나 전체 파이를 증가시킨다.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 담을 쌓아 다른 경쟁자가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자신이 만든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더 도움이 되고 만족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자신과 사회를 위한 열린 태도다.
■ 생각해봅시다
영화 ‘실미도’가 1000만 관객을 처음으로 넘어서자 ‘태극기 휘날리며’가 뒤를 이어 최고 관객을 기록했다. 시장경제를 자칫 제로섬 게임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상은 전체 파이를 키운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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