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에 대한 단상

강태영 / 2018-10-09 / 조회: 10,007

스스로를 부도덕하다 주장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시대에 따라 도덕이 변해 세대간 갈등도 없지 않지만, 하여간 사람들은 나름의 도덕 기준을 가지고 도덕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한다. 도덕관념은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특징적이다.


평등에 대한 요구가 어떤 식으로 진화되어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사회에서 평등주의는 도덕의 한 갈래로 널리 공유되고 있다. 불평등이라는 용어는 문맥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약자를 응원하고 격차나 박탈감과 같이 자주 언급되는 단어들도 평등을 전제로 사용되고 있다. 급기야 '어떤 학문’에서는 소득 분배율이나 지니 계수와 같은 통계량까지 만들어 측정해 한 사회의 물질적 평등의 정도를 수치화하여 계량한다. 대부분 나라의 뉴스에서는 수시로 부자와 가난한 자, 노동자와 자본가, 남자와 여자, 서울과 지방,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불평등을 쏟아낸다. 마치 그런 것들이 큰 문제라도 된다는 냥 앞다투어 불평등을 고발하고 그 부도덕을 비난한다. 불평등은 교정되어야 마땅한, 정말이지 부도덕하고 불편한 상태를 의미한다.


평등주의는 좌파들의 이념이지만 그것은 도덕적 당위를 의미하기도 해, 좌파 철학이 그 크고 깊은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승을 부리는 한 원인을 제공한다. 도덕은 평등이라는 덕목을 통해 좌파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평등주의는 두 가지 불편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제대로 답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질문1. 평등주의는 현실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가치인가?


인간은 한 시공간을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존재로, 한 인간의 개성, 독특함도 그렇지만 인간은 다른 인간과 동일한 시공간을 공유할 수 없다. 모든 존재는 출발부터 다른 자리에서 다른 경험을 쌓아 자신만의 성격과 인격, 능력과 우연을 시시각각 축적한다. 누군가는 양지에 서 있고 누구는 그늘 속에 있다. 어떤 사람은 추운 곳에 어떤 사람은 사막에 던져진다.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게으른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남자로 여자로, 배우의 외모로 박색으로, 혹은 심각한 장애인으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다 가는 사람도 있다.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람도 있고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사람, '바른손’을 쓰는 사람, 혹은 왼손 잡이 … 모든 다름은 불평등을 의미해 교정은 사실상 가능한 생각이 아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등을 구현할 것인가. 수백억 원의 상속을 받은 장애 2등급 상속녀와 가난하지만 얼굴과 몸매가 예쁜 여성의 불평등은 어떻게 계산될 것인가. 한 사회에서의 불평등은 그 사회에서만 교정되어야 할까. 가령 파키스탄의 굶고 있는 아이와 대한민국의 한 비만 아동은 평등을 기준으로 비교되면 안 되는 것일까. 평등은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생각일까.


질문2. 평등주의가 정당하고 우리 모두가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도덕적 가치라고 전제하더라도, 그것을 당신은 과연 실천할 수 있을까?


감기가 들어 콧물을 흘리는 내 아이를 위해서 갖은 음식과 약을 제공하는 당신은 백혈병에 신음하고 있는 남의 아이를 어떤 태도로 바라보고 있나. 예쁜 애완견을 위해 흔쾌히 사료와 용품을 주기적으로 구입하면서 기아 선상에서 허덕이는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 당신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까. 힘들게 노력했으나 변변한 타이틀 하나 없는 무명선수보다 타이거 우즈나 로저 패더러와 같은 스포츠 스타들을 응원하는 당신은 평등주의를 말 할 자격이 있을까. 대박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맛없고 비싼 음식점을 차별하는, 이쁘고 날씬한 여성을 평범한 아가씨보다 더 좋아하는 당신은, 하이에크의 말마따나 에베레스트를 오르려 노력했느나 아쉽게 실패한 등산가를 당신은 몇이나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자신의 아이와 애완동물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으며, 맛집과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나 사랑하는 배우자를 선택한 당신을 비난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 행동들이 평등주의라는 철학적 배경에서 과연 무엇을 의미하며, 평등주의는 그런 부조리에 어떤 종류의 대답을 준비해 놓고 있을까. 그런 문제의식 말이다.


간략한 질문들이 대답했듯, 사람들이 바라는 평등은 '어떤 평등’으로 자신보다 더 가지고 더 잘난 사람들로부터의 평등이지 자기로부터의 평등을 결코 뜻하지 않는다.


평등만큼 부도덕한 생각도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강태영 / 경제평론가

       

▲ TOP

NO.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320 ‘농망(農亡) 4법’이 맞다
권혁철 / 2024-11-27
권혁철 2024-11-27
319 교육개혁? 시장에 답이 있다
권혁철 / 2024-11-13
권혁철 2024-11-13
318 잘 살고 못 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권혁철 / 2024-10-23
권혁철 2024-10-23
317 자본이 어려운 당신에게
최승노 / 2024-10-10
최승노 2024-10-10
316 겨울 해수욕장에는 ‘바가지요금’이 없다
권혁철 / 2024-10-10
권혁철 2024-10-10
315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대한 고민 필요하다
권혁철 / 2024-09-24
권혁철 2024-09-24
314 이유 있는 금융 부문 낙후...작은 정부 구현은 금융 규제 개혁부터
권혁철 / 2024-09-11
권혁철 2024-09-11
313 뜬금없는 한국은행의 대학생 선발 방식 제안? 본업에 충실하길...
권혁철 / 2024-08-28
권혁철 2024-08-28
312 복지 천국으로 가는 길은 노예로의 길이다
권혁철 / 2024-08-14
권혁철 2024-08-14
311 ‘노란봉투법’ 통과되더라도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권혁철 / 2024-07-24
권혁철 2024-07-24
310 저출생의 무엇이 문제인가?
권혁철 / 2024-07-11
권혁철 2024-07-11
309 국민연금 운용 독점의 부작용
최승노 / 2024-07-08
최승노 2024-07-08
308 ‘인플레이션’ 용어의 왜곡과 정부의 숨바꼭질 놀이
권혁철 / 2024-06-26
권혁철 2024-06-26
307 부동산 규제 철폐할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권혁철 / 2024-06-12
권혁철 2024-06-12
306 시진핑 `신에너지 경고`의 의미
최승노 / 2024-05-31
최승노 2024-05-31