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양’이라는 말에서 ‘양’은 동물을 의미한다. 사람의 죄를 이 동물에게 덮어씌워 희생시킨 뒤, 그 피를 제단 위에 뿌리면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다고 여겼다. 신과의 관계에서 죄 많은 인간은 이런 식으로 과거를 말끔하게 극복하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
문제는 이 희생양 찾기가 인간 간의 관계에서 이뤄질 때다. 이 경우는 신과의 관계에서처럼 뒤끝이 깔끔하지 않다. 말 못하는 양이야 억울하게 죽어도 자기 항변을 못하지만, 인간이 다른 인간을 희생양으로 삼았을 땐 뒤탈이 날 수밖에 없다.
희생양 찾기의 ‘전선’이 된 극장
초점을 현대로 옮겨와 보자. 종교가 힘을 잃은 21세기에서 희생양 찾기의 ‘제단’ 역할을 하는 건 영화다.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악당의 비참한 종말을 보고 싶어 한다. 영화의 장점은 ‘재미’라는 명분으로 사실을 어느 정도 왜곡해도 용서를 받는다는 점이다.
영화 속 희생양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보통 인간성을 상실한 캐릭터다. 단순히 성격이 좀 나쁜 악당 정도가 아니라 악마(evil) 그 자체로 등장한다. 관객들은 이 악마 캐릭터의 활약을 보며 분노를 키워간다. 그리고 주인공에 의해 악마가 처단될 때 최대한 화끈하고 잔인하게 끝장 내주기를 바라게 된다.
이 작업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관객들이 극장에서 ‘나쁜 놈은 죽는다’ 식의 영화를 보고 기뻐한다 해서 나쁠 건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런 관객이 많은 편이 그 사회의 건강함을 나타내는지도 모른다.
‘킬 빌’로 유명한 미국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경우도 화끈한 희생양 찾기로 명성을 얻었다. ‘장고’ ‘데쓰 프루프’ 같은 영화들에서 타란티노는 도저히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악당을 영화 초반에 활약하도록 둔 뒤 끝에 가선 그를 잔인하게 처리한다. 관객석에선 박수가 터져 나온다.
언뜻 보면 한국인들도 영화를 통한 희생양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식 희생양 찾기에는 타란티노 영화와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타란티노는 어떻게든 영화가 끝나기 전에 양을 희생시킨다. 극장을 나가는 관객들의 발걸음이 가벼울 수 있게 말이다.
한국식 희생양 찾기의 특징
한국 영화들은 그렇지 않다. 한국 영화감독들은 오히려 선한 사람을 희생시킨다. 그래서 관객의 스트레스와 분노를 더 극대화시킨다. 그런 뒤 ‘지금 현실이 이래, 참을 거야?’라고 묻는다. 이쯤 되면 이게 선전매체인지 오락매체인지 불분명해진다.
예를 들어 ‘7번방의 선물’은 1997년 12월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단행된 사형 집행에 대해 ‘완벽한 거짓말’을 늘어놓아 관객 1000만 명을 넘겼다. 오로지 재미, 그리고 감동의 탈을 쓴 억지눈물을 위해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들의 전유물로 묘사됐다.
2018년 연말에는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개봉해 인기를 얻고 있다. 이 경우는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 도저히 하나의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제 문제를 희생양 몇몇의 탓으로 돌린 뒤 관객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담하게도 영화는 국내 역사상 최대의 경제위기였던 IMF 사태를 몇몇 사람들의 탓으로 돌린다.
영화의 내용만 보면 우리나라 경제는 재정국 차관(조우진)을 비롯한 몇몇 무능하고 사악한 관료들과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대기업들이 모피아(MOFIA)를 형성했기 때문에 위기에 빠졌다. 특히 재정국 차관 캐릭터는 일각에서 오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모습을 인간으로 형상화 시킨 모습이다. 그런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
지나친 단순화는 숙고의 여지를 거세시키고 우릴 그저 남 탓이나 하는 우민으로 전락시킨다. “국민들은 그저 개돼지”라는 말에 흥분했던 당신이라면, 우리를 단순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는 이런 시도에도 분노해야 마땅하다.
경제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영화는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는 악당 몇 명을 미워하기만 하면 우리가 1990년대 말에 겪었던 경제위기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 엄청난 사건의 의미를 인형극 수준으로 축소시켜 버린 것이다. 리얼한 역사를 응시하는 대신 가상의 영화를 보며 그때를 이해했다고 착각하길 선택하는 딱 그만큼 우리는 ‘단순한 국민’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당시 상황에서 IMF(국제통화기금) 말고 다른 대안이 뭐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의롭고 똑똑한 김혜수(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역할)마저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다. 나중에 가서 하는 얘기는 그저 ‘IMF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힘을 합치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얘기뿐이다.
아울러 실제 기록을 보면 IMF행을 최대한 미뤄보려고 한 것은 오히려 (영화에서 악당으로 묘사된) 재경원 관료들이었다. IMF행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건 오히려 한국은행 총재였다. 협상장에 미국 정부 관료가 있었다는, 정황상 당연한 부분을 음모론적으로 해석한 부분도 이 영화의 패착으로 꼽힌다. 미국에 대한 악감정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우리 중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판단을 내려야만 하는 게 국가정책이고 경제의 기본이다. 복잡다단하게 펼쳐져 있는 그때의 현실 속에서 완전무결한 선택이 있었을 거라고 믿는 건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천국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의 소산이다.
자신들의 정의감을 과시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관에 대한 허술함과 역사‧경제 문제에 대한 인식의 얕음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국가부도의 날’은 감당할 수 없는 소재를 골라 스스로 패착에 빠지고 말았다. 상대를 잘못 고른 것이다.
이원우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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